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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연재 [여행유감]
스물 셋 나는 월세 보증금을 빼 배낭여행을 떠났다
화가 김시오의 인도여행
김시오(2018-05-15 10:19:43)

 2004년 가을, 23살 대학생이었던 나는 서울 자취방에 넣어 놓은 월세 보증금을 빼 1년간 서남아시아와 중동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혹자는 부잣집 철없는 딸이 저지른 만행 정도로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부잣집 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여행 내내 하루 평균 5달러 내외로 생활을 하며 이집트 카이로에서 시작해 요르단과 시리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 인도를 거쳐 태국까지 1년여의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비둘기가 집을 짓는 옥탑에 바퀴벌레와 함께 학부시절을 마감해야했다. 덧붙여 그 돈을 채워 넣기 위해 인테리어 막노동과 작가선생님들의 어시스트도 가리지 않고 했다. 이 일로 인해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내가 저지르고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배우게 되었다. 더욱 슬픈 것은 너무 가난한 배낭여행이라 남에게 보여줄 마땅한 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말 두 개, 바지 두 개, 윗도리 두 개. 점퍼 한 개. 이것이 내가 1년 여행기간동안 가지고 다닌 옷의 전부였다. 그러나 하드코어 여행은 지나고 보니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줄만큼 특별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많은 여행지 중 나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인도, 그 중에서도 남인도 지역 여행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인도는 세계에서 7번째로 국토의 면적이 넓고, 인구는 12억 명에 달한다. 여러 개의 주로 이루어진 인도는 크게 북인도, 중인도, 남인도, 그리고 동북부 인도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 여행자들은 델리와 바라나시, 아그라를 포함한 인도 중부를 여행하는데, 여기서 인도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들을 만날 수 있다. 터번을 두른 구루, 시체를 태우는 갠지스 강가, 그 갠지스 강물을 떠서 짜이를 끓여 파는 간이 찻집,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물인 타지마할, 온통 푸른색으로 뒤 덮인 브라만 마을 같은. 그러나 인도는 중부만으로 인도를 모두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그 면적의 배가 넘는 많은 주들이 있고 이 주들은 하나의 독립 된 나라처럼 분명한 지역 색깔과 환경적, 문화적 특수성을 갖고 있어서 주 사이를 이동할 때는 마치 매번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는 이곳에서 생에 처음으로 "남국(南國)"을 만났다.


남쪽의 나라 남국(南國). 열대 식물들이 가득한 길 사이로 생화를 머리에 단 여인들이 오가는 아침. 그 여인들 사이를 지나면 생화와 샴푸의 잔향이 섞여 길을 가득 메우고, 오후가 되면 열어놓은 창으로 뜨거운 바람과 꿈결 같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열기에 뒤척이며 긴 낮잠을 자고나면 어느새 별이 뜨고 파도소리에 불빛이 흔들리는 저녁이 찾아와 밤새 또렷한 새벽을 지나게 하는 곳. 나에게 남국이란 단어는 남인도로 인해 실재하는 판타지가 되었다.

사실, 여행 중 나라마다 성추행은 다반사였고, 여행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많아 그 유명한 실크로드 장사꾼들과 실랑이를 밥 먹듯 했다. 외진 곳에서 잘 때는 품에 스위스 캠핑 칼을 열어놓은 채로 잠들고, 기차역 바닥에서 노숙을 할 때는 눈만 감고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머무는 동안 관광지나 유적지에 가느라 동네를 둘러보지 못한 곳도 있고, 하루를 채 머물지 않은 지역도 있었다. 등 뒤에 맨 배낭 무게만 19kg, 앞에 작은 배낭은 3kg. 평균 10시간 이상의 이동. 낯선 곳을 떠돌며 잔뜩 긴장했고, 매번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했으니, 아마도 나는 꽤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들어서게 된 남인도는 나의 여행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남인도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드문드문 여행객이 있긴 했지만 당시 초대형 쓰나미 피해 여파로 남인도지역을 여행하는 여행객이 현저히 줄어들어 우리나라 국적의 여행자를 만나는 일은 없었고, 서양 배낭여행자들만 간간히 숙소에서 볼 수 있는 정도였다. 덕분에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는데, 특별히 관광지나 유적지를 챙겨보며 여행하지 않았고, 따로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한 일은 그날그날 끼니를 챙겨먹고,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아내서 머물고, 오후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남인도 여행의 전부였다. 내가 했던 모든 여행을 통 털어 가장 단조롭고 조용한, 잉여에 가까운 시간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가장 할 일 없던 시간, 그렇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하루가 있다. 케랄라 주로 넘어가기 전 고아 주 마지막 해변이었던 것 같다. 지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 해변과 등대가 있었고, 베란다가 딸린 예쁜 숙소들이 해변을 마주보고 줄지어 있던 곳이었다. 해변 가장 가운데에 있는 숙소를 잡고 일주일을 지냈는데 일주일동안 일과가 거의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 씻지도 않은 채 청록의 열대식물들이 아우성치듯 삐져나온 화단사이를 지나 슈퍼에 간다. 우유 한통과 시리얼을 산 뒤 해변을 마주보는 숙소의 베란다 타일바닥에 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양반다리를 한 채 시리얼과 우유를 부은 그릇을 한손에 들고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미지근한 우유, 그 마저도 탈지우유지만 불만은 갖지 않는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만다. 그렇게 반쯤 먹어 가면 외국 여행자들에게 과일을 썰어 아침식사용으로 판매하는 인도 아주머니가 어김없이 나타나 묻는다. "마담. 파인애플? 바나나? 망고?" 나도 어김없이 "노 땡큐."라고 대답한다. 이 아침일과는 말 그대로 아침일과여서 일주일간 머무는 내내 계속 되었다. 대충 아침식사를 마치면 해변까지 미친 듯이 달려들어 파도를 탄다. 물속에서 텀블링도 하고, 그냥 파도에 몸을 맡겨보기도 한다. 멍하니 서서 사람들이 해변을 걷고, 서핑 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근처 빵집에서 사온 시나몬 롤을 하나 먹고서 침대에 뒹굴다가 다시 나른한 잠에 빠져든다. 해가 누워 빛이 깊게 들어오는 늦은 오후에서야 겨우 잠에서 깨 몸을 일으키면 뜨거워진 타일바닥이 따끈하게 발바닥에 느껴진다. 해가 지고나면 들려오는 소리가 더 단순해진다. 근처 식당에서 틀어놓은 음악소리도 멈추고, 인적마저 끊기고 나면 모래를 휩쓰는 파도소리와 야자수를 흔드는 바람소리, 그리고 나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세 가지의 소리만으로 매일 밤 음악을 대신했다. 방에 불을 끄고 누우면 낮에는 청록색이었던 식물들이 마치 검은 종이를 오려놓은 것처럼 까맣게 실루엣만 보였다. 눈을 깜박거릴 때 마다 더 까매지는 식물들과, 더 환해지는 달빛 때문에 밤은 오히려 더 선명했다.

그곳에 머문 날들을 포함 해 남인도 지역을 여행하는 내내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고, 뜻이나 의미 같은 건 찾지 않았다. 주어져 있는 풍광을 보고, 환경이 허락하는 대로 움직였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1년여의 여행 중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여행구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에 와서는 이때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여러 번 되돌려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었다.


인간의 삶은 너무나 덧없어서 우리들은 유의미한 것들을 찾고, 또 그것에 의해 움직인다. 나 또한 가치 있는 것에 의해 움직이고 유의미한 것들에 목표를 두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깨달은 것은 너무 많은 의미부여는 그 의미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나도 남인도 여행을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매순간 의미 있었다기보다, 나에게 '몰입의 시간'으로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몰입의 시간을 통해 지금의 내가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의미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장자의 책에 나오는 "쓸모없음의 쓸모" 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당장은 아무 뜻이 없는 어떤 일이 언제가 내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에게 의미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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