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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기억하라, 그 뜨거운 사랑의 기원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김경태(2018-05-15 10:33:42)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한적한 시골 마을의 별장에서 17살 소년 '엘리오(티모시 살라메)'는 부모와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다. 고고학자인 아버지의 연구를 도와주러 미국에서 온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는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다. 그들은 함께 차가운 강물에서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히거나,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낮잠을 즐긴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타를 연주하거나, 직접 딴 복숭아를 베어 문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느긋한 자연의 품 안에 내맡겨진다. 서로를 향한 동성애적 감정도 마치 그 일부처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사랑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자연의 전유물에 불과하다. 이처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동성애를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분리해 내어 자연적 속성으로 환원시킨다. 그리고 그만큼 엘리오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롭다.

어느 날, 엘리오의 아버지는 고대 조각상이 해저에서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엘리오와 올리버를 데리고 바닷가로 향한다. 그들은 바다 속에서 끌어올려지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남성 나체 조각상에 감탄의 시선을 보낸다. 해변에 뉘인 그 조각상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조각상의 곡선은 바닷가의 풍경과 이상적인 조화를 이뤄낸다. 사랑이란, 동성애와 이성애로 규정짓기에 앞서 자연과 어우러진 그 아름다운 육체의 곡선에 매료되는 것이다. 그 곡선의 아름다움은 성별을 초월한다. 과거 그리스인들은 아마도 그 사랑의 기원을 조각상에 새겨 넣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 파묻혀 느긋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은 사랑에 집중하고 그것을 키워나가는데 있어 유용한 자양분이 되어준다. 그 느린 시간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이성애와 동성애를 구분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더욱 솔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마침내 엘리오와 올리버는 처음으로 함께 밤을 보낸다. 침대 위에서 서로를 마주 한 채 열정적으로 애무를 하며 옷가지를 벗어던진다. 카메라는 서서히 패닝하며 어두운 창밖으로 우둑하니 서있는 한그루의 나무를 응시한다. 절정에 다다른 사랑을 다시금 그 고요한 자연 속으로 돌려보낸다.


올리버가 미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그들은 둘만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함께 거대한 폭포수가 떨어지는 산을 오르거나 술에 취해 한적한 밤거리를 배회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올리버와 작별을 하고 돌아와 힘들어 하는 엘리오에게 아버지는 그가 느꼈던 우정, 혹은 우정 이상의 그 감정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가 평생 충실해야 할 대상은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규범이 아니라 바로 그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랑 앞에서 우리가 집중해야하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랑밖에 없어야 한다.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의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반복컨대, 그들이 집중해야할 것은 그 사랑이 상기시키는 자신의 위치가 아니라 오롯이 그 뜨거운 감정이다.


그해 겨울, 엘리오의 가족은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를 보내기 위해 다시 그 별장을 찾았다.  때마침 올리버는 전화로 결혼 소식을 알린다. 그에게 엘리오와 보낸 지난여름은 한낱 백일몽이나 작은 일탈로 치부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워지고 잊혔던 동성애억압적인 현실은 그가 정착해야할 미국의 도시 속에서 되살아나 그의 삶을 옭아맨다. 그는 그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도시는 솔직한 사랑을 하기에는 버거운 곳이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엘리오는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는 한참 동안 벽난로 앞에서 불길을 응시하며 눈물을 삼킨다. 그의 등 뒤로 가족들은 분주하게 하누카를 위한 식탁을 차린다. 아마도 그는 지난여름에 느꼈던 그 모든 감각들과 찬찬히 대면하는 중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조언대로, 그가 경험한 우정 이상의 그 감정을 열심히 되새기고 있다.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묵묵히 그 장면을 담아낸다. 사랑을 잃었지만, 그 사랑의 기원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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