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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쌍칫골 설 씨 노인의 비극
신기철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이휘현(2018-07-13 12:22:56)



탕. 탕. 탕. 탕…
콩 볶는 듯한 총소리들이 순창군 쌍치면 어느 골짜기에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소리… 아우성….
아비규환 속 공포의 절규가 멎자 총소리도 잦아든다. 몇 분 전까지 우리는 아무 죄가 없다고, 우리는 빨치산이 아니라고 울부짖던 마을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다. 그들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들도 울지 않는다.
그 때, 아직 사람의 온기가 채 빠지지 않은 수 십 구의 시신 안에서 한 소년이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소년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억세게 운 좋은 놈이군."


소대장으로 보이는 한 군인이 건조한 말투를 내뱉는다.


"어이 막내. 우리는 먼저 갈 테니 네가 저 놈을 처리하고 와."


병사 한 명만 남기고 소대원 전부가 골짜기를 빠져나간다.
엎드려 있던 소년은 고개를 돌려 옆을 본다. 어머니와 두 여동생이 쓰러져 있다. 어머니 등에 업힌 한 살 바기 막내도 미동이 없다. 다들 죽었구나! 소년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본다. 바지가 피로 흥건히 젖었다. 두 발? 세 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 비현실적인 감각으로 소년의 다리를 엄습한다. '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총소리가 요란하게 시작되었던 그 순간,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소년을 품에 꼭 껴안고 바짝 엎드렸었다. '너 하나 만이라도…' 라고 속삭이는 듯 절박한 몸짓으로 그렇게 어머니는 쏟아지는 총탄을 아들 몫까지 받아내었던 것이다. 소년의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제 산 속은 고요하다. 열 살 소년이 고개를 든다. 홀로 남은 병사와 눈이 마주친다. 병사의 얼굴이 앳되다. 소년은 생각한다. '저 형은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렇게 군인이 되어 우리 동네까지 오게 되었을까…'
병사가 총을 겨눈다. 쌍칫골에 다시 울려 퍼지는 총성. 탕. 탕. 탕. 탕…
열 발의 총소리. 그리고 병사는 골짜기를 빠져나간다.


"그 때 그 군인은 왜 나를 살려주었을까?"


깊게 패인 주름으로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며 무거운 기억을 떠올리던 설 씨 노인의 눈가는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죽기 전에 그 군인을 한 번 만나볼 수만 있다면 고맙다는 말 한 마디 꼭 전하고 싶은데…"


신기철의 책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을 읽으며, 나는 내 머릿속에 맴도는 2010년 순창 쌍치 설씨 노인과 만났던 기억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대형 양계장 건설을 반대하는 농민들을 취재하러 갔다가 우연히 육성으로 접하게 된 증언. 대학시절 선배들이 권하는 이런저런 한국현대사 관련 서적을 읽으며 갖고 있던 막연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하나의 구체적인 이야기와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박혀오던 충격.


한국전쟁은 한국현대사에 새겨진 커다란 트라우마다. 1950년 전쟁 발발 후 1953년 종전까지 한반도에서 약 6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 중 1백 만 명의 민간인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민간인학살의 역사는 한국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의 저자 신기철은 한국전쟁 관련 민간인학살을 총 세 시기로 구분한다.
첫 시기는 분단 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사람들과 이들을 억압했던 분단 세력의 대응이 낳은 대량학살로 기록된다. 경찰 주도 하에 벌어진 경북 경주 내남면 명계리 학살사건과 국군에 의해 자행된 경북 문경 산북면 석봉리에서의 토벌 작전을 들 수 있다. 4·3으로 폭발한 제주는 물론이고 남원과 구례, 고양도 이 시기의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로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 시기는 한국전쟁 발발 후 3개월 사이에 발생한 학살이다. 전국의 형무소에 좌익으로 의심되거나 혹은 그냥 무고하게 잡혀있던 수많은 민간인들이 전쟁이 터지자 남한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처형당했다. 흔히 국민보도연맹사건이라 불리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03년 전주 황방산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유해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전주형무소에서 한국전쟁 발발 후 처형당한 민간인들의 흔적이었음이 밝혀졌다.
세 번째 시기는 9·28 수복 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행된 대량학살이다. 북한군 점령 당시 부역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무자비한 처벌이 가해졌다. 그 대상자는 무려 5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중엔 무고한 민간인이 상당수였다. 안일한 대응으로 전쟁 발발 후 무기력하게 부산까지 밀려나 있던 이승만 정권은 수복 후 패전의 책임을 엉뚱하게도 무고한 국민에게 물었던 셈이다.


이 억울한 죽음들은 아주 오랜 세월 망각과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 가해자인 분단 세력이 긴 시간 동안 이 땅 권력의 핵심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2월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하여 1950년 전후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진 대량학살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노력도 2010년 12월로 활동이 종료되면서 진상 규명은 일부의 성과에 그치고 말았다.
이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신기철은 2010년에 멈추어 버린 진실 규명의 작업을 녹록치 않은 조건 속에서 꾸준히 진행해 나가고 있다. 그가 2017년 8월에 펴낸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은 그 고군분투의 결과물 중 하나다. 250페이지가 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이 지면에는 학살의 현황과 이유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들이 빠짐없이 간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아울러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경어체로 쓰인 평이한 문장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가 그의 이 외로운 작업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분, 당장 그의 책을 구입하시길!

한국전쟁 발발 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이 땅 수많은 '설 씨 노인'과 '그의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은 아직 망각의 관 속에 봉인되어 있다. 진실은 여전히 숨죽이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의 기억을 증언할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끔찍하고 가슴 아픈 기억을 애써 잊고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망각을 강요당하며 살아온 것일까. 이 복잡한 질문에 대한 단순명쾌한 답변이 어쩌면 이 책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에 오롯이 담겨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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