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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인간과 마주한 예술, 우정을 열어졎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김경태(2018-07-13 14:36:31)



1928년생인 아녜스 바르다는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감독들 중에서 장 뤽 고다르와 함께 유이하게 생존해 있다. 그녀 역시 그처럼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편, 1983년생인 JR은 프랑스 출신의 젊은 사진작가이자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공공장소에 대형 흑백 사진을 기습적으로 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로의 작품 속 얼굴들에 매료된 그들은 협업을 통해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을 완성한다. 이 영화는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과 추구하는 예술, 그리고 지키고자 하는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카메라가 장착된 트럭을 몰고서 시골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인물들을 흑백사진 속에 담는다. 그 사진들은 거대한 벽화로 재탄생한다. 탄광촌을 지키는 마지막 주민, 공장 노동자들, 홀로 농장을 지키는 농부, 항만노동자들의 아내들, 20년 간 자신의 집에 우편을 배달해준 집배원 등의 모습이 마을과 일터의 벽면을 채운다. 크게 확대되어 건물 벽을 가득 채운 인물들은 주변의 이목을 끈다. 벽화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미미했던 가시성을 벽화의 물리적 크기로 보상받는다. ‘거인'이 된 그들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지켜온 그들은 그 압도적 규모로 치하와 위로를 받는다. 그야말로 사이즈가 문제인 예술로서 바르다와 JR이 건네는 기발한 농담이자 유쾌한 도발이다.


거대해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사람들은 갖가지 소회를 털어놓는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못생겼다고 수줍어하기도 하며 벽화가 SNS 상에 퍼져서 유명 인사가 되어버린 곤란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다른 목격자들도 감상을 덧붙인다. 물론 인간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한 쌍의 튼튼한 뿔을 가진 염소의 얼굴을 벽에 새기며 생산성을 위해 가축의 뿔이 잘려나가는 시대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는 그 작품들을 화두로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바르다에게 그 여행은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며 기억을 되새기는 여정과 겹쳐진다. 애초에, 선글라스를 쓴 JR이 그처럼 선글라스 벗기를 싫어했던 고다르를 떠오르게 한다는 고백에서부터 여행의 잠재적 방향성이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먼 옛날, 바르다의 단편 영화에 출연했던 고다르는 당시 그녀를 위해 고집스레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줬다. 그러나 JR은 고다르와 달리 계속 선글라스를 고수하자, 그들은 티격태격한다. 앞서 만난 염소가 떠올린 과거를 찾아 노르망디 해변에 이른다. 그 위로 떨어진,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거대한 벙커 위에는 바르다가 젊은 시절에 촬영한 친구의 흑백사진을 아로 새긴다. 그녀의 표현대로, 그는 마치 요람 안에 있는 아이 같다. 그러나 다음날, 밀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씻겨내려갔다. 벙커 위에서 새로 태어난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우리는 그제야 물에 금세 씻겨나가고 마는 그 사진의 덧없는 운명과 마주한다. 그만큼 그들의 예술은 인간을 점점 닮아간다.


그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고다르의 집이다. 바르다는 용기를 내어 5년 만에 그를 만나러 간다. 그러나 그는 집에 없었고, 대신 그녀에게 전하는 짧은 메시지만을 유리창에 남겨놓았다. JR은 실망하는 바르다를 위해 비로소 선글라스를 벗는다. 그러나 시력이 나쁜 그녀의 눈에는 그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 보인다. 관객 역시 그녀의 시점에서 그의 흐릿한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녀는 보이지는 않지만 보인다는 모순적인 말을 내뱉는다. 중요한 것은 그 선글라스를 벗는 간단한 행위이다. 그것은 과거에 그러했든 우정을 위한 몸짓이다. 그의 얼굴을 흐리게 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우정에 주목하라는 메시지이다. 사진을 통해 삶을 독려하기 위한 여정은 뜻하지 않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과 겹쳐지며, 궁극적으로는 세대를 초월한 우정에 정착한다. 예술은 공간을 가로지르고 시간을 거스르며 관계를 활짝 열어젖힌다. 그곳이 예술의 최종 목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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