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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 연재 [이하연의 귀촌이야기⑩]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난로에 장작불 붙여놓고
이하연(2018-11-16 12:54:58)



얼마 전 우리집에는 또 새 식구들이 생겼다. 염소, 강아지에 이어 암탉 세 마리와 토끼 한 마리. 아버지가 키우던 것들을 사정상 떠맡게 되었다. 뚝딱뚝딱 집을 만들어줄 능력이 안 되어 빈 창고에 울타리를 내달았다. 낮엔 풀밭에서 일광욕을 하고 밤엔 창고에 들어가서 자면 되겠지 싶었다. 매일 한 알 씩 달걀을 꺼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며칠 닭들과 함께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던 토끼가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어디로 숨은걸까하는 궁금증은 어느 날 텃밭에서 내 양배추를 뜯어먹고 있는 토끼를 발견하고서야 해소가 되었다. 땅파기가 젤 쉬웠어요 라고 내키는대로 울타리를 무시하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얼기설기 울타리를 쳐놓고 말았던 탓이다. 다른 때 같으면 '그 귀한 양배추를!' 하고 쫓아가서 어떻게든 잡아넣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 토끼가 너무 귀여운 것이다. 오물오물 풀을 뜯어먹는 비주얼 하나로 그냥 용서가 되어 버렸다. 그래 양배추쯤은 너 먹어라. 다행인지 서리가 몇 번 내린 텃밭엔 작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아직은 계절상 가을, 시골은 가을걷이가 한창이지만, 새벽에 하얗게 내린 서리를 보면 이제 겨울나기 준비를 할 때인가 마음이 조급해 진다. 벌써 아침저녁 추위는 겨울잠바를 꺼내입을 정도다. 토끼도 추우면 집으로 들어가겠지. 하긴 토끼는 털이 따뜻하니까 겨울 눈밭에서도 잘도 뛰어댕길 것 같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가두어 놓는 일이 썩 내키질 않는다. 말썽쟁이 토끼 한 마리로 소소한 재미를 더하면 얻는 것도 있겠지. 한 마리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어.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어쩔 수 없는 긍정 유전자가 또 발동을 한다.
나는 추운 게 너무너무 싫다. 웬만하면 영하의 기온은 모르고 살던 따뜻한 남해 바다에서 살다가 처음 맞이한 서울의 겨울, 그 도시의 공기는 어찌나 춥던지. 학교 다닐 때부터 전전하던 셋방살이는 아무리 옷을 껴입고 이불을 둘둘 싸매도 뼛속까지 추웠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보일러를 틀기에 주머니 사정은 항상 빈곤했다. 어찌나 웅크렸던지 어느 해부터는 어깨가 꽝꽝 뭉쳐서 근육을 풀어주는 약을 먹고 버텼다. 그래서 남쪽으로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조금 따뜻한 곳에서 살고 싶은 욕구. 어떤 책의 제목처럼 남쪽으로 튀어!
남쪽으로 오면 그래도 좀 따시겠지 싶었으나 웬걸. 시골의 겨울은 만만치가 않다. 이곳이 동계올림픽을 할 정도로 추워서 동계면이라는 썰렁한 우스개소리처럼 이름 때문에 더 추운 것만 같은 동계면. 혼자서는 두 번째 맞는 이곳의 겨울이다. 기름 한 드럼에 올해는 거의 이십만원을 치고 올라가는 중이고, 가난한 동네 할머니들은 여느 때처럼 전기장판 한 장에 의지해 겨울을 나실 참이다. 작년엔 이사하고 어리버리 뚝딱뚝딱 집 고치면서 갑자기 겨울을 맞아버려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 다만 잠자는 방 한 칸에는 기름 보일러를 깔고 들어간지라 겨울에 몇 푼이라도 돈 버는 것은 다 등따시고 배부르게 살기 위해서라고 짐짓 핑계를 대며 방 온도를 높였다. 서울에서 살 때보다 벌이도 없으면서 왜 마음이 그렇게 달라지는 건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를 일이다. 다만 살림이 궁색하니 더 궁상떨기 싫은 마음, 어디에 가서든 난 괜찮다라고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도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골에 와서 몸 쓰면서 고생했으니까 그 정도는 써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토닥토닥 그런 마음. 하지만 따뜻함을 얻은 대신 홀쭉해진 호주머니는 그만큼 허전했다. 시골에 오면 돈 조금만 벌고 여유롭게 살 줄 알았는데, 단지 따뜻하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벌어야 되는가를 계산하면서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갔고,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맞는 겨울이다.
사실 도시에서는 혼자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온통 손가는 일이다. 토끼집 하나를 짓는 일도 혼자서는 엄두가 잘 나질 않는다. 어쩌면 좀더 생태적인 삶을 꿈꾸고 내려온 농촌이다. 마음으로는 전기는 조금만 쓰고 적정기술로 난방을 하고 자원이 순환되는 삶을 상상했다. 그러면서도 느리게 조화롭게 살 수 있을거라고 얼토당토 않은 꿈을 꿨다. 이제 현실에 부딪히자 그 모든 것이 인간의 노동이 꼬박꼬박 성실하게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화덕난로에 빵도 굽고 국도 끓이고 난방도 하려면 장작을 패고 매일 불을 붙이는 노동을 해야한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케 했다. 그렇게 조금씩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의 속도에 익숙한 우리는 그 속도에 맞춰서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 그 길을 우회하려면 구석기 시대급 노동을 통해 여유로운 삶은커녕 고생길을 보장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은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도 뚝딱뚝딱 하는 남성들이 조금은 부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올해 겨울은 어쩌지? 합리적인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 돈을 좀더 벌고 전기와 기름을 사서 쓰면 된다. 하지만 마음은 답을 선회하고 다시 로망을 쫓는다. 타협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둘씩 다 인정해버리면 내가 추구하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조금 (어쩌면 많이) 힘들더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 하지 말라는 것들은 다 하지 않았다면 합리적인 답만 찾아 왔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올해는 매년 완주에서 열리는 적정기술축제 '나는 난로다'에 가서 꼭 마음에 드는 난로를 구해 올 것이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난로에 장작불을 붙여놓고 사람들을 초대해야지. 토끼도 가끔은 따뜻한 난로가에 앉아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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