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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 | 연재 [수요포럼]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와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사회의 차이
제190회 수요포럼 / 좋은 삶의 길을 찾다
윤희숙(2018-12-31 11:17:31)



이번 강좌에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일상의 문제, 물론 거기에 개인적인 문제까지 포함한 명쾌한 해답과 그 해답을 통해 위로받기를 기대했다. 노명우교수가 방송과 인터넷 활동에서 보여줬던 따뜻한 감수성과 유머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직면한 지금 한국의 대중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줄 거라고. 하지만 강의는 그런 감성코드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좀 더 근원적이고 학문적 접근방법으로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큰 위안이 됐던 건 '지금 힘들어 하는 상황과 풀기 어려운 문제의 원인이 반드시 네 탓만은 아니' 라는 답을 얻었다는 거다.



노명우 교수는 인간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 중, 사회학자인 자신에게 가장 와닿는 것으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내던져진 존재이자, 갇힌 존재'라는 표현을 꼽았다.
'내던져진 존재'란 의미에서 인간은 의지와 관계없이 굉장히 많은 것에서 결정을 당하고 규정을 당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삶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음에도 우리 스스로는 우리가 어디에 태어날지에 대한 결정과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못나서가 아니라 단지 그 언어가 우리의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일 뿐'이다. 그는 '인문사회 분야에서 한국 사람이 세계적인 석학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건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그 분야에서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건 영어로 번역된 영어라는 언어로 구성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즉, 인간은 각자 특성을 지니는데 우리 내면의 고유성에 의해 결정되는 특징이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것 나의 내면과는 전혀 상관없는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갇힌 존재'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제한된 요소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유교가 지배하는 조선시대 여성', '제3세계 언어로 쓴 문학작품으로 노벨문학상에 도전하는 작가' 등등.  물론 강한 의지로 한계를 극복하고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노교수는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를 예로 들었다. 피겨 스케이팅 종목은 동양인의 신체조건으로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김연아는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끝없는 노력과 도전으로 그걸 극복하고 세계적인 선수로 우뚝 섬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성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노교수는 "그런 경우 우리는 천재를 부러워하고 박수를 쳐주면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예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걸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 나를 수련하고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관심이 반드시 향해야 될 곳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 어떤 성격인가 그 껍질이 나로 하여금 좋은 삶을 살도록 해 주는가 아니면 방해하는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좋은 삶에 도달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요소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에서 언급한 돈과 쾌감, 삶의 지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소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으뜸으로 꼽은 건 돈이다. 이유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존하는 삶을 살거나 얽매여 종속적으로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돈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다. 경제력이 없다는 말은 자기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미성년자나 자식에게 부양을 받는 부모가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것도 바로 돈 때문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돈만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또 사랑받으면서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기분이 좋지만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었을 때 거기서 오는 기쁨과 남이 나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아서 생기는 모욕감이 돈을 잃고 얻었을 때 느끼는 실망이나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봐 주는가 즉 '타인의 인정'이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살면서 경제적 자율권을 얻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며 주변으로 부터 인정받는 삶을 산다고 해도 나쁜 놈들의 재물이 된다면 좋은 삶을 살 수가 없다. 이용당하지 않을 지혜까지 갖추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혼자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는가?
인간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사나 내면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들과 살고 있느냐와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세계 가치관 조사(世界價値觀調査)는 사회 과학자들이 세계의 각기 다른 문화의 사회문화적, 윤리적, 종교적, 정치적 가치를 조사하기 위해 진행 중인 학술 프로젝트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그 나라 사람들이 '유지하는 삶'(survival values)과 '의미있는 삶'(self expression values)중에서 어느 편에 가까운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평균적인 가치관이 다른 나라 사람과 얼마만큼 다른가를 비교하는 방식이다.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총 4번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매번 '의미있는 삶'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는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3국과 북유럽 국가들이다. 젊은 세대들이 기승전스칸디나비아를 외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반대로 '유지하는 삶'에 치중하는 나라는 아프리카 국가들 특히 소련체제의 붕괴로 독립한 신생공화국들로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겪는 나라들이다. 이 결과에 대해 노교수는 "왜 이런 현상이 나오느냐 인격의 차이는 아니예요. 뭐냐 사회껍질의 차이죠 이게 바로 사회보장이 갖고 있는 힘입니다. 보통은 복지나 사회보장이 낭비냐 쏟아붓는 거냐 그야말로 퍼주기냐 식의 논쟁을 하지만 이쪽 사람들이 이런 가치관을 갖게 된 건 사회보장제도가 바로 그 힘이다"라는 분석을 통해 사회복지시스템의 순기능을 설명했다. 이 조사에 대한 한국의 결과도 흥미로웠다. IMF구제금융을 겪고 나서 한참 지났지만 2008년 두 번째 조사에서 한국은 스웨덴의 결과치로 부터 더 멀어졌으며 심지어 중국 사람보다 더욱 더 물질지향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2015년 조사에서 다시 중국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인간의 품위나 인간다운 가치를 선택하는 평균적인 값으로 이동했지만 매번 조사에서 한국은 전반적으로 비슷한 경제수준의 여타 국가에 비해 물질적인 가치관을 훨씬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선을 추구하는 가치가 중요한 이유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공공선(公共善)이다. 이와 관련한 실험 '죄수의 딜레마'나 '사슴사냥의 딜레마'는 나한테만 유리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모두 유리한 게 뭔지 답이 분명히 나와 있음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최악의 경우를 강요하고 좋은 게 뭔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제일 좋은 것보다 그 다음 것인 차선을 선택하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악셀로드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공공선이 지켜지지 않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인격이 아니라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사회의 차이라는 답을 내렸다.
노명우교수는 "혼자서는 좋은 삶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좋은 삶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 모두를 동시에 바뀔 수 있게 만드는 힘은 정의가 지켜지느냐 아니냐는 거죠.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혼자 바꿨다가 나 혼자 바보되고 그러기 싫어서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내가 먼저 바꿨으나 그 사회가 원칙이 지켜지는 정의로운 사회로 바꿨다면 바뀐 나는, 바뀐 나의 상태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되죠." 악셀로드 연구팀의 결론에서 우리가 이런 교훈을 얻고 개인 개인이 먼저 변하고 이 변화가 확산되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감을 함께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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