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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당신도 '록 인싸'가 될 수 있다
남무성, <페인트 잇 록>
이휘현(2019-01-15 12:51:29)



요즘 '인싸' '아싸'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인터넷이나 SNS에서 종종 등장하기에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인사이더(insider)와 아웃사이더(outsider)를 줄여서 인싸 아싸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자유로울 줄 알았던 가상공간에서 이게 웬 '구별짓기'인가 싶어 씁쓸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이런 말 쉽게 내뱉었다가는 꼰대로 찍혀 곧장 '아싸'가 되기 십상이다. 나라고 '인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하지만 현재의 내가 가진 여러 가지 조건들은 인싸보다는 아싸에 더 가깝다. 오랜 시간 가계빚에 허덕이는 내가 경제적 인싸일리 만무하고, 외모나 학벌 모두 인싸와는 거리가 멀다. 별다른 취미도 없어서 인싸들 근처에 겉절이처럼 치근덕대지도 못한다. 특히 SNS활동은 전무하다시피 하니 나는 이래저래 아싸 인생일 것이다.
그나마 축적한 문화자본이라고 해서 집에 소장하고 있는 몇 천 권의 책이 나를 인싸로 만들어줄까 싶었는데… 천만의 말씀. 책 좀 읽는다고 대접받던 시절은 대학교 때 잠깐 존재했을 뿐, 직장인이 되고 한 가정의 일원이 되면서는 그냥 '책 좀 읽는 아싸'가 되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20대 시절 책만큼이나 탐닉했던 음악 또한 책 신세와 별다를 게 없다. 10여 년간 열심히 모아두었던 수많은 카세트테이프가 결혼과 동시에 처분되었고, 내가 즐겨듣던 음악은 음울하고 칙칙하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금지곡이 된 지 오래다. 그나마 명반 리스트라며 붙들고 있는 1천 여 장의 CD가 내 덕후 시절의 흔적을 힘겹게 간직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 봐도 아싸인 것이다!
그런 내가 요즘 살짝 인싸로 편입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세상에! '퀸'과 '신드롬'이 한 단어로 붙다니!! 이게 21세기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인가. 그렇게 오랜 세월의 강을 건너 오늘의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부활한 퀸과 함께 아주 긴 시간 록음악을 좋아했던 '아싸 아재'도 곧 '인싸'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아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록밴드 퀸의 오랜 팬이다. 퀸의 그 유명한 <Greatest Hits> 컴필레이션 앨범을 23년 째 고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들의 정규앨범 또한 모조리 다 가지고 있을 정도다. 화려한 음색과 다양한 변주의 오페라풍이 일품인 프레디 머큐리의 곡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베이시스트 존 디컨의 우직하지만 세련된 감각의 곡들도 좋다. 꽃미남이자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의 <Radio Ga Ga>는 두 번 말해봐야 입 아픈 명불허전의 곡이다.
그런 퀸의 정규앨범을 차례대로 듣다보면 영화 007시리즈가 떠오른다. 007시리즈는 스파이 스릴러라는 장르, 그리고 제임스 본드라는 불멸의 캐릭터를 가지고 당대 유행하던 영화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끊임없이 변주를 시도했다(1977년 영화 <스타워즈>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자 만들어진 007 SF 대작 <문레이커>를 떠올려 보자).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활동한 '퀸' 역시 음악에 자신들 고유의 인장을 찍으면서도 당대 유행하던 대중음악의 흐름들을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앨범에 아낌없이 녹여냈다.
퀸은 1970년대 말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시가 폭발시킨 '펑크 록'을 자신들의 정규앨범에서 시도했고, 디스코 열풍을 과감히 수용했으며, 1980년대 초 광풍으로 몰아친 마이클 잭슨 류의 팝음악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퀸은 '록의 정통성'을 부르짖는 이들로부터 '팝' 밴드로 조롱당하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퀸은 자신들의 길을 오롯이 걸어갔다. 그들은 그렇게 7,80년 대중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1991년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과 함께 무대 뒤로 퇴장했던 것이다.
그런 퀸이 사 반 세기의 세월을 훌쩍 넘어 우리 앞에 보란 듯이 부활하다니. 그것도 지금의 10대 20대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으면서 말이다. 덕분에 자동차 CD플레이어에서 퀸 음악을 들으며 주변사람들로부터 '언젯적 퀸이냐!'는 핀잔을 듣던 나 또한 '첨단 유행의 인싸'로 급부상하게 된 것 아닌가. 사람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쯤 되고 보니, 나는 CD 진열장에 잘 모셔져 있던 내 청춘의 음악들을 적극적으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퀸만 좋아했겠나? 나는 퀸'도' 좋아했다. 퀸 이상으로 좋아했던 너바나, 킹 크림슨,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U2, 라디오헤드 등 수많은 록밴드들이 '아싸'의 봉인에서 해제되었다.
요즘은 우선 핫한 밴드 퀸과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풀어먹으며 주변 사람들을 공략 중이다. 그렇게 퀸을 논하다 보면 동시대의 수퍼 밴드 레드 제플린(1970년대)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고, 또 하드 록의 전설을 논하다 보면 딥 퍼플과 블랙 사바스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원류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블루스 음악을 빼먹어서는 안 되며, 그로부터 파생된 로큰롤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신화, 비틀즈의 브리티시 인베이젼,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 포크와 펑크, 헤비메탈, 얼터너티브 록 등이 굴비 엮듯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눈이 뱅글뱅글 돌아갈 여지가 충분할 터. '록 인싸'가 되느니 그냥 아싸로 남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듯한데,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자 이렇게 긴 사설을 늘어놓았다(참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책 제목은 <페인트 잇 록(Paint It Rock)>이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굿뉴스를 전하자면, 이 책은 만화책이다!! 게다가 책 면면에 유머와 센스가 넘쳐난다. 록음악의 초창기부터 록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얘기되는 1990년대까지가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며 그 안에 다양한 뮤지션의 정보가 촘촘히 들어가 있다. 이는 저자인 남무성의 내공과 무관하지 않은 바. 재즈음악 평론가이자 음반제작자이고 <브라보 재즈 라이프>라는 영화까지 연출한 그는 이미 <재즈 잇 업!(Jazz It Up!)>이라는 만화책으로 재즈 역사를 먼저 선보인 적이 있다. 이른바 대중음악 역사의 거장이라 해도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런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 록 역사책이니 믿고 볼만하지 않은가?
단 배드 뉴스를 하나 전달하자면, 그 방대한 수 십 년 록음악의 역사와 그 수많은 록밴드들을 일일이 다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사실 <페인트 잇 록>은 예전부터 록음악 좀 들어봤다 하는 사람들이 접하기에 딱 좋은 책이다. 록 입문자들이 습득하기에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남무성의 <페인트 잇 록>을 펼치고 유튜브 검색창을 연 후 흑인 블루스 음악부터 시작되는 록의 연대기를 눈과 귀로 가슴 뛰게 음미해보자. 그렇게 꾸준히 가다보면 당신이 감명 깊게 보았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시간과 어느 순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극적인 수많은 록 역사의 순간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도, '록 인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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