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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 | 연재 [윤지용의 두 도시 이야기]
광대한 인도서 만난 신비감
바라나시와 맥그로드간즈
윤지용(2019-04-16 13:00:32)

인도는 아대륙(亞大陸)이다. '버금 아'자를 쓰니 웬만한 대륙에 버금갈 만큼 넓은 땅이고 전 세계 인구의 6분의 1 이상이 살고 있다. 인구가 중국 다음으로 많은 13억 6천만 명이다. 이렇게 큰 나라이니 이십여 일씩 세 번 다녀왔는데도 고작 북인도 언저리밖에 가보지 못했다. 대개의 경우 여행자의 발걸음을 이끄는 힘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이다. 그런데 인도에서 아직 못 가본 곳이 많으면서도 갈 때 마다 꼭 다시 찾게 되는 두 곳이 바라나시와 맥그로드간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흐르는 바라나시
북인도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의 삶, 특히 힌두문화와 뗄 수 없다. 히말라야 산맥의 강고트리 빙하에서 발원하여 뱅골만으로 흘러들기까지 구불구불 2,500km를 흐르는 갠지스의 중하류쯤에 바라나시가 있다. 갠지스강의 지류인 바라나(Varana)강과 아시(Asi)강이 만나는 곳이라 해서 바라나시(Varanasi)가 됐다고 한다.


바라나시가 힌두교의 성지이다보니 여행안내서들에서는 '인도의 영혼', '인도 속의 인도' 같은 수식어들을 붙인다. '역사보다 오래된 도시'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아리아인들이 정착해 살았다고 한다. 바라나시가 힌두교의 성지가 된 이유는 물론 그곳에 갠지스강이 있기 때문이다. 갠지스강은 힌두교도들에게 성스러운 강이다. 갠지스강 자체가 아예 신격(神格)을 가지는 여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래서 갠지스강에 인접한 지역들에서는 매일 저녁마다 '아르띠 뿌자'라는 성대한 예배의식이 열린다.


갠지스강은 힌디어로는 '강가(Ganga)'인데,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 고대 그리스어로 강게스(Gángēs)라 표기했던 것이 영어식 이름 갠지스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인도사람들은 갠지스강을 '마더 강가(Mother Ganga)'라고 부른다. 갠지스강의 존재는 고대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어서 '항하(恒河)'라는 한자이름도 있다. 그래서 '항하사(恒河沙)'라는 수(數)가 생겨났다고 한다. 말 그대로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다는 뜻으로 10의 52제곱, 즉 0이 52개 붙은 천문학적인 숫자이다.
바라나시 여행은 가트에서 시작해서 가트로 끝난다. 갠지스의 강기슭 둔치에서 강물로 이어지는 계단들을 가트(Ghat)라고 한다. 바라나시에는 수십 개의 가트들이 있는데 이 중 다샤스와메드 가트와 마니까르니까 가트, 아시 가트 등이 유명하다. 다샤스와메드 가트는 '메인 가트'라고도 하는데, 이곳에서 저녁마다 아르띠 뿌자 예배의식이 열린다. 이 예배는 인도 카스트제도의 최상위계급인 브라만 승려들이 집전하는데, 휘황한 불빛 아래에서 산스크리트어 힌두경전을 암송하는 낭랑한 독경소리와 심벌즈 비슷한 악기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신비감에 빠져든다.


장작더미들이 쌓여 있고 온종일 자욱한 연기와 재가 날리는 마니까르니까 가트는 '화장터'다. 힌두교도들은 시신을 화장해서 갠지스강에 재를 뿌리면 죽은 이가 고단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단다. 그래서 인도 각지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찾아와 바라나시에서 임종을 맞고 화장된다. 가트 뒤편의 비좁은 골목길에서는 시신을 화장터로 운구하는 상여행렬을 자주 만나게 된다. 상여를 메고 운구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연신 "람 남 사뜨야 헤~"라는 주문을 외친다. 현지인에게 뜻을 물으니 "The name of the Rama is the truth.(라마신의 이름이 진리이다)"라고 알려준다.
이른 아침에 가트의 계단에 앉아 강물 위로 막 올라온 해를 바라보면서 '멍 때리고' 있으면 금방 해탈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평화롭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한 이 풍경과 달리 가까이 들여다보면 갠지스강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시신을 화장한 재, 각종 쓰레기와 생활하수들이 둥둥 떠다닌다. 그렇지만 인도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성스러운 강이다. 인도 전역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사시사철 붐빈다. 강물을 성수(聖水)로 여기며 마시고 목욕하고 미리 준비해온 물병에 고이고이 담아간다. 신앙의 힘은 이렇게 초현실적이다.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은 해질녘이면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간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아서인지 아예 '선재네 보트', '철수네 보트' 같은 우리말 간판을 걸고 영업하는 뱃사공들도 있다. 뱃사공 총각인 선재와 철수는 인도사람인데도 유창한 우리말로 배를 탄 손님들에게 갠지스강 이야기를 풀어내준다. 나는 '선재네 보트' 단골인데, 이 총각의 우리말 이름 선재는 류시화 시인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어스름하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보트 위에서 바라보는 갠지스의 풍경도 가히 몽환적이다. 석양빛을 받아 금빛으로 출렁거리는 잔물결들과 가트 뒤편에 줄지어 서 있는 오래된 건물들의 실루엣, 멀리 마니까르니까 가트 화장터에서 일렁거리는 불꽃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함께 흐른다. 그리고 디아를 강물에 띄워 보낸다. 디아는 바나나잎으로 만든 작은 접시에 종이꽃 장식과 키 낮은 양초를 얹은 것인데 어두워지면 초에 불을 붙여 강물에 띄운다. 해가 저물기 전 늦은 오후가 되면 강변에서 어린아이들이 여행자들에게 디아를 판다. 본래 힌두교도들이 디아를 띄우는 것은 여신 갠지스에 대한 경배의 의미라는데, 외국인 여행자들은 디아를 띄우면서 소원을 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바라나시 근교에 있는 사르나트라는 곳은 불교에서 '초전법륜지(初傳法輪地)'라고 한다. 이천오백 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섯 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설법하신 곳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불교신자들도 성지순례로 자주 찾는 곳이다. 한자말로 '녹야원(鹿野園)'이라고도 하는 이곳에는 기원전 3세기에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왕이 세웠다는 거대한 스투파(불탑)가 있다. 먼 옛날 혜초스님도 바라나시에 들러서 <왕오천축국전>에 '피라닐사(彼羅痆斯)'라고 썼다.
모든 여행자들이 바라나시에 매혹되는 것은 아니다. "드넓은 인도 땅에서 오직 한 곳만 가볼 수 있다면 단연코 바라나시에 가야 한다."는 이들도 많지만,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미로 같은 골목길들에는 주인 없는 개들이 쓰레기를 뒤져 먹거나 널부러져 낮잠을 자고 개똥과 소똥이 사방에 널려 있어 발걸음을 조심해야 한다. 후텁지근한 습기와 알 수 없는 냄새를 머금은 공기 때문에 숨쉬는 것조차 고역스럽다는 이들도 있다. 위생환경 탓인지 물갈이 설사병은 기본이다. 블로그나 유투브에서 바라나시를 검색하면 '바라나시 탈출기'라는 제목의 글이나 동영상을 더러 볼 수 있다. 어쨌든 바라나시는 인도를 여행한 이들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곳이다.


티베트고원을 향한 그리움, 맥그로드간즈
맥그로드간즈는 인도의 서북부 히말라야 기슭에 있는 산골마을이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초저녁에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밤새 달려 다음날 아침 8시쯤에 도착한다. 해발 2천 미터 높이의 산간지역이다 보니 인도에서는 드물게 기후가 선선해서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군이 선호했던 주둔지였다고 한다. 마을의 이름도 영국인 총독이었던 맥클로드(Mcleod)의 이름을 땄다. 이 지역을 '다람살라'라고 부르는 여행자들도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산 아래쪽에 있는 도시가 다람살라이고 맥그로드간즈는 다람살라시의 외곽 고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바라나시가 '인도 속의 인도'라면, 맥그로드간즈는 '인도 속의 티베트'다. '티베트보다 더 티베트 같은 곳'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에 점령되어 고유의 문화가 파괴되어가는 티베트 땅에 비해 오히려 티베트민족의 정체성을 더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곳 맥그로드간즈에 달라이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고원의 유목민족이 세운 나라 '토번(吐蕃)'은 중국대륙의 역대 제국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강대국이었다. 그 후 점점 국력이 쇠퇴해져 18세기 청나라 건륭제 시절에 중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950년대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진주로 주권을 잃고 중국의 식민지가 되어 시짱(西藏)자치구에 편입되었다. 당시 십대 소년으로서 티베트 불교의 최고지도자이자 국가원수였던 달라이라마는 1959년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인도로 탈출했다. 이때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총리가 달라이라마와 망명정부의 거처로 제공한 곳이 맥그로드간즈다.
본래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은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있는 포탈라 궁(宮)이었지만, 지금은 이곳 맥그로드간즈에 있는 남걀사원이 티베트불교의 거점이다. 규모야 비할 바 못 되지만, 가톨릭으로 말하면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과 비슷한 위상의 사원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스님들도 많이 유학하고 있는 이 사원에서는 정기적으로 달라이라마가 직접 설법을 하기도 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독특한 것들 중 하나가 '마니차'이다. 금속으로 만든 원통인데 사원이나 길거리에 여러 개씩 설치해놓은 대형 마니차도 있고 신도들이 휴대하는 작은 것까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티베트불교에서는 손으로 이 마니차를 한 번씩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남걀사원 옆쪽에는 티베트박물관이 있다. 말이 박물관이지만 전시관 정도 규모의 소박한 2층 건물인데, 중국에 나라를 빼앗긴 아픈 역사와 중국정부의 탄압을 증언하는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문 안쪽 벽에는 중국의 압제에 항거하다가 목숨을 잃은 티베트 분리독립운동 '열사'들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우리도 나라를 잃었던 역사를 가진 탓에 티베트민족의 슬픔에 남다른 공감을 느끼게 된다.


맥그로드간즈를 찾은 여행자들이 빠뜨릴 수 없는 곳이 '트리운드'다. 우리나라의 백두산 높이와 비슷한 해발 2,875미터의 봉우리지만, 맥그로드간즈 자체가 해발 2천 미터 높이에 있으니 8~9백 미터만 올라가면 나오는 '뒷산'격이다. 반나절 트래킹코스인데 어린아이를 안고 올라가는 여성도 있고 슬리퍼를 신은 사람도 가끔 만날 정도이다. 트리운드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텐트를 갖고 올라와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무덥고 혼잡한 인도, '여행으로 떠났다가 극기훈련을 하고 온다'는 인도여행에 지친 여행자들이 며칠씩 한가롭게 묵으면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 맥그로드간즈다. 청량한 산바람이 건듯건듯 불고 숲 속 새소리가 평온하게 아침잠을 깨워주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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