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9.6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도스또예프스끼, 그 위대한 여정의 시작
도스또예프스끼 『가난한 사람들』
이휘현(2019-06-18 11:08:29)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예술가들 중 시작부터 화려하게 비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성공스토리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처럼, 초반의 좌절과 고전을 어찌어찌 극복하여 결국 세상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구조를 따른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에게 친숙한 대중문화 영역을 훑어보자. 어느새 전 세계가 열광하는 팝의 아이콘이 되어 '제2의 비틀스 현상'마저 운운하게 만드는 방탄소년단의 시작은 '흙수저 아이돌'이라는 조롱 아닌 조롱이었다. 세계적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감독 봉준호는 2000년 상업영화 데뷔작 <플랜더스의 개>로 대중들에게 첫인사를 했지만 돌아온 성적표는 처참했다. 관객 만 명을 채우지 못한 결과와 함께 그의 첫 작품은 스크린에서 피도 눈물도 없이 퇴출당했던 것이다. 1992년 데뷔한 박찬욱의 첫 작품 제목은 <달은... 해가 꾸는 꿈>이었다. 당대 인기가수 이승철을 기용한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에서 싸그리 철퇴를 맞았다. 1997년 그의 두 번째 작품 <3인조>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
이 얼마나 극적인가! <3인조>를 만든 박찬욱이라는 이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박찬욱이라는 이가 동명이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말이다. 어쩌면 20세기에 남긴 박찬욱의 엉뚱한 유산이 21세기에 남기고 있는 그의 업적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배경으로 깔린 흑역사가 지금 누리는 화양연화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건 만고의 진리 아니던가.
하지만 예외도 있다. 시작부터 천재로 인정받기 시작해 결국 생몰 이후에도 위대한 예술가로
인류의 역사에 남게 된 인물들 말이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표도로 도스또예프스끼(1821-1881) 또한 그 예외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세상에 알려진 경로대로 고전 독파의 과정을 밟아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어본 건 20대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아뿔싸! 그런 범생스러운 20대 시절이 흘러가고 나자 무슨 삐딱한 마음이 들었는지, 도스또예프스끼의 전 작품을 한 번 독파해봐야겠다는 출처 불명의 욕망이 불끈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그 근본 없는 욕망이 직조해 낸 소중한 독서 경험이다. 30대 초반 처음 읽어보았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재밌는 소설이 왜 이리도 알려지지 않았는가, 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 후 최근까지 총 네 번의 독서가 이루어졌으니, 도스또예프스끼의 유명세 없는 작품치고는 꽤 호사를 누린 셈이다. 적어도 지극히 나라는 한 개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는 말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러시아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아이였다.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우리가 요즘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의사 집안을 도스또예프스끼 당대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당시 러시아에서 의사라는 신분은 공무원에 가까운, 그저 박봉에 시달리는 직업군에 불과했다. 녹록찮은 가정 형편 때문이었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지독한 구두쇠였다. 낭비벽과 도박벽으로 돈과 명성, 문학적 업적을 술술 까먹어 대던 훗날의 도스또예프스끼와는 상반된 캐릭터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경제적 궁핍과 어머니의 부재. 어쩌면 천재 예술가의 빛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 줄 유년시절 흑역사의 배경이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맞춤옷처럼 딱 펼쳐졌는지도 모르겠다. 공병학교 출신의 도스또예프스끼는 당시 무한히 열려 있던 그 분야의 직업을 보기 좋게 외면하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 첫 결과물이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1845년)인 것이다. 이 소설은 스물 네 살의 문학청년 도스또예프스끼를 단숨에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 부각시켰다.
우리에게는 <역사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역사학자 E.H.카의 첫 저작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인데(한국어 번역본이 있다. 일독을 권한다!), 여하튼 카의 평전에 따르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첫 소설의 대성공에 크게 도취되었던 듯하다. 경제적 현실 감각은 더욱 무뎌져서, 훗날 명성에 걸맞지 않게 박한 원고료를 감수해 가면서도 매일 무수한 글을 써대었던 이유가 순수한 창작욕이 아니라 노름빚을 갚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꽤나 알려진 사실 아닌가.
부와 명예를 얻고자 글을 썼던 도스또예프스끼의 때 이른 성공이 그를 더욱 어둠으로 내몰아버린 아이러니. 중편 <가난한 사람들>은 제목으로 그의 미래를 예견하듯 그렇게 탄생했다. 내용 또한 이후 펼쳐질 도스또예프스끼의 어두운 운명을 암시하는 듯 지극히 암울하다.


여기 두 남녀가 있다. 젊고 아름답지만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여인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녀의 먼 친척이자, 이웃집에 살며 그녀를 극진히 사랑하는 하급 공무원 마까르 알렉세예비치(40대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4월 8일 시작되어 9월 30일에 끝나는, 약 반년 가까운 기간 동안 두 남녀가 주고받는 편지 형식의 글로 이 소설은 채워져 있다. 내용은 꽤 신파스럽다. 가난해서 부잣집 속물에게 팔리듯 시집가야 하는 젊은 여인, 그 여인을 역시나 가난하기 때문에 보낼 수밖에 없는 무능한 중년 남자. 그리고 이야기는 예견된 비극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간다.
이 작품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건, 도스또예프스끼 문학에 인장처럼 찍힌 몇몇 요소들과 궤를 달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도스또예프스끼가 남겨 놓은 문학 속 그 어두운 심연의 전조가 이 작품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작품은 청년 도스또예프스끼의 패기와 야심, 치기 등이 어려 소위 그의 대작으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후반기 작품들에 비해 훨씬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와 간결한 문장이 주를 이룬다. 선악의 경계가 후반기 작품에 비해 비교적 또렷하고, 당대의 세태를 여실히 보여주고자 하는 '리얼리즘 소설'로서의 성격이 농후하다. '심리소설'로 분류되는 후반기 작품들에 비하면 주제의식이 명료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이해가 빠르고 몰입하기도 쉽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순삭'하기 좋은 소설인 셈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고, 소설 속 대사 한마디가 몇 페이지씩 쏟아져 나오는 고구마 전개에 속이 터지기도 한다. 도대체 제정신이 아닌 듯한 주인공들의 심리와 행태에는 저절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그런데도 자꾸 읽다 보면 점점 도스또예프스끼의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 문제는 '도스또예프스끼 월드'의 내부로 들어서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인데, 일단 긴 호흡으로 계획을 잡고 우선 쉬운 것부터 공략해보면 어떨까(한국에는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이 번역되어 있다. 얼마나 축복받을 만한 일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그 장구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에피타이저로서,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