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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냄새가 일깨우는 수치심, 그리고 계급의식
기생충
김경태(2019-07-17 11:03:57)



'기택(송강호)'의 아들 '기우(최우식)'는 친구의 소개로 '박사장(이선균)' 딸의 과외를 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기택 가족은 다양한 계략을 써가며 박사장 집에 하나둘씩 취직을 한다. 이들에게는 계급의식이 없고 고로 계급투쟁에도 관심이 없다. 부자에 대한 막연한 증오감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다. 그래서 이들은 금품이 아니라 (일)자리를 훔친다. ​오로지 가족의 생존을 위해 비겁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을 뿐, 상류층에게 해를 가하거나 법을 어길 생각은 없다. 졸업증명서를 위조하지만,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언젠가 그 대학에 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큰 욕심 없이 일한만큼의 대가를 받으려는 최소한의 자본주의적 양심을 지닌다. 그들은 깔끔하게 치장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면서 외양과 태도에서 위화감 없이 상류층의 삶에 섞여들어 간다.


어느 날, 기택 가족의 모함으로 쫓겨난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저택으로 돌아오면서 지하에 숨어살고 있는 남편 '근세(박명훈)'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제 기생충들 간의 자리싸움이 시작되었다. 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동일한 하층계급 내에서의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고 안쓰러운 다툼이다. 계급의식이 없는 그들은 연대하지 못한다. 따라서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은 봐달라고 애원하는 문광을 단호하게 거부하다. 그녀는 동일한 계층에 대한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가정부로서의 투철한 직업의식, 혹은 소시민으로서의 반성 없는 준법정신을 지닌다. 기생충은 자신이 기생하는 생물(가족/국가/체제)의 안전한 존속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충숙은 의도치 않게 문광을 죽이고 만다.


한편, 박사장은 ​선을 지킬 줄 아는 기택의 태도에 만족해하면서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어'라고 냉소적으로 덧붙인다. 결국 스스로는 맡기 힘들만큼 익숙해진, 그 반지하의 냄새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차마 꾸며낼 수 없고 절대 지워낼 수 없는 계급적 본질이다. 그 냄새에 대한 자각은, 온 가족이 빈 저택의 거실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시며 부자 흉내를 내는 현실 도피의 삶에 조금씩 균열을 낸다. ​다음날, 지하를 빠져나온 근세는 박사장 아들의 생일 파티에서 기택의 딸 '기정(박소담)'을 칼로 찔러 죽이며 아내의 복수를 한다. 곧바로, 충숙은 근세와의 몸싸움 끝에 그를 죽인다. 아수라장 속에서 박사장은 코를 막고 인상을 쓰며, 근세의 시체 밑에서 기택이 던진 열쇠를 줍는다. 그 순간, 기택은 그 칼을 들어 박사장을 찌른다.


박사장과 그의 아내 '연교(조여정)'의 패착과 불행은 인맥에 대한 맹신에 있다. 애초에 기우의 졸업증명서만 제대로 확인했다면 면했을 파국이다. 더 앞서서는, 유명 건축가였던 전 집주인의 가정부였기에 믿고 쓴 문광의 배신이 있었다. 기택 가족이 그 집안에 기생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자신들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박사장과 연교의 인맥에 대한 의존과 조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에게 인맥은 상류층이 욕망하는 이상적인 카르텔로,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불특정한 하층계급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비합리적으로 작동한다.


기택의 계급의식은 자존심의 훼손, 즉 수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냄새가, 그리고 그 냄새에 찡그리는 박사장의 표정이 기택의 계급적 수치심을 일깨운다. 수치심은 사회의 결함과 마주하도록 이끄는 반성적 정동이다. 그것은 가족 이기주의 안에서 얻어내고 지켜낸, 자신의 번듯한 일자리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가족주의 회로 안에서 반복되는 하층계급 간의 복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기택은 박사장을 죽이면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그는 '냄새나는' 근세와 동일시하며 가족 유대를 넘어 계급 연대로 돌진한다. 비록 몸은 갇혀 있지만, 박사장에게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전등불을 깜빡이던 근세와는 다른 자율적인 삶을 기택은 살 것이다. (김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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