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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 | 연재 [SNS 속 세상]
레트로 문화와 밀레니엄 세대
오민정(2019-07-17 11:06:29)



레트로, 여전히 '힙'한 문화적 취향
모처럼 집에 있었던 주말, SNS를 통해 한 청년문화행사 게시물을 보고 못마땅해 있으려니 엄마가 옆에서 물으셨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길래 얼굴이 그 모양이야?" "우리나라 청년행사는 무슨 이런 서체만 쓰기로 대동단결이라도 했나. 어떻게 죄다 비슷해." 그러자 엄마가 등짝 스매싱을 날리시며 말씀하셨다. "니꺼나 잘해!"


엄마에게 등짝을 맞던 순간,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서체는 여전히 그들이 '힙'하다고 느끼는 '문화'였구나. 그때 내가 보았던 서체는 다름 아닌 '김기조체'였다. 김기조체는 1970~80년대의 느낌을 살린 복고풍의 서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요즘 출퇴근하며 보았던 '개화기 패션'과 '뉴트로 패션', 'OO상회'같은 가게 간판 등이 차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다시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그런데 대체, 왜 기성세대도 아니고 밀레니엄 세대가 레트로 문화에 열광하는 거지?!"


레트로는 추억, 회상의 의미를 가진 Retrospect의 줄임말이다. 다음 국어사전에서는 레트로의 사전적 정의를 '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레트로 문화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거나 차용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느낌과 그 시대의 감각을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고 응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밀레니엄 세대, 레트로에 빠지다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틋함. 이런 맥락에서 기성세대가 레트로 문화에 환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레트로 문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1960년대 등장했지만, 1990년대 중반을 거쳐 전 세계적인 대중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21세기의 문화 현상이자 메가 트렌드로 까지 자리매김했다. 실제 길을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이러한 서체와 이미지를 담은 숱한 간판이며 '경성OOO'과 같이 레트로 감성으로 인테리어가 된 상점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곳들을 찾는 연령층은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세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레트로 문화는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의 정서를 불러일으키지만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오히려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또한 시차를 두기는 하지만 사회적 위기에 직면한 공통적인 환경이나 현대문명이 가진 속도에 대한 불안 등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문화 흐름과 지금의 레트로 문화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시대를 뛰어넘은 공감과 무기력한 몽상가들의 자족적 위안 사이
그러한 측면에서, 이전의 형식과 현재의 레트로 문화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 바로 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과거 각 시대의 젊은 세대들이 그 시대의 유행, 스타일을 도전 또는 탈출구로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 현상으로 확산시켰다면 지금 세대의 레트로 문화는 적극적인 활동보다는 상상, 공상에 만족하는 경향을 보인다. 낭만적이었던 시대의 문화를 간접 소비하면서, 적극적으로 이를 탈피해보려는 시도로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기 보다는 실천의 역사가 있었던 과거의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자족적인 위안을 얻는다.


과거를 꼭 경험해야만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밀레니얼세대에게 레트로는 일시적인 소비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복고이자 놀이, 나아가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문화 흐름이기도 하다. 머지않은 미래, 전문가들은 2030년 쯤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전 세계적 22억명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 소비집단으로 문화소비 주도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의 이러한 문화적 열광이 '레트로 문화'라는 이름으로, 혹시 현재의 혼란과 압박, 변화와 마주하기보다 현실도피적인 과거의 낭만에 위안 받는 데에 그치는, '무기력한 몽상가'들의 취향을 상품화하고 있는 아닌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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