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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 | 연재 [권하는 책]
고립과 고독의 끝에서 만나는 진정한 나
이휘현(2019-08-14 15:32:38)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힐링 에세이'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팍팍한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상처받는 개인은 계속 늘고 있지만, 정작 이를 해결할 공공 차원의 치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다시 희망 없는 미래와 상처받은 내면을 달콤하고 따뜻한 에세이로 달래며 스스로를 위무한다. 하지만, 정말 그것으로 좋은 것일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진정한 '지성'과 '사유의 힘'은 아득한 '고립'과 '고독'을 견딘 끝에 나오는 것일 터다. 여기, 나를 들여다봄으로써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네 권의 책을 소개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은이) / 돌베개 / 2018-10
신영복 옥중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1988년, 신영복의 고결한 사색의 높이는 교도소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감옥 밖에서 갇혀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의 벽을 허물게 했다. 이후 한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울림으로,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에 출간되는 제3판은 출간 30주년을 맞아 표지 디자인을 바꾸고 본문의 가독성을 높이는 디자인으로 재작업하여 새롭게 선보인다.
통혁당 사건으로 20년 20일 영어의 몸을 살았던 무기수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만든 책이다. 폐쇄된 공간 속에 살면서도 감정의 동요 없이 차분하게 자신과 세계를 성찰하는 신영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오히려 담 밖에 있는 이 시대 일상인들의 안락이 얼마나 공허하고 부끄러운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은이), 이목 (옮긴이) / 돌베개 / 2004-09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의 저자이자 양심수 서승, 서준식씨의 동생으로도 유명한 서경식씨. 그가 소년 시절 읽은 책들에 대한 사색과 비평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형성해간 과정을 담고있는 산문집이다. 감상에 빠지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어린 날을 돌아본다.
예민한 감성의 소년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은 성장기 내내 존재를 짓누르는 무거운 틀이었다. 남과 다르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소외감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한국사회와 일본 사회의 허위를 응시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따뜻한 감성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서술된다.
지은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의 일부를 직접 촬영했으며, 저자의 개인적 사진들을 실었다. 책 사이사이 아픈 가족사가 드러나기도. 1995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양윤옥 (옮긴이) / 현대문학 / 2016-04
2015년 일본 발간 당시 초판 10만 부 중 약 90%를 일본 최대 서점 기노쿠니야에서 매입해 유통시켜 큰 화제가 되었던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은 작가가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소설가로서 소설을 써나가는 상황에 대해 일하는 틈틈이 집필해온 원고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출판사 의뢰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작가 자신을 위해 쓴 글이라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총 12장에 걸쳐 35년 동안 지속적으로 소설을 써온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오래도록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의 어려움을 비롯해, 소설가로서의 자질과 태도, 문학상에 관한 솔직한 생각 등을 청중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문체로 편안하게 풀어낸다. 작가 스스로 후기에서도 밝혔지만, 다양한 형태로 글로 쓰거나 말로 해온 것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한 내용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어디선가 읽은 부분들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설 쓰기, 소설가로서의 삶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한자리에 모은 첫 책이기에 하루키의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나 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 존엄하게 살기 위한 인문학 강독회
유창선 (지은이) / 사우 / 2017-12
"책 읽기는 지극히 고독한 행위지만, 그 고독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 저자는 몇 년 동안 수험생처럼 동네 독서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책에 파묻혀 보낸 고독한 시간이었지만 "진즉에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삶의 의미를 묻고 답을 찾아가는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지나 이제 조금은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되었다.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저자는 내면의 힘을 키워준 책 12권을 소개한다. 단순히 인문학 고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오늘 이곳에서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그가 강조하는 싸움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런저런 욕망의 유혹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앎과 삶의 일치라는 숙제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품격 있고 존엄한 삶은 자신의 욕망과 끊임없이 싸우고 일상에서 진실을 지켜나갈 때 가능하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길이다. 싸우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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