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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 연재 [마당기행]
영주는 어떻게 공공건축의 성지가 됐는가
2019 마당·전주도시재생지원센터 공동기획 도시문화기행 <영주> 공공건축,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다
이동혁(2019-11-15 10:55:02)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품은 선비의 고을, 사과와 인삼, 인견으로 유명한 고장, 그동안 많은 이들에게 영주는 딱 그 정도의 도시였다. 도농복합 도시임에도 '도'보다 '농'이 부각돼 마치 영주의 도시권이 부석사와 소수서원, 각종 특산물의 부록처럼 여겨지던 도시였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었고, 그래서 영주의 도시권은 농촌권과 달리 늘 관심 밖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랬던 영주가 지금은 '공공건축의 성지'로 떠오르며 전국 지자체의 관심을 받고 있다. 벤치마킹을 위해 매년 타 지자체 공무원 1,500여 명이 영주를 찾고 있고, 지난 3월 7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방문해 “영주가 성공적으로 도입한 공공건축가 제도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기도 했다.
변화의 바람은 지난 2007년부터 불기 시작했다. 당시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는 개관과 함께 전국 소도시를 대상으로 도심 재생을 위한 마스터플랜 구성에 참여할 곳을 모집했다. 공문을 보낸 열 곳 중 영주만이 유일하게 마스터플랜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9년 완성된 큰 그림을 따라 이듬해 시장 직속으로 '디자인관리단'이 문을 열었고, 당시 조준배 아우리 연구본부장은 직접 부시장급인 단장을 맡고 공공건축가 세 명을 위촉했다. 서울시보다 앞선 국내 최초의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 제도' 도입은 그렇게 이뤄졌다.
지난 10월 26일 '공공건축,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다'를 주제로 떠난 마당 도시문화기행. 초대 영주 디자인관리단장을 역임하며 지금의 영주 공공건축의 기틀을 마련한 조준배 전주시 주거재생 총괄 단장의 안내로 어느 때보다 내밀하고 유익한 이야기들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활성화를 위한 큰 그림, 마스터플랜
“지방 중소도시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가장 큰 어려움은 각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자산이 많지 않다는 것이죠.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공공건축물이었습니다. 공공건축물은 어느 도시에나 전부 있는 건물이죠. 그런 공공건축물을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연결시키는 것이 마스터플랜의 목표였습니다."
본래 공공건축은 국가 기관에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짓는 건축물 일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전자입찰제를 통해 가장 낮은 가격을 부르는 건축가에게 시공을 맡기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어느샌가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능은 뒷전으로 밀리고, 질 낮은 건축물들만이 계속 생산되고 있었다.
조 단장이 고민한 지점은 그런 공공건축물들을 어떻게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주는 공간으로 바꿀 것인가였다. 나아가서는 단순히 서비스의 영역을 넘어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큰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는 네 가지 공공건축 체계를 제안했다.
하나, 공공건축물의 생산 과정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바꾸자(각 부서별로 나뉜 행정을 통합할 수 있는 체계)
둘, 건축이 이뤄지는 모든 프로세스를 새롭게 만들자(전문가와 행정이 함께 일하는 협력적 디자인 관리 시스템)
셋, 주민 참여를 확대시키자(건물의 건축부터 운영까지 함께 고민하고 참여할 수 있는 체계 구축)
넷, 일관성 있는 도시계획을 수립하자(도시의 장이 바뀌어도 유연성 있게 지속될 수 있는 계획)


노인복지관과 장애인종합복지관
조 단장이 제시한 마스터플랜을 토대로 영주는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곳은 바로 '삼각지'였다. 프로젝트 시작 전만 해도 시 중심에 위치한 삼각지는 중앙선, 영동선, 북영주선 세 개의 철길로 갇힌, 소위 못 사는 사람들의 땅이었다. 하지만 노인복지관과 장애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서고, 삼각지 마을과 휴천3동 주민들을 잇는 연결 도로가 새롭게 개설되면서 고립의 대명사로 손꼽히던 지역은 매력적인 지역 명소로 새롭게 거듭나게 됐다.
“노인복지관의 경우 노인들만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찾아와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노인종합복지관과 비교하면 이런 부분에서 차이가 확연합니다. 오피스 건물처럼 조성된 다른 지역 노인복지관은 이미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선뜻 들어가기가 힘들죠. 그러면 노인분들만 모이는 닫힌 공간이 됩니다. 이처럼 영주노인종합복지관은 그 기능도 기능이지만,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공간으로서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노인복지관 바로 인근에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신축하여 두 건물 간의 연계를 꾀한 점도 돋보이는 선택이었다. 노인 중에 장애를 가진 이들이 많아서 서로가 효율적으로 양쪽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단 점 역시 주민 편의를 최대한 이끌어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조 단장은 노인복지관과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소개하며 초기 공간 기획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강조했다.
“당장 건물 하나만 짓더라도 굉장히 벌벌 떨면서 예산 아끼려고 기획 용역도 안 하고 그냥 짓는데, 그때 천만 원 안 아끼고 제대로 하면, 나중에 운영 관리하면서 드는 비용이 훨씬 절약되고,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허비하는 그 시간을 다 절약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건물 하나를 짓는 건설비보다 운영, 유지비가 4~5배 정도 더 든다는 설명이다. 건물의 위치 선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민들이 30분 걸려 올 것을 10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질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처럼 초기 기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예산과 삶의 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만, 그동안의 관행을 보면 오직 짓기에만 급급해 제대로된 건축이 이뤄질 수 없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초기 기획을 중요시하며 예산 시스템 자체를 바꿉니다. 처음에 예산을 더 들여서 짜임새 있게 계획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거죠."


실내 수영장
다음 답사지로 찾은 곳은 개장 1년만에 영주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한 실내 수영장이었다. 복싱연습장과 마스터플랜을 공유하는 조건으로 지어진 이 공간은 특히 주민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수영장의 지붕이 도시와 수평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미 설계 단계서부터 공간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 2016년에는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올해 10월에는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수상 소식과는 별개로 조 단장은 이곳에서 우리가 들여다볼 중요한 사실을 새롭게 지적했다. 바로 외곽 개발이 불러온 원도심 쇠퇴 문제다. 실내 수영장이 위치한 가흥동은 현재 영주의 신시가지라 불리는 곳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는 계속 줄고 있는데, 젊은이들은 전부 신시가지로 왔어요. 그래서 원도심은 더 비게 됐고, 이런 현상이 전국의 모든 도시에 다 있습니다. 재생이라는 것이 지금 쇠퇴한 지역을 어떻게 하자, 라는 것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 차원에서 외곽 개발을 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공공건축의 측면에서 실내 수영장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곳이지만, 도시 전체의 측면에서 보면 원도심 공동화를 가속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는 “외곽 개발을 통해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주거 공간만 있고 생활 SOC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개발에 맞춰 도서관이나 노인정 등 공공건축물들도 함께 들어서게 되는데, 그렇게 외곽이 전부 개발되면 그동안 몇 백억을 들여서 진행한 원도심 개발이 전부 무용지물이 된다"고 설명했다.
영주 실내 수영장과 같은 공간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 주민들 입장에선 반길만한 일이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이 또한 도시의 기형적 성장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큰 틀 안에서 도시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고민을 해야 하고, 더 이상 예전처럼 개발 위주의 도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비 도서관
정보가 디지털화되면서 기존에 있던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될지에 대한 고민은 이제 전국 모든 도서관들의 공통된 고민이 됐다. 굳이 도서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원하는 정보를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시대, 그렇다면 현대의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될까. 또한, 입시 체제와 맞물려 독서실의 기능이 강해진 도서관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문제도 부차적으로 따라붙는다. 선비 도서관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실제적인 공간과 책을 읽는 환경을 무엇보다도 부각시켰다.
그런 고민의 흔적이 가장 짙게 묻어나는 곳이 바로 선비 도서관 내에 마련된 어린이 도서관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마치 안방에서 책을 읽는 것마냥 편하게 앉거나 누워 책을 읽는다. 매사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 경직된 공간이 아니라 어쩌면 집보다 더 마음이 놓이는 아늑한 공간이다.
“이렇게 도서관을 경험한 아이들이 나중에 성장해서 도서관을 찾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들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닐 겁니다. 서로 소통하고 스스로 힐링을 하는, 그런 부분들까지 포함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는 거죠. 이처럼 선비 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해 나가고 있어요."
선비 도서관이 갖는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 단장은 “10만 이하의 작은 도시에 이런 퀼리티를 가진 건물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란 부분을 생각해 보면, 무척 의미가 큰 건물"이라며, “서울에서 이런 건물 하나를 짓는 것과는 굉장히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것은 결국 영주 같이 작은 도시라도 제대로, 합리적으로만 건물을 지으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좋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시의 규모나 가진 예산의 차이가 아니라 얼마나 합리적인 공간 기획을 하느냐가 관건이란 말, 우리 지역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이야기다.


전통향토음식 체험교육관과 향교골 참사랑 주민복지센터
기행의 마지막 코스로 방문한 곳은 영주 광복로 일대에 조성된 역사문화거리였다. 영주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광복로는 3.1운동 당시 사람들이 만세운동을 펼쳤던 거점 공간이기도 했다. 이곳 원도심에서 기행단은 청소년 문화활동공간을 비롯해 여말선초박물관, 청소년 문화의 집 등 다채로운 공공건축 사례들을 돌아봤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전통향토음식 체험교육관과 향교골 참사랑 주민복지센터였다.
“전통향토음식 체험교육관과 향교골 참사랑 주민복지센터이 갖는 의미를 살펴 보려면 먼저 그 사업 과정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원래 두 건물은 하나의 사업이 아니라 각각 다른 사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서로의 예산을 합칠 수 없었는데, 그것을 조정하고 합쳐서 만들어 낸 협업 작품입니다. 건물 자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만들어 내는 과정들 덕분에 장관상을 세 개 받은 사례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합칠 수 없는 예산을 합쳤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가 사전에 합의를 나눠 지어진 공간을 누가 운영할 건지,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건지, 그런 추후의 계획까지 전부 사전에 조율하고 협의하여 양쪽 건물에 가장 이득이 되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찾았다는 말이다. 말이야 간단하지만, 행정 상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무척 지난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다 한 공간인데, 각 부서에서 보면 해당 분야가 달라서 돈을 섞으면 안 됐죠. 물론 정산도 따로 해야 합니다. 이런 형식적인 부분을 다 극복한 결과물로서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다."
두 공간이 일궈 낸 성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낙후된 원도심의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고, 더불어 땅값까지 올랐다. 땅값이 올랐다는 말에 기행단 모두가 한 차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사실 그냥 웃으며 지나치기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결코 가볍지 않다.
“땅값 이야기가 그냥 웃고 말 일이 아닙니다.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요. 전에는 이곳 주민들이 다 떠나고 싶어했는데, 지금은 눌러앉아 살아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조금씩 집을 수리하는 분들이 늘고, 다시 눌러앉겠다 마음을 먹는 것이 동네가 살아나는 첫 번째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조 단장은 이곳의 사례가 처음에 제시한 공공건축 마스터플랜에 가장 부합되는 사례라고 말한다. 공공의 사업을 통해서 주민들에게 차츰 활기를 심고, 지역이 변하는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 도시재생을 단번에 이뤄지는 결과물이 아닌 장기적 안목에서 바라봐야 이유기도 하다.
공공건축가 제도를 가장 처음 도입한 영주의 행보는 일종의 실험이기도 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실험임에도 영주의 선도적 사례는 많은 지자체의 관심을 받으며 우리 모두에게 공공건축을 다르게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 귀중한 사례가 다른 지역에서도 눈부시게 꽃피길 기대하며, 기행의 마지막 여정까지 세심하게 안내를 맡아 준 조준배 단장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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