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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우주가 아니라 마음을 보았네
이탈로 칼리노 『우주만화』
이휘현(2019-11-15 11:10:58)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는 인류와 함께 발걸음을 맞춰왔고, 앞으로도 함께 나아갈 것이다. 만약 이야기의 죽음이 도래한다면 그건 곧 인류의 종말을 뜻하는 것일게다.
그렇게 인간 주변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이야기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흥미로운 이야기는, 좀 더 정확히 말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인간에게는, 여러 좋은 것들이 따라온다. 단적인 예로 부와 명예를 들 수 있다. 쏙 빠져드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자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고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이게 바로 흥미로운 이야기와 흥행의 상관관계다.
다만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스토리텔링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술은 흔히 '플롯'이라 불린다. 같은 사건을 소재로 삼아도 단순한 줄거리와 정교하게 짜여진 플롯은 맛이 다르다. 플롯을 이해하면 일단 재밌게 꾸며내는 이야기의 기술 정도는 알고 있는 셈이 된다.
로널드 B. 토비아스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이라는 책에서 크게 두 가지 부류의 플롯을 언급한다. 하나는 마음의 플롯이고 하나는 몸의 플롯이다. 이 두 플롯은 각각 성장 서사(마음의 플롯)과 모험 서사(몸의 플롯)을 대표적인 정서로 품고 있다. 둘의 차이점은 무얼까. 성장 서사는 주인공의 변화가 거대한 모티브지만, 모험 서사에서는 주인공의 변화에 별 관심이 없다. 같은 활극이라 해도 본 시리즈(성장 서사)와 007•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모험 서사)가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대표적인 플롯 중에 어느 것에 더 경도될까. 알 수 없다. 각자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선택은 갈릴 것이다. 다만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나는 성장 서사에 훨씬 끌리는 타입이다.


최근 극장에서 개봉한 공상과학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관객들의 평이 극명하게 갈린 케이스다.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플롯과 대중들이 가진 기대감이라는 것의 함수를 통해 풀어보면 답은 쉽게 드러난다.
브래드 피트라는 스타 배우가 등장하고, 거대 자본이 투입되었으며,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몸의 플롯 즉 모험 서사로 기대했을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모험과 긴장, 갈등과 서스펜스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어 언뜻 보면 모험 서사를 펼치는 SF물 같기도 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이야기가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는 것은 주인공의 변화다. 우주와 모험을 흥미로운 장치로 사용했을 뿐, 영화의 기본 정서는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갈등과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모험 서사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실망했을 것이고, 딱히 성장 서사를 기대하지 않았으나 뜻밖의 정서적 소득을 획득한 성장 서사 애호가들은 박수를 쳤을 것이다. 이 영화의 엇갈린 반응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기 〈우주만화〉라는 제목의 소설이 한 권 놓여있다. 이탈로 칼비노의 이 공상과학소설이 가진 정서는 어디에 뿌리를 대고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은 엉뚱하게도 나를 혼돈의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좀체 꺼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 혼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읽고 난 후 그 여운이 쉽사리 가시지 않으니 이게 무슨 조화 속인지 좀체 알 수가 없다.


이탈로 칼비노(1923~1985)는 전후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하지만 신사실주의에 입각한 당대 수많은 이탈리아 작가들과 달리 그는 환상문학 혹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파고들었다. 흔히 '우리들의 선조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보이지 않는 기사〉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은 전형적인 환상성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또 하나의 대표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 또한 현실이라는 땅 위를 훌쩍 벗어나 있다. 자칫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이 작품들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 환상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풀어내는 '우리들의 삶'이 제법 진득하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읽는 재미도 제법 있다!).

〈우주만화〉는 우리의 삶을 '우주 혹은 지구의 기원'이라는 공상과학의 소재를 통해 풀어낸다는 점에서 여타 그의 환상문학들과 궤를 같이한다. 우주와 지구의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자꾸 우리의 삶이 그 페이지들 위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우주만화〉는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다시 크게 달, 지구, 은하계를 배경으로 한 각각 4개의 에피소드로 나뉘는데, 그 안에 담겨 있는 주제는 진화, 시간, 공간으로 다시 정리할 수 있다.
이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하나다. 이름은 '크프으프크'. 앞뒤로 뒤집어 읽어도 똑같을뿐더러, 사실 발음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런데 더 특이한 것은 이 크프으프크라는 주인공의 정체다. 열두 개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화자로 등장하는 크프으프크는 실재하는 존재인지 그저 떠도는 관념인지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과 공간을 종횡무진하니 그 모호한 정체가 좀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독자들은 처음에 주인공이 어떤 존재인지 추리하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그게 그저 헛된 바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탈로 칼비노가 주인공 크프으프크 그리고 지구와 우주라는 시공간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어떤 사건(모험)이 아니라, 그냥 우리 앞에 놓여있는 이 광대한 배경에서 한 줌의 티끌처럼 왔다가는 우리네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천체망원경인 줄 알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세상은 알고 보니 사람의 마음이라는 현미경 속 풍경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마음의 변화를 담은 일종의 성장 서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크프으프크에게서 우리는 어떤 변화의 느낌도 감지할 수 없다. 이렇듯 모험도 성장도 없는 이 이야기의 알맹이는 무얼까. 그건 어쩌면 '시선'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삶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만화경. 나름의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펼친 이탈로 칼비노의 환상소설 〈우주만화〉가 어쩌면 매우 인간적인 문학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애드 아스트라〉를 보고 난 후 우주를 보러 갔는데 정작 본 것은 마음이었더라는 푸념 어린 관객들의 댓글이 각종 사이트에 제법 넘쳐났음을 기억하는 나는, 혹여 이 영화를 통해 우주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훔쳐본 것에 안도하는 관객들에게 조심스레 이 책을 추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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