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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 | 연재 [SNS 속 세상]
양준일 신드롬
‘탑골 지디’ 양준일의 귀환
오민정(2020-02-10 16:52:44)




2019년 12월, 어느 날 갑자기 SNS에서 가수 양준일에 대한 게시물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할 것 없이 올라오는 게시물마다 #탑골 지디(GD) #시대를 앞서간 가수 #시간여행자 #리베카 등의 해시태그가 점령해 버린 것을 보고 나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2019년, SNS를 점령한 ‘슈가맨’
사실 나는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양준일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내가 이용하는 SNS마다 셋 중 하나 꼴로 그에 대한 게시물이 올라왔고, 올라온 짧은 영상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겨우 기억해 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SNS에 경쟁하듯 올라온 게시물에는 온통 그에 대해 ‘시대를 앞서간 천재’와 같은 대한 격찬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2019년, 양준일이라는 가수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소환된 것은 JTBC에서 방영한 한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바로 한국 가요계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3’(이하 슈가맨)이다. 슈가맨은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할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2015년부터 실제로 이 무대를 통해 다시 소개된 가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방영 이래 2019년의 양준일만큼 화제가 됐던 인물은 여태껏 없었다.


1991년과 2019년,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비록 2019년에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로 재평가됐지만, 사실 양준일은 1991년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한’ 가수였다. 재미교포였던 그가 서툰 한국어 때문에 영어 가사를 많이 썼던 것도, 그가 선보였던 젠더리스 룩과 자유분방한 퍼포먼스도 1991년의 한국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오히려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공연하는 도중 무대 위로 돌이 날아왔으며, 출입국심사담당자에게는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이 싫다’라는 말을 듣고 비자 갱신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준비한 공연도 채 마치지 못한 채 음악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1991년의 한국 사회는 가혹하게도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진 그에게 설 자리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2019년 한국 사회에서 양준일은 28년 전의 차별과 경멸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는 ‘시간여행자’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50대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뉴 잭 스윙풍의 곡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자유분방한 28년 전 모습 그대로였고, 오히려 바뀐 것이 있다면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었다.


단순한 레트로 열풍을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을 키우는 계기가 되길
사실 양준일의 사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양준일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 현재 우리 사회의 어떤 소수자의 이름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렇기에 아마도 2019년의 양준일 신드롬은 우리에게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원망보다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 노력했다는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그의 진정성과 더불어 30여 년 전 ‘다름’에 대한 우리 사회가 그에게 행했던 부끄러운 갑질과 뿌리 깊은 편견을 곱씹는다. 2020년 새해를 맞으며, 양준일 신드롬이 그저 레트로 열풍으로 인해 재발굴 된 한 가수의 성공사례로 남기보다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민정_완주문화재단 정책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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