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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셀리 티스데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이휘현(2020-04-10 12:04:05)



셀리 티스데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지은이 셀리 티스데일
출판사 비영


어쨌거나 다가온다
- 김훈, ‘늙기와 죽기’, <연필로 쓰기>, 66-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나 또한 ‘죽음’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산다. 죽는다는 건 태어나는 순간부터 떠안게 되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누군가들은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하거나 혹은 초연하고자 한다. 의연하게 맞서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는 견디는 쪽이다.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이 그저 오늘이 아니길, 내일도 아니길, 1년 후도 10년 후도 아니길 바라며, 가급적이면 현재라는 시간으로부터 먼 지점에 죽음이 있길 바라며, 노심초사 그렇게 산다.
그렇다. 나는 죽음에 민감하다! 오랜 시간, 나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살아오고 있다. 죽음이 두렵고, 그 두려움이 다른 누군가들에게 들킬까 봐 두렵다.


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는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무자비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는 책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음 이후의 과정이 당사자 안팎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꼼꼼하게 채워져 있다.
이 책에서도 죽음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다. 다만 그 피할 수 없는 잔을 당사자는 그리고 주변인은 어떻게 맞이하고 또 대처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보편적인 문제를 냉철하지만 또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저것을 모아 만들어졌고, 나중엔 다시 따로따로 분리된다.…… 이러한 운명에서 빗겨 간다고 알려진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뭔가 다른 점이 있다. (297쪽)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있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산(生) 자는 그걸 알 턱이 없고, 죽음의 강을 넘어간 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죽음을 말한다는 것은 산 자의 몫도 아니고 죽은 자의 몫도 아니다. 죽음은 그 본질을 알 수 없기에 두려운 것이다.
미국의 작가 필립 로스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에브리맨>, 13쪽)라고 말한다. 무지막지한 처방전이지만, 결국 거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하지만 샐리 티스데일은 이 단순명쾌한 ‘버티기’ 너머의 좀 더 친절하고 좀 더 섬세한 처방전을 제시한다.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 옆에서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죽음을 준비할 때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때 어떤 방법이 유효한지에 대한 실제적 정보도 많이 알고 있다.”(13쪽)


저자 샐리 티스데일에 관한 정보를 이 책에서 상세하게 챙기기는 쉽지 않다. 책표지를 통해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에 이런 정보가 파편처럼 흩뿌려 있다.
1957년생 여성으로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의 어머니는 2년 정도 투병했다. 몇 해 전에는 캐롤이라는 이름의 절친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병명은 유방암이었다.
그는 작가 외에 다른 직업도 가지고 있다. 완화의료팀 간호사로 일하며 일주일에 며칠씩 만성 중증 환자를 돌본다. 여기서 ‘완화의료’라는 개념은 “환자의 신체•정신적 고통 완화에 대한 치료를 아우르는 포괄적 형태의 의료행위. 임종이 임박한 환자는 물론 장기 치료가 필요하거나 투병 과정으로 큰 고통을 겪는 환자와 가족에게 행해진다”(21쪽)라고 정의된다.


아마도 완화의료팀 간호사로서의 이력이 그가 이 책을 쓰는데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고객들 중 해마다 5분의 1 정도가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항시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작가로서 “죽음이 어떻게 다가오고 또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써야 할 의무감을 그는 가졌을 수도 있다.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마주하라고. 죽음이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임을 인정하라고. 좋은 삶(웰빙) 못지않게 좋은 죽음(웰 다잉)도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라고.
불치병을 통고받는 순간 맞닥뜨려야 하는 환자의 심적 고통. 요동치는 마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어떤 대화를 통해 죽음을 선고받은 자와 위로의 소통을 할 수 있는가.
육체적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처방전은 무엇이고, 그 고통마저 뛰어넘는 숭고함은 어떤 마음을 통해 피어나는가. 죽음의 공간은 어느 곳에 배치되는 것이 좋고, 죽음(시신)의 처리는 어떤 게 더 자연스러운 방식인가.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허나 저자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죽음은 보편적이되 각자의 죽음은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개별적인 죽음 속에서 모두 나름의 해법을 찾길 저자는 바란다. 이 과격한 숙제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는 각자의 해법을.


이 책은 총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는 서양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숫자라고 한다. 예수에게는 열 두 제자가 있었고, 1년은 열 두 달이다. 연필은 열 두 개가 한 다스(묶음)이다. 세상은 12라는 숫자를 통해 완성된다.
샐리 티스데일은 왜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총 열 두 개의 챕터를 제시했을까.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가 열 두 단계를 나열하며 결국 죽음이라는 게 ‘삶의 또 다른 완성형’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짐작한다.
우리는 스러져 가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298쪽)
죽음은 삶이라는 빛이 만들어 낸 그림자다. 메멘토 모리!  우리는 항상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두렵지만 죽음을 응시해야 한다. 거기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산재해 있다.
그렇게 ‘죽음을 살(生) 때’, 우리의 삶은 좀 더 반짝반짝 빛이 날 것이다.

글 이휘현 KBS전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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