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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 | 연재 [코로나시대의 집콕 배낭여행]
가성비 높은 알프스, 인스부르크
윤지용(2021-01-06 10:14:40)

가성비 높은 알프스, 인스부르크

윤지용 편집위원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올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치료제도 개발 중이라지만, 예전처럼 다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세상은 아직 멀었다. 당분간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불가능할 터이니, 지난 여행들에서 배낭에 담아온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티롤 알프스의 중심 인스부르크

1997년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전후해서 덕유산 개발이 한창이었다.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무주리조트에 투자하겠다고 찾아왔다. IMF 외환위기가 닥친 직후였으니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마이클 잭슨은 귀빈 중의 귀빈이었다. 그런 대접을 받고 돌아가서 결국 투자는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무렵에 무주리조트 단지 안에 ‘티롤호텔’이 들어섰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콘크리트 고층 빌딩 호텔들과 달리 나지막한 ‘알프스 산장’ 같은 분위기라서 독특했다. 건물 외부는 물론 내장재도 모두 나무로 마감되어 있는 고급 호텔이었다. ‘티롤’이라는 지명을 그때 처음 들어봤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알프스 산간 지방이라고 했다. 과문해서 알프스는 스위스에만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도 알프스산맥이 있었던 것이다.


티롤(Tirol) 지역은 오스트리아 서부의 티롤주(州)와 이탈리아 북부의 트렌티노주에 걸쳐 있는 산악지대로서 유럽 중부를 가로지르는 알프스산맥의 한 가운데에 있다. 해발 3천 미터 준봉들이 즐비하고 강설량이 많아 세계적인 스키 휴양지로 꼽힌다. 오스트리아 티롤 주의 주도(州都)인 인스부르크(Innsbruck)는 독일어로 ‘인(Inn)강의 다리(bruck)’라는 뜻이다. 도나우강의 지류인 인강이 도시를 휘감아 흐르는데, 시가지의 대부분은 강의 남쪽에 있다.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서 겨울부터 봄까지는 시내 어느 곳에서나 설산을 볼 수 있다.


                                                           (인강변의 풍경)

스위스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경험해보았겠지만, 스위스는 물가가 몹시 비싼 편이다. 교통비, 숙박료, 식대 등 모든 것이 비싸다.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한 알프스 산봉인 융프라우를 여행하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비싸게 산 스위스패스도 융프라우지역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산악열차 티켓과 입장료 등을 어차피 따로 내야 한다. 인터라켄이나 라우터브룬넨, 그린덴발트 등에서 하루쯤 묵으면서 융프라우 정상에 다녀오는 데에만 한 사람에 수십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에 비하면 인스부르크 여행은 실속 있게 알프스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스트리아 물가가 스위스에 비해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인스부르크 시내에서 반나절 만에 대중교통 비용으로 알프스 산봉우리에 다녀올 수 있으니, 시간과 비용 모든 면에서 가성비가 높다.


인스부르크의 지붕 노르드케테

시내 북쪽에서 인스부르크 시가를 굽어보고 있는 봉우리 노르드케테(Nordkette)는 해발 2,300미터가 넘는데, 도심에서 지척이라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타면 한 시간도 안 걸린다. 산악열차 정거장은 시의회(Congress)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콩그레스 역이다. 날렵한 곡선과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역사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서울의 동대문시장 건물도 이 사람의 작품이라고 한다. 콩그레스 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인강을 내려다보며 도심을 벗어나면 몇 분 안 가서 해발 860미터에 있는 작은 마을 훙거부르크(Hungerburg)에 도착한다. 이 역도 역시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라서 콩그레스 역과 비슷하게 생겼다.

아직 산의 초입쯤인 훙거부르크는 인스부르크 시가지를 내려다보기에 적당한 높이다.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면서도 너무 작게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이곳에서 다시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산 중턱에 있는 제그루베(Seegrube)까지 간 다음 다시 케이블카를 갈아타야 한다. 제그루베는 해발 1,905미터, 우리나라의 지리산 천왕봉과 비슷한 높이다. 훙거부르크에서부터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트래킹이나 산악용 자전거로 제그루베까지 올라가는 이들도 더러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제그루베에서 정상인 하펠레카르(Hapelekar)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바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레스토랑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눈 쌓인 알프스의 절경을 둘러보며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다.제그루베에서 정상인 하펠레카르까지는 케이블카로 2~3분쯤 걸린다. 해발 2256미터인 케이블카 종점에서 몇 걸음 걸어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Top of Innsbruck’라는 표지판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인스부르크 시가지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말 그대로 장엄한 풍경이다.


인스부르크 시내에서 노르드케테 정상까지 올라가는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비용을 다 합치면 4~50유로쯤 된다. 그런데 48시간 동안 인스부르크 시내의 모든 대중교통과 주요 관광지들을 이용할 수 있는 ‘인스부르크 카드’가 50유로다. 24시간용 카드는 더 싸다. 게다가 시내투어 버스까지 무료로 탈 수 있으니, 인스부르크 카드를 구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황금 지붕과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노르드케테가 인스부르크의 지붕이라면 인스부르크 시내의 랜드마크는 ‘황금 지붕(Goldenes dach)’이다. 황금으로 도금된 동판 2,738개를 기왓장처럼 이어서 만든 지붕이 있는 발코니다. 정말 황금빛으로 빛난다. 이 건물은 본래 티롤 지역을 통치하던 대공 프리드리히 5세가 1420년에 지은 건물인데, 1494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발코니를 만들고 황금 지붕을 씌웠다고 한다. 그는 이 발코니에 앉아 구시가지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와 축제를 구경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황제의 화려한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황금 지붕 근처에 있는 높은 첨탑이 있는 건물은 15세기에 지어진 옛 시청사인데, 높이 51미터인 첨탑은 전망대로 개방되어 있다. 나선형으로 된 148개의 계단을 따라 첨탑에 오르면 인스부르크 구시가지 전체를 파노라마처럼 조망할 수 있다. 황금 지붕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멀리 알프스의 연봉들이 그림처럼 둘러져 있다. 황금 지붕 건너편에 화려하게 장식돼 있는 건물은 ‘헬블링하우스(Helblinghaus)’인데, 지어진 지 460년 됐고 로코코양식이라고 한다.


                                                            (헬블링하우스)

황금 지붕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이 인스부르크의 중심 번화가인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Maria-Theresien-Strasse)’다. 18세기에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딴 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수백 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를 세습했던 합스부르크왕가의 상속자였고 당대의 막강한 권력자였기 때문에 ‘여제(女帝)’로 불린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니었고 황제는 그녀의 남편 프란츠 요제프였다. 그러나 사실상의 실권자는 마리아 테레지아였다고 한다. 그녀는 프로이센을 비롯한 주변 나라들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유럽 여러 나라들과의 혼맥(婚脈)을 통해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에 단두대에서 처형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녀의 열한 번째 딸이었다.


이 거리를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라고 부르는 것은 거리 곳곳에 그녀와 연관된 기념물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길 중간에 있는 ‘성 안나 기념탑(St. Anna’s Column)’은 1706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오스트리아가 바이에른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탑이다. 성 안나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둘째 딸이었는데 평생을 가톨릭 수녀로 살았다고 한다. 거리의 남쪽 끝에 있는 개선문(Triumphal arch)도 마리아 테레지아가 세웠다. 자신의 아들이자 훗날 오스트리아 황제가 된 레오폴드 2세와 스페인 공주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1756년에 지었는데, 결혼식 당일에 남편인 프란츠 황제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기구하게도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결혼식을 동시에 기리는 기념물이 돼버렸다고 한다.


                                                (스와로브스키 본사의 크리스탈월드)

스와로브스키 본사의 크리스털 월드

인스부르크 근교의 바텐스(Wattens)지역에 세계적인 크리스털 장신구 브랜드인 ‘스와로브스키(Swarovski)’의 본사가 있다. 1895년에 창업한 이래 125년 동안 5대를 이어오고 있는 기업이다. 창업자인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고급 보석이 아닌 수정을 세공해서 대중적인 장신구와 장식물들을 만들어냈다.


스와로브스키 본사에는 박물관인 ‘크리스털 월드’가 있는데, 인스부르크 시내에서 셔틀버스로 왕복할 수 있다. 일정이 넉넉하다면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크리스털 월드 입구의 대형 조형물은 티롤 출신의 예술가 앙드레 헬러의 작품 ‘자이언트’다. 거대한 얼굴 형상이 입을 벌린 채 물을 쏟아내고 있고 그 물이 연못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 설화에 등장하는 티롤의 수호신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전시장 내부에는 크리스털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세심하게 기획된 조명을 받아서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수시로 교체된다는데, 내가 갔을 때는 마침 한국인 작가의 작품도 있었다.






인스부르크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국제항공편이 많은 뮌헨이나 비엔나에서 육로로 갈 수도 있고 공항에서 바로 비행기를 환승해서 인스부르크 크라네비텐 공항까지 갈 수도 있다. 인스부르크가 오스트리아에 있는 도시지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보다는 독일 남부의 뮌헨이 훨씬 가깝다.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동부에 있고 인스부르크는 서쪽 끝에 있으니 비엔나에서 가려면 오스트리아 국토를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야 한다. 뮌헨에서는 유로시티(EC) 기차로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데 비엔나에서는 꼬박 네 시간이다. 유럽공동체 EU로 묶여 있는 나라들끼리는 어차피 국경의 개념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도 많이 비슷한 편이다. 그러니 인스부르크를 여행하는 중간 기착지로는 뮌헨이 낫다. 물론 일정이 넉넉하다면 비엔나-린츠-잘츠부르크-인스부르크 이런 식으로 오스트리아를 횡단하는 여정도 고려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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