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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⑥
박형진, 이현배(2021-07-09 10:06:23)

손내 선생님!


선생님에게 편지 빚을 한두 지고 있는데도 선생님의 편지를 거듭 받고 보니 미안한 마음보다도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하여 이번에는 오래 두지 않고 바로 뜯어서 보고 대신에 여러 묵새기며 읽었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이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재난 국가]라는 책은 저도 언젠가 어떤 일간지 토요판에 소개된 것을 듯합니다. 기회가 오면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저는, 이제는, 그런 학술적인 책보다는 시나 소설 따위에 얼른 손이 가고 종교철학, 그중에서도 불교 쪽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한편으로는 엉뚱하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천체우주에 관한 책이 재미있는데 세이건의 [코스모스] [당신과 지구와 우주],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따위를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학에 호기심이 생겨서 요즈음은 <조지 G 슈피로>라는 사람이 [수학의 사생활]이라는 번역서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저의 공부라는 것이 너무 얇아서 수학공식 하나를 모르는 주제인데 언감생심 수학책을 보겠습니까. 이렇게 그대로 수학이나 수학자들의 사변적인 이야기나마 읽을 뿐인데도 재미있더군요. 이제 거의 읽어가는데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정말 엉뚱하게도내가 말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먹혀들었나 있는 수학공식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공식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일단 그것은 상상에 맡기도록 하고, 번째는긴장을 풀어라입니다. 속에는 이와 같은 단어나 문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에 퍼뜩하니 떠오르는 느낌은 문장이다 싶었어요. 그리고 실제 이것을 쓰는 행위와 시에 적용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다른 모습들이 모여서 혼자 많이 좋아하고 있답니다.


농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엊그제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오륙십 평이나 될까요. 길게 두둑을 심었으니까요. 이걸 심는데 해보담 곱곱절 힘이 들고 비용이 났습니다. 왜냐면 작년과 작년에 맷돼지 때문에 고구마 농사를 망쳐서 고구마 종자를 남겨놓지 못한 까닭에 종자 순을 사는데 돈이 들었고요, (물론 옆에 사시는 형님 댁이나 다른 분들에게 얻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시기적으로 2대순 종자를 얻을 수밖에 없어서 때가 늦기 때문입니다) 맷돼지 방지용 가시 철망을 사는데 돈을 들였습니다. 고구마 밭에 쇠말뚝을 간격 맞춰 박고 가시 철망을 늘이면서 ! 도둑 때문에 밭에 철조망이라니. 모습도 생경하거니와 어이없는 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떡합니까? 누구 들으니 고구마 밭에는 전기목책기도 소용없고 오직 가시철망만이 상책이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것인데 겨울 아궁이에 피어오르는 고구마 익는 냄새를 생각하며 낯선 것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러나 철조망이 정말 효과 있는지는 두고 봐야겠어요. 늙고 맷돼지 놈들은 피하지방과 듬성마루털이 워낙 두껍고 단단해서 션찮은 총알은 맞아도 끄떡없다던데요. 피해를 막겠다 싶으면 3 전처럼 고구마 밑이 드는 여름 달은 옆에 원두막을 얽고 야간 보초를 밖에요.


농사란 것은 조금 하나 많이 하나 심고 가꾸는 것은 마찬가지라 팔지 않고 자기 먹을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는 쉬운 아닙니다. 비용이나 품삯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 농사라서 포기하라는 악마의 속사임을 많이도 받습니다. 그렇게 한번 꼬임에 빠져서 조금씩 조금씩 먹게 되면 필경은 땅을 놀리게 되고 농부는 여기저기 쉬운 날품팔이 일들을 찾게 됩니다. 어디가서 하루 이틀만 일을 해도 가마를 너끈히 있으니 여기 맛을 들이면 이제 농부는 품팔이 노동자가 되고 농업기반은 무너지지요. 이런 붕괴가 3년에 걸쳐 일어난다면 이것을 회복하는 데는 무려 곱절 년이 걸린답니다. 이런 것들을 뻔히 아는 사람으로서 자신과 농촌사회의 변화를 지켜본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저도 사실 제가 짓고 있는 땅의 분의 정도를 묵혀두고 있으니까요. 물론 위에서 말한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 힘이 들어서지요. 늙도 젊도 않은 나이지만 오랫동안 농사를 짓다 보니 뼈마디가 부실해져서 없군요.


농촌사회 붕괴의 축인 고령화라는 것이 몸에서도 이렇게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전 사회라면 대가족제도 아래 농부에서 농부로 아버지→아들로 농업이 대물림 되는 것일 텐데 현대 사회에서 농업 농촌의 붕괴는 가족의 해체로부터 진행됐던 국가 농업지배의 다른 면이라 있겠지요.


묵은 밭의 풀이 보기 싫어 오전에 예초기 작업을 하는데 까투리 마리가 바로 코앞에서 날아올라 깜짝 놀랐습니다. 자리를 보니 알이 11개나 있군요. 오늘 횡재했다 싶어 예초기를 벗어놓고 알을 양손에 나눠 들고 집으로 오는데 손에 어떤 느낌이 와서(그러니까 미약한 전류처럼 찌릿한 느낌 같은 ) 망설이다 도로 제자리에 주고 주변의 풀을 조금 남겨뒀습니다. 그길로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심으로 마루에 한동안 허리를 펴고 있다가 살금살금 그곳에 가보지 않았겠어요. 까투리 이놈이 은혜를 생각하는지 어쩌는지 바로 둥지 옆에서 정신 좋게 목욕을 하고 있어요. 저놈이 바로 조금 있다가 제가 콩이라도 심어놓을라치면 어느새 와서 살금살금 대가리는 파먹을 놈이지요. 고연놈-


요즈음 시인데 읽고 웃으소서


꾀꼬리 우는 철에


마음이랄 것도 없는 마음이지만

어디다 잠깐 잃어버렸다

그대로 사흘만 두면

풀밭이 되어버릴 같은 마늘밭을 매면서다

옆에 심은

고구마 밭을 보면서다

천지간의 수도 없는 하나를

모래알 세듯 세고 있다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서푼어치도 되지 않을 것들을 

사나흘씩 붙들고 있다는

붙들고 세고 붙들고 세다가는

스르륵 잠에 빠져

세는 것을 잃어버렸다


본시 나비였을까

풀을 매는 사람

가끔씩

생각이랄 것도 없는 생각을 

고구마 줄기처럼 늘여 가기도 하는 사람




2021.05.29

박형진드림







모항 박형진 시인께


목포에서 하룻밤. 

길을 나서려고 때는 난감했더랬습니다. 두통을 앓고 있었거든요. 여러 약속이 어그러질 듯하여 나서야만 했습니다. 마침 작업장 도로의 진출입 차선이 그어졌습니다. 그대로 숨통이 틔여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난파선출수 고려도기 몸흙(추정) 찾아 나서는 길이었기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세종실록에 근거하여 발행한 [호남의 자기소 도기소 나주목] 요긴하다 싶었는데 책을 찾았습니다. 대신 눈에 뿌리깊은나무사 발행 [한국의 발견/전라남도] 챙겼습니다.


두통이 있을 잠을 엄청 잤기에 총량의 법칙인 잠이 없어 간밤에 ,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흙을 찾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총론 봤습니다.  문화기사에서  생활문화’ ‘ 사람들의 한평생 어디서 들은 소리인 듯하여 저자를 찾아보니 한창기 선생님이었습니다. 필명 앵보로 글은 봤어도 본명으로 기사는 하나 정도 기억하기에 설마 했는데 단신의 이름을 걸고 글이었습니다. 거의 자전적인 내면의 소리로 읽혀 재밌게 보다가 (1983) 끝이 그대로 인생의 마무리(1997)였기에 전율과 함께 먹먹함에 눈물이 났습니다.


“~ 그가 비록 몸은 도시에 머물러 있으나 농부였던 선조들의 땀냄새와 고향 땅의 흙냄새를 평소에 얼마나 가슴 깊이 간직해 왔는지를 ~” 필자소개(5) 있었습니다. 


글의 끝에는 꽃상여 나가는 사진과 함께(103) “~ 그동안에 고향에 눌러앉은 이에게나 뒤늦게 고향을 찾는 이에게나 두루 통하는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는 것은 틀림없으니, 그것은 죽어서 비록 한지를 물들여 젓가락에 말아 곱디곱게 만든 꽃으로 꾸민 것이 아니더라도 꽃상여를 타고 삼시랑이 저를 점지한 마을, 또는 시집와서 사무침과 보람으로 뼘의 세상살이를 보낸 마을의 뒷산 흙에 꼭꼭 묻히는 것이다.”


수학책도 봤습니다. [미적분의 쓸모]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옹기가마 가까이 불무골이 있는데 불무골 초입에 산판이 있었습니다. 하여 조선소나무를 이삭줍기로 가져와 머리를 삼고 노간주나무를 자루로 해서 옹기몸흙을 치댈 꽂매와 뚝매를 만들었습니다. 꽂매는 내리 꽂아 () () 나게, 그러니까 더욱 차지게 하고 뚝매는 고작대미로 쌓을 요긴한 연장인데 머리가 탕건 모양이라 저희 점사람들이양반대가리라고 한답니다. 


일이 단내나는, 완력이 필요한 일이라 혼자소리로군인 아저씨가 딱인데~’하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가만 보니 옹기일을 해보겠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군인인지 물어보라고 했더니 진짜 군인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래 이게 뭔가 싶어 제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인이지만 이과 계열이라 하여 수학을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거였습니다. 그래 제가 그이에게 수학을 배우고, 품앗이로 옹기를 가르쳐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하기로 하여 [미적분의 쓸모] 예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예습이지 아무리 봐도 모르는 일이라 하나 마나 예습이지만 아무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수학 공부, 미적분 공부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랍니다.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지난 5 스승의 날에 3 담임선생님을 뵈면서 은근 A/S 요청하려다가 서울로 이사를 수도 있다 하시어 말을 꺼냈답니다. [미적분의 쓸모]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과거를 적분하면 현재가 보이고, 현재를 미분하면 미래가 보인다. 저는 옹기일로 단순하게, 그야말로 덧셈 뺄셈만으로 전통에 시간을 더하여 현대화하고, 현대에서 시간을 덜어서 전통화 해왔기에 미적분을 익힌다면 그야말로 오묘한 옹기를 제대로 있겠다 싶은 것입니다. 실은 수학 공부를 어이없어하는 아내에게 하는 말이고, 수학책이 그냥 좋습니다. 좋은가 생각해보면 글자가 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형이 아름답습니다. 


같은 식으로 제가 시를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글자가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인이신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목포에서 돌아오는데 선생님의 편지가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 06. 02

옹기장이 이현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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