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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타민족/한민족에게 닫혀/열려 있는 연민의 회로 | 모가디슈
김경태 영화평론가(2021-09-10 10:12:51)


타민족/한민족에게 닫혀/열려 있는 연민의 회로

김경태 영화평론가


1991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남한 대사한신성(김윤석)’ 북한 대사림용수(허준호)’ UN 가입 승인에 필요한 소말리아의 표를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남한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은 승리를 위해서 서로를 서슴없이 음해하며 으르렁댄다. 그러던 어느 , 부패한 정부를 지탄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봉기한다. 무장을 경찰과 군인들은 그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다. 마침내 반군이 도착하면서 내전이 벌어진다. 혼란의 틈을 타고서 무장한 반군들은 약탈을 일삼는다. 외국 대사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남한 대사관은 군인을 돈으로 매수해 경비를 세웠지만. 북한 대사관은 약탈과 협박을 당하면서 총성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오게 된다. 림용수는 참사관태준기(구교환)’ 반대를 무릅쓰고 남한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다. 한신성과 참사관강대진(조인성)’ 고민 끝에 그들을 대사관 안으로 들인다.


남한 대사관의 현지인 운전기사가 피를 흘린 대사관 앞에 쓰러진다. 놀랍게도 그는 반군인 것으로 드러난다. 평소에 그를 대사관 식구로서 돌봐왔던 직원들은 갈등에 빠진다. 다행히도(?) 그는 스스로 대사관을 빠져나가고 결국 그를 쫓던 군인에 의해 살해당한다. 카메라는 죽은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보여주지만, 그가 반군이 사연에 대해서는 들려주지 않는다. 한국의 대사관 직원들이 윤리적 고민을 던지며 소말리아인들의 삶에 개입할 있는 유일한 계기가 수도 있었을 인물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린다.



대사관 직원들은 타국의 분란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지의 무고한 시민들이 폭행을 당하며 죽어나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 뿐이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무사히 이곳을 함께 빠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소말리아의 내전 상황에 대한 정치적 각성에 이를 기회나 여력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화될 여지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타민족을 향한 정서적 공감이나 연민의 회로가 차단당할 , 저들은 무조건적인 폭력성과 잔혹성만 부각되면서 그저 한국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머나먼 이방인으로 남아 배경으로 물러날 뿐이다. 현지인들의 널브러진 시체들은 내전의 참상을 드러내며, 한국인들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시에 맞이하게 끔찍한 미래의 모습일 뿐이다.


외부인인 3국의 입장에서 봤을 , 정부군이나 반군이나 모두 자신들의 실리에 따라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집단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이상 특정한 정치적 신념에 따라 어느 쪽을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는 무의미하다. 나아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과 북한의 대사관 직원들이 소말리아를 빠져나가는데 있어 정부군과 반군은 모두가 위협적인 장해물이 된다는 측면에서 궁극적으로 같은 층위에 놓인다. 정부군은 그들을 반군으로 오해하고 총격을 가하고, 반군은 정부에 협조했던 외국인들에게 보복하거나 그들을 약탈하기 위해 총격을 가한다.


남한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이 이념을 넘어 생존을 위해 단결한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마도 이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서로와 협력을 하게 기저에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한민족이라는 민족주의, 그러니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보다 뿌리 깊은 이념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앞서 애써 타민족을 향해서는 아껴둔 연민의 감정은 영화의 결말부에서 서로를 향해 폭발한다. 탈출에 성공한 그들은 생사고락을 함께 했지만, 케냐 몸바사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양국의 요원들의 눈치를 보며 당당하게 작별인사조차할 없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만날 수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모가디슈의 참혹한 시체들이 눈에 밟히지만, 호형호제할 없는 지금 순간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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