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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 연재 [이휘현의 도스또예프스끼 읽기]
위대한 여정의 끝 -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휘현 PD(2021-12-09 13:34:08)



위대한 여정의

이휘현 KBS전주 PD



위대하다라는 말이 남용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위대한 용기, 위대한 도전, 위대한 사랑, 위대한 결실 등등. 심지어 위대한 실패라는 말까지.

그래서 위대하다는 말은 이상 위대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과장법의 극단적인 형태로 둔갑했을 .

이렇듯 위대함이 권위를 상실한 시대에, 나는 단어를 얹어 상투적인 표현을 하나 보태고자 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두고위대하다 말을 아끼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감히 이렇게 말을 꺼낸다.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것은, 위대한 문학이다!


악의 연대기

소설은 아버지와 명의 아들로 가계를 이룬 어느 러시아 가족 사이에서 전개된다. ‘까라마조프라는 성을 공유하는 명의 남자는 상당히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다. 

그들 사이의 공통분모는 핏줄로 읽힌()’이라는 관념이다. 안에는 인간이 가질 법한 수많은 감정들, 그중에서도 마음속 깊은 어둠의 존재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아버지와 명의 아들들이 맺는 각자의 관계 속에는 악이라는 연결고리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내면이 도드라진다. 그늘지고 음습한 마음속 풍경을 통해 우리는 정작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임에도 우리가 작품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는 하나의 살인이 벌어진다. 이야기는 주목할 만한 사건을 축으로 하여 전반부에는 강한 구심력이, 후반부에는 거대한 원심력이 작동한다. 구심력을 발생시키는 근원은 욕망과 이기심, 미움과 질투 그리고 분노다. 어두운 인간의 내면 풍경이 하나의 살인사건을 향해 수렴하는 것이다. 반면 살인사건 이후의 이야기는 고뇌와 참회, 용서와 구원의 훈풍을 타고 드넓게 펼쳐진다. 안에 심리 소설, 애정 소설, 법정 드라마, 환상 소설, 종교 소설, 철학 소설 등등으로서의 여러 면모가 뒤섞이며 도스또예프스끼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진경을 펼쳐내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남자 그리고 명의 아들

소설 속에서 살해당하는 사람은 아버지 표도르 까라마조프다. 그는 전형적인 악인이다. 

물욕과 정욕의 화신이자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자식도 내팽개칠 있는 악의 교과서 같은 존재다. 소위 도스또예프스끼에 의해 창조된관념으로서 자체인 것이다.

그런 그가 살해당한다. 앞부분에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며 등장한 그는, 이야기의 거대한 축인 하나의 살인사건에 의해 캐릭터가 소비되며 장렬히 사라지고 만다.

이후의 이야기는누가 그를 죽였는가?”라는 물음표를 통해 역동적인 서사를 토해낸다. 아들 드미뜨리, 이반, 알료샤의 복잡한 마음은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요동친다. 

첫째 아들 드미뜨리는 나쁜 남자 표도르 까라마조프가 살아생전 저질러 악행의 가장 피해자일 것이다. 청년 시절 무일푼의 표도르가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많은 아내에게 허락된 인생은 그리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적잖은 재산과 어린 자식을 지상의 유산으로 남겼다. 하지만 표도르가 선택한 것은 오로지 돈뿐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자란 드미뜨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형제 아버지를 가장 닮은 성인이 되어 있다. 그는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는 문제적 인간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소설 중간의 어느 극적인 지점에서 드미뜨리가 강하게 느끼는 자살 욕구는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혐오하는 아버지의 성정을 빼닮은 자신을 제거함으로써, 그는친부 살해라는 무서운 욕망을 실현하고자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반면 둘째 아들 이반은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 정신을 체득한 젊은 지식인이다. 철저하게 서구주의자이자 개인주의자인 그는 방울 흘리지 않을 같은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다. 하지만 또한 표도르 까라마조프로부터 피를 물려받은 남자다. 겉으론 냉정한 똑똑한 척하지만, 그의 심장은 아버지만큼이나 뜨겁게 욕망에 타오르고 있을 지도 모르는 ! 드미뜨리의 약혼녀 까쩨리나를 향한 연모의 감정만큼은 감추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막내 알료샤는 미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맑고 고귀한 존재다. 성직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그는 소위 나쁜 아버지와 미친놈 그리고 미운 작은 형으로 이뤄진 악의 연대기 속에서 멀찍이 이탈한 까라마조프 가의 변종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 알료샤 또한 이반처럼 불안에 시달린다. ‘까라마조프라는 나쁜 피가 자신에게도 섞여 있으니 언제 어디서든 마음속 악마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살인 사건

이야기의 초반부는 주로 셋째 아들 알료샤의 시선과 발걸음을 따라 진행된다. 그런데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진다. 아버지 표도르와 첫째 드미뜨리 사이에 고성과 주먹 다툼이 오간 것이다.

어머니가 물려준 유산을 가로챈 아버지 표도르와 오랜 시간 원수처럼 지내온 첫째 드미뜨리. 그와 아버지 사이에 여자가 끼어들어 오면서 사람의 관계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에 들어선 상태였다. 부자(父子) 마음을 동시에 빼앗은 여인 그루셴까는 긴장 관계를 적당히 즐기며 물질적 이득과 정신적 쾌락을 도모하는 일종의 악녀라고 있다.

여자를 사이에 두고 연적이 되어버린 아버지와 아들은 똑같은 욕망으로 충돌한다. 극단적 상황은 피를 부른다. 그렇게 아버지는 피를 흘린다. 이것은 패륜이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패륜의 현장은 아버지가 아들을 매몰차게 버린 시절부터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아들에게 두들겨 맞고 몸져눕게 아버지 표도르. 와중에도 그는 그루셴까를 쟁취하기 위해 골몰한다. 드미뜨리 또한 약혼녀 까쩨리나는 안중에도 없다. 온통 그루셴까, 그루셴까….

그리고 며칠 그루셴까의 애인이 갑작스레 등장한다. 아직 순수했던 시절의 그루셴까를 매몰차게 버림으로써 그녀로 하여금 사랑을 믿지 않는 악녀로 흑화시킨 장본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루셴까는 남자를 향한 복수심과 사이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해묵은 그리움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떠날까봐 노심초사하는 첫째 아들 드미뜨리는 약혼녀 까쩨리나에게 3 루블을 어서 빨리 탕감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 그루셴까에게 달려가고자 한다. 하지만 드미뜨리의 수중에는 돈이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어머니가 죽었을 물려주었지만 아버지 표도르가 가로챈 유산이 3 루블 아닌가. 드미뜨리는 돈을 되찾기 위해 깊은 아버지의 집을 찾아간다. 드미뜨리의 이러한 발걸음은 독자들의 마음을 불안감으로 옥죈다. 설마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기야 하겠어?

얼마 그루셴까와 그녀의 일행들 앞에 돌연 등장한 드미뜨리. 그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어디서 생겼는지 짐작할 없는 돈다발을 들고 술과 음식으로 하룻밤을 흥청댄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아버지 표도르 까라마조프의 살해 소식!

모든 사람들이 첫째 아들 드미뜨리를 살인자로 지목한다. 정황 증거는 넘쳐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매우 나빴고, 사건이 벌어지기 얼마 전에는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있었다. 아버지 표도르가 평상시에 베개 밑에 3 루블의 현금을 숨겨놓고 있다는 소문이 몇몇 사이에 떠돌고 있었고, 우연하게도 무일푼의 드미뜨리는 아버지 표도르가 살해당한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돈을 흥청망청 써대고 있었다.

아버지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게 드미뜨리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셋째 알료샤는 형의 주장을 믿는다. 반면 둘째 이반은 형의 살인을 합리적으로 의심한다. 하나의 살인을 둘러싼 아들의 복잡한 심리전이 이렇듯 소설 중후반부에 강력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명의 아들, 진짜 살인자

이쯤에서 독자들은 명의 인물에게 눈길을 주어야 것이다. 까라마조프 가의 젊은 요리사 스메르쟈꼬프가 바로 그다. 태어나서부터 아비 없는 자식으로 자란 그의 친부는 표도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그는 까라마조프 가의 다른 아들일지도 모른다. 아버지 표도르와 첫째 드미뜨리 사이에서 이중 첩자 노릇을 하던 스메르쟈꼬프는, 살인사건이 벌어지던 심한 간질 발작으로 몸져누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애초에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구속된 드미뜨리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진범은 스메르쟈꼬프!”라고 소리 높이 외친다. 말에 기울이는 사람은 막내 알료샤, 그리고 드미뜨리의 진실한 사랑에 비로소 눈뜨게 그루셴까 뿐이다.

하지만 정작 미궁에 빠진 진실과 맞닥뜨리는 사람은 드미뜨리도 알료샤도 그루셴까도 아니다. 자신의 형을 의심하던 둘째 이반이다. 그는 스메르쟈꼬프와의 번에 걸친 만남을 통해 무서운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진범은 스메르쟈꼬프다. 하지만 그의 악행을 부추긴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 이반이다! 드미뜨리처럼 대놓고 대들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그렇지 않은 하면서 그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 이반의 그러한 마음속 악마가 스메르쟈꼬프의 시선에 포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까라마조프 가의 다른 아들은친부 살해라는 까라마조프적 운명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니까 이반은아버지를 죽이도록 사주한간접적인 살인자가 셈이다. 스메르쟈꼬프는 이반에게 무서운 진실을 폭로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한다. 

각자의 사연과 이유로 죄인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과연 구원받을 있을 것인가.

친부 살해 혐의를 벗지 못한 드미뜨리는 유죄 판정을 받아 20 이상 시베리아 감옥에 갇힐 운명에 처하고, 마음속 악마의 존재에 압도당한 이반은 광인이 되어 서서히 죽어간다. 서자이자 진범인 스메르쟈꼬프는 이미 스스로를 단죄했다. 모두가 죽이고 싶었던 남자 표도르는 어쩌면 명의 아들 모두에게서 살해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도스또예프스끼는 소설 후반부에 까라마조프 가의 남자들을 속죄의 길로 이끈다. 구원은 결국 이러한 속죄의 과정을 통해 길을 터주기 때문이다. 

한편 막내 알료샤는 이제 교회라는 신성한 공간으로 되돌아갈 없다. 어쩌면 애초에 그런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속세에 내던져진 알료샤. 그는 과연 까라마조프 집안의 깊은악의 연대기 끊어낼 있을까. 알료샤 앞에 펼쳐진 날들이 유독 스산하고 고독하게 느껴진다.



위대한 여정의

1821년생인 도스또예프스끼는 1881년에 생을 마감했다. 우리 나이로 환갑의 나이에 세상을 그는, 죽기 15 동안 동서고금 세계문학사에 남을 걸출한 대작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죄와 >, <백치>, <악령>, <미성년>으로 그렇게 걸작의 향연이 이어졌다.

젊은 시절 작가로서의 경력에 부침이 심했던 그의 문학은, 걸작들을 통해 재론의 여지가 없는 세계적 대문호의 작품 세계로 편입될 있었다. 마지막 화룡점정이 바로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시간 선보인 인간과 세계를 향한 천재적 통찰력은 그의 마지막 작품에 와서 가장 화려하게 피어났다고 보면 된다.

이른 나이에 맞닥뜨린 부모의 죽음, 사형수로서의 절체절명의 위기, 옴스끄 감옥에서의 비참한 , 시베리아 유형지에서의 고독, 그리고 사랑과 절망, 도박과 외도, 간질병 등으로 점철된 도스또예프스끼의 굴곡진 60 인생은, 문학이라는 망명처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거대한 벽화로 완성될 있었던 아닐까. 

신산스러웠던 삶과 문학의 궤적을 꼼꼼히 따라 읽는다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정의 끝자락에는 강렬한 희열이 자리하고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그리하여 그렇게, 14개월 도스또예프스끼 완전정복의 출발선에 섰던 나라는 사람과 어느새 결승선에 들어서버린 내가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지금 순간, 나는, 또렷하게 느낀다. 그것은 누구나 번쯤은 경험해봄 직한 짜릿한 인생의 한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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