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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3 | 연재 [문화저널]
<독자투고>문화운동의 건강성을 위해
최만호(2003-12-18 11:32:06)


 한 시대의 문화는 그 시대 삶의 총화이다. 역사의 한 과정 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일수록 그 삶의 문화는 보다 다채롭고 풍부하게 생산되고 축적 되어진다. 문화의 힘. 그 역동성은 한 시대의 삶의 무게에서 규정되고 또한 그 삶의 현재적 내용을 지지(支持)한다.


 오늘날 동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복잡하고 다양함 속에서의 문화 운동이란 우리 시대 우리 삶의 현장에서의 중핵으로 가능하는 경우에 그 진정한 힘을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한 시대의 삶이 그 역사적 사회적 여건에 일정하게 영향받는 것이라면, 그러한 여건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체계화라는 일은 일상적 삶의 지평을 보다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지혜를 준다는 점만으로도 절대 적으로 필요한 일이 된다.


 특히 그러한 인식에서의 삶의 구조적 모순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누적되어 온 이 지역의 복잡한 사정을 감안할 때에는 나라 전체와 연계되는 지역으로서의 모순을 새로이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전체적 통일적 전망을 제시하는 능력은 더욱 소중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시대의 상황과 역사적 실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이론화하는 일은 비교적 용이하게 이루어질지 몰라도 그를 관념적 이론이 아닌 실체로서 구체화하여 자기 시대와 역사의 주체자로서 능동적으로 나서는 일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요약하여 '이론과 실천'이라는 이러한 피리의 깨달음은 문화운동의 선도자를 자임하는 창조적 예술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실제적인 고민으로 되면서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실천적 자각과 더불어 오늘의 문화운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여야 할 방향은 어떤 것인가? 인간다운 삶의 회복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유지와 그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조건의 확보라고 할 때 이는 당연히 삶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내적·외적 모순의 해결과 함께, 그 삶의 질에 있어서의 조화로운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기 마련이다.


 지난 최근의 상황에서 처절한 고통을 치루면서 얻어 낸 깨우침이 우리 시대의 현실적 과제가 민족의 통일이요 '삶의 민주화'이며 그의 추진력을 삶의 삶다워지려는 요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시대의 문화운동의 보편적인 정신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 서야 하리라고 믿어진다. 또한 그러한 문화운동이 담아야할 현실 과제로서, 자주 지적되는 대로 오늘의 시대가 표현하고자 하는 민중적 예술정신을 토양으로 자신의 삶이 놓여져 있는 현장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 가야 할 일이다. 덧붙여서, 우리 시대 우리 삶의 발현으로서의 문화운동이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논리에 질식하거나 공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건강성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칫 간과해버리기 쉬운 문화운동의 담당자로서의 각개인의 의식의 자생력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된다. 지방에 있어서의 중앙과의 의식편차, 곧 중앙지향성의 의식을 극복하고, 문화예술인이라는 자존심이 지나쳐 끼리끼리 모이는 '둥지의식'의 타파와 함께 수평적 인간관계의 확산을 통하여 뜬 눈으로 고통의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견고한 몫으로 주어진 문화운동의 주체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전주시 경원동 3가 64-2 확고한 지향성과 다양함으로 이재규 자주 들르는 서점에서 우연한 기회에 문화저널을 읽게 되었다. 매월 정기적으로 발행되면서 다른 출판매체에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지역문화계의 여러 작업을 꼼꼼하게 안내함으로써 지역대중과 문화행위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매개한다는 일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영역들이 소개되고 있고 지역출신인사를 포함하여 많은 문화활동가들이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인식과 사랑'을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허전함을 금할 수 없다. 문제는 단지 「문화저널」에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를 둘러싼 암울한 문화적 상황(사회의 총체적 상황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문화적 상황은 결코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서 이 말을 쓴다면)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것을 주체적으로 타개하지 못하고 있는 올바른 문화운동 역량이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매일 어느 곳에선가 전시회가 열리고 노래가 불려지며 무대의 막이 오르고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살아가는 일상과는 너무 생경한 곳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 도대체 '문화예술'이라고 하면 왠지 고생하고 폼잡는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의 소외현상이야말로 '허전함'의 근본 원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저널」은 이땅을 둘러싼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건강한 '힘'들이 우리 지역내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또 어떠한 수준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측정기의 역할을 해나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한다. 특집좌담을 통하여 보여진 지역문화 운동주체(물론 좌담에 참석하진 분들이나 문화저널 관계자들이 지역문화의 여러 흐름을 전부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들의 인식과 실천에서도 이러한 기대는 발견된다. 그러나 대개의 참석자들이 문화와 삶의 관계를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철저하지 못하거나 문화 운동이 전체사회 운동과의 관계에서 갖는 위치를 올바르게 설정한 가운데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기 보다 다분히 '문화적으로' 생각하는 견해가 지배적 이었던 것도 떨쳐버릴 수 없다. 지역문화의 침체를 극복하는 것이(그렇다고 해서 서울을 비롯해서 다른 지역이 유달리 '침체'를 극복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극장이 붐비고 사람들이 음악회장에 밀리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역문화의 활성화는 우리 사회에서 주어지고 있는 일정한 규범적 틀에 우리 지역 문화가 얼마나 가까이 접근하고 있느냐 하는 '주변부'적 발상에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안고있는 총체적 질곡을 깨뜨리려는 근본적 움직임 가운데에서 우리 지역에서의 문화적 응전력이 얼마나 성숙되어 있느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의 충실성 여부가 앞으로 문화저널이 지역문화 운동에서 수행 할 수 있는 역할의 크기를 결정지으리라고 보며 앞으로 문화적 상황은 이러한 방햐응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문화저널의 한 독자로서, 지역문화를 포함하여 우리 지역의 전반적인 삶의 양식이 크게 혁신되어야 한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지역내에 존재하는 여러 문화영역들간의 만남의 작은 장이 되고 있는 문화저너르이 그 동안의 성과가 확고한 지향을 견지하는 가운데에서의 다양함으로 이어 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전주시 서노송동 6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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