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88.5 | 연재 [문화저널]
<독자투고> 자라는 나무가 되길
이영종(2003-12-18 12:09:23)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는 새재 있는 문경이나 진달래꽃 고운 정주 곽산 지나 압록강 근처의 의주, 참으로 가보고 싶은 땅이다. 우리가 역시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산다면 저 갑오년의〈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의 정읍 건너 부안이나, 판소리 태깔나는 춘향이 살았다는 남원골이 어찌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랴. 누구 듣기 좋으라고 하는지 몰라도 서해안 시대니 어쩌니 하는데 이 곳은 노사 분규 할 공장도 없고 그 흔한「귀국」 연주회 잘도 하는 세종문화회관도 그 별관도 없다.


 그래도 연극공연, 그림전, 음악회, 출판기념회는 꾸준히 열리고 젊은 사람들은 꼴(이첸 온고을이 된 녹두골)에서 또 길바닥에서 알음알음으로 판 [文化]을 빌려왔고 키워왔다. 그리고 예향이란 소리를 듣기도 한다. 내가 선 땅이 지구의 중심이라며 지역문화의 당위성이 주창되는 이때, 다섯 달 전부터 〈문화에 대한 따뜻한 인식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저널이 비상업지로 생겨나와 우리가사는 물에 대한 물빛깔의 농도를 보여주고 었다. 민주투사님들의 팜플렛은 공으로 주고 재(財)테크 어쩌고 하는 중권시황 유인물은 없어서 못보는 판인데, 내 고장의 행사와 예술가를 소개하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기특하며 고마운 일이다. 이뻐서 내친김에 한 마디 거들고자 한다. 저널을 우리 먹는 것에 비유하면 쌀밥에 셀러드라고나 할까.~ 오래도록 몰리지 않는 음식이 역시 쌀밥에 된장 풀어지는 국이라면 저널의 편집 또한 당연히 이 곳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쫓는 기획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두승산 아래의 황토현을 지날 때, 갑오년의 오월 싸움을 모르면 차비가 아깝고, 반야봉 너머 세석평전의 핏자욱을 모른다면 그 땀이 헛것이리라. 물론 누가 황토현을 또 피아골을 모르리오만 홍명회가 임꺽정을 썼다는 사실만 아는 것하고 그의 소설에 삼십만 단어 가까운 맛깔스러운 한국어가 들어 있다는 뻐근함을 그 속에 깊이 빠져들지 않고 서야 어찌 알겠는가. 구체성에 몰입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문화를 소개하는 활자매체의 역할은 우리사는 터전에 대한 사회화의 일환이다. 그리고 사회화라는 것이 그 문화형을 학습시키는 것이라면 문화저널이 해야 할 일도 자명해 지리라 믿는다. 이런 점에서 권두칼럼의 전주땅에 대한 이야기는 개발지상주의의 헛점을 지적하 여 인간을 위한 문명이 무엇인가 하는 귀한「한식정식」이었다. 물론 필자의 탁월한 능력도 귀중하지만 각 지역의 삶의 궤적에 관심이 많은 필진을 위촉하고 발굴하여 우리 지방 곳곳에 대한 고찰을 시리즈로 다루어 주었으면 한다.


 이왕 내친김에 얼마전 정읍의 소위 문화행사였던 재벌그룹합창단의 연주회에 대하여 한 마디 할까 한다. 고마운 일이다. 무슨 상을 타고 세계적이라는 합창단이 어린 학생들을 체육관에 몰아넣고, 떠들려면 나가라고 겁줘놓고 생판 알지도 못 할 곡을 웅얼거려야 쓰겠는가. 자기네 초연정기발표회도 좋지만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면 어디가 덧 나는가. 연일 황사현상으로 지는 해가 온 은빛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 누런 먼지가 수만년동안 날아와 쌓인 것이 우리네 땅의 황토가 되었다 한다. 여기에 노령의 양지녘 어디에도 진달래가 곱다. 자라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우리 땅의 황토와 진달래를 이야기하는 문화저널의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고자 한다. 정주시 시기2동 194-3 삶의 현실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붓 서재붕 아이들은 학교라는 건물을 들어서면서부터 선생님은 신격화되고, 모든 행동은 일률적이어야 하며 우리는 잘사는 국민임이 강조된다. 못살고 말 안 듣는 것은 부모님들의 못난 탓으로 돌려진다.


 이렇듯 일사불란하고 획일화된 관념은 강자앞에서는 휘어지기전에 부러지고 약자앞에서는 이 세상에 가장 힘센자로 군림한다.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구나 쉽게 이야기 한다. 이 심오한 예술은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삶과 현실을 외면하고, 그저 아름답게 하는 변명으로, 발가벗겨진 여체나 한 송이의 꽃만을 화폭에 채우기 바빴으며, 4. 19나 5. 16의 격동속에서도 어두컴컴한 밀실 한 귀퉁이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을 그리고 있었다. 인간이 빵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듯이 예술 역시 아름다움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지금의 우리 현실은 예술만을 찾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형편이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수법으로 옭아매는, 독재의 억압과 인권유린, 살상…… 애국이라는 미명아래 애국자임을 자처하면서, 범죄 자체가 정당화 되어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또한, 잘사는 놈은 더욱 잘살게 되고, 못사는 놈은 더 더욱 못살게 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경제구조 자체가 일하는 자의 한가닥 희망마저 무지스럽게 짓밟아 버리고, 밤낮으로 떠들어 대는 대중매체기능은 철저하게 신식민문화를 요구하며 서로 아귀다툼에 여념이 없다. 민족의 자존이 위태로운 상황하에서 예술만을 부르짖는다면 그 정신은 높이 사 줄만 하나 가엾기 짝이없는 노릇이다.


 예술은 그 시대의 산물이며 그 사회 속에서는 하나의 검증수단일 뿐이다. 예술은 이미 결정 지워진 창조물로서의 낭만적 ·신비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 ·역사적 요인들의 복합물로서의 결정체이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그 동안 갈고 닦은 붓을 들고 그 사회속에서 삶의 본질문제를 끄집어 내야 한다. 그리이스 신화속의 프로크리토스라는 노상강도 이야기처럼, 지나가는 여행자를 잡아서 길이가 맞지않는 침대에 눕히고 너무 크면 자르고 너무 작으면 잡아늘리는 식의 사회가 아닌, 수백 수 천년 동안 길들여져 왔던 예속된 주권이 아닌, 일하는 자는 노동한 만큼의 댓가를 받고, 어디에서든 툴린것은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이다. 전주시 고사동 1가 23-1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