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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7 | 연재 [문화저널]
<저널이 본다>지역문화 운동의 의의
문화저널(2003-12-18 14:59:51)


 80년 백두의 쓰라린 경험은 운동론에 관한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게 된다.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결여와 운동주체의 역량에 대한 실천적 점검의 부족은 그 방만한 조직과 소박한 전술 전략으로 돌이킬 수 없는 패배와 희생을 초래하였는데, 이러한 시행착오가 바로 한국사회의 근본적 구조에 대한 논의, 즉 소위 사회구성체 혹은 사회 성격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대중성 확보라는 문제가 전술 전략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행착오는 이런 잘못을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강박관념으로 이끌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관한 논의에 있어 좁혀질 수 없는 의견의 차이를 결과하였고 이로 인한 정세분석 및 전략 전술상의 차이는 운동권 내부의 극심한 갈등과 반목을 초래 또 한번의 패배를 맛보게 하였다.

 

 외세에 의존한 군사정권의 권위적 지배체제에 염증을 느낀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6월 항쟁과 대기업 중심의 파행적 경제운용의 실질적 피해당사자인 노동자들의 7.8월 투쟁을 조직적으로 이끌어 궁극적인 승리를 얻어낼 준비가 내부적으로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패배의 일차적 원인이 자기들 기득권 상실을 염려한 지배정권의 부정조작에 있다거나 민주화의 기수로 자처하던 야당의 두 지도자가 정권욕에 사로잡혀 단일화를 성취하지 못한 것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막판에 몰린 세력들이 최후의 수단까지도 불사할 것이라는 그들 본연의 속성과 또 그렇게 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또한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헌신한 정치인이 자신의 목적달성이 코앞에 와있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야심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아니면 못할 것이라는 평범한 상식을 도외시한 채, 일반 대붕의 여론을 무시한 이들의 정국운용에 피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대중의 확보하지 못한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80년 광주항쟁에서 제기되고 또 지난해 6.29선언을 얻어낼 수 있었던 6월 시위 및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의 패배를 통하여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운동에 있어서의 대중성 확보 및 그 지속성의 문제이다. 그 이론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정연해도 다수대중의 동의를 확보하지 못하면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또 그 투쟁이 아무리 치열한 것이라 할지라도 지속적인 것이 되지 못하면 소기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화는 결코 한 판 승부가 아니며 또 한때의 뜨거운 마음이나 한차례 선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중성이나 지속성이 정연한 논리에 의하여 보장되기보다는 다분히 정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논리에 근거하지 못한 정서는 공허한 감상에 지나지 않겠지만, 대중의 정서적 공감을 확보하지 못하는 논리도, 실천의 측면에서 볼 때 추상적 관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여기에 문화운동이 중요시되는 일차적 근거가 있다. 즉 문화운동은 검증된 이론에 근거하여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문화매체를 매개로 정서적 공감대를 확인 확산시키기 위한 집단적이고 지속적이며 계획적인 움직임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운동이 갖는 선전선동성은 5월 광주항쟁에서 "등불야학" 문학패들의 활동이나 최근 시위에 자주 등장한 바있는 이 재주교수의 춤판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운동의 의의가 대중의 정서적 공감대 확보를 위한 선전선동의 기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의미는 아무런 검증없이 밀려들어오는 외래문화로 인한 문화의 무정부상태, 또 엄청난 양의 대중매체를 통하여 파급되는 퇴폐적인 향락적인 대중문화에 의한 건전한 의식의 마비 및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관이 주도하여 행하는 사이비 고급문화행사로 인한 일반대중의 문화적 소외감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제시하며, 이러한 것이 결코 개인적 차원에서나 일회적 구호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공동의 인식을 기반으로 집단적, 계획적,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데서 찾아야 한다.

 참된 민주화를 위해서는 이를 방해하는 제도적 장치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삶의 터전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민주화를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이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문화 운동은 전체 운동에 있어 대중의 정서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의 의미도 지니지만 위로부터의 민주화가 갖는 한계를 직시하고 아래로부터,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부터 민주화를 다져나가기 휘한 실질적 방안으로서의 의미도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화운동의 현장성, 지역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문화매체에 감응하는 우리의 정서는 한민족으로서의 보편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각 지역마다의 구체적인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의하여 특수하게 규정되기도 한다. 운동의 궁긍적인 목적이 소수 전위부대의 치열한 의식이나 활동에 의하여 완수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부합하는 문화운동을 통하여 지역주민들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운동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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