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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4 | 연재 [시]
금산사의 밤하늘
우 미 자(2004-01-27 10:42:38)

금산사의 밤하늘
우 미 자
사과탄 연기가 흐르는
도심에서 목욕을 하고
불현듯 겨울밤의 산사를 찾았다.
산문은 빗장처럼 잠기어 있고
주승마저 깊은 화엄경
뒤안의 숲길로 접어들었다.
금산사의 밤공기를 외투 깃에 껴안으며
찬 하늘을 보았다.
높게 솟은 늙은 단풍나무 가지 사이로
잔별들이 성탄절의 깜박이불처럼 열려있고
은하는 길게 북녘으로 뻗쳐있다.
모악산 산줄기를 땀 흘려 타고 내려온
시냇물 소리가 잔조롭게
우리들 혼을 하나씩 빼어 내가고
수상한 다람쥐 한 마리 재빠르게 숲에 든다.
살아있음이여
정적의 파문이여
우리들 가슴 속의 응어리
한뭉치씩 뽑아내줄
음산사의 내일 새벽 죄북소리여.
친구의 담배 연기 한모금 속에
적막한 혼령들의 생애가 피어나서
귀웅전 뜨락에 우글대다가
무리들 혼령과 짝짝이 만나서
저 시냇물 속에 흐르는구나
흘러도 눈 부릅떠 흐르는구나.

도심의 매운 연기 속을 걷다가 고즈넉한 밤의 산사 속으로 빠져나온 날의 우울함. 차라리 비통한 눈물을 닦아주는 한 장 손수건이라도 된다면, 살아있음은 이렇게 늘 매운 연기 속같은 나날을 쩔룩거리며 걸어가는 것인가. 끝끝내 살아서 보고 싶구나. 처절하게 아름다운, 맑은 날들을 . 그런 날이 올 것을, 와야 함을 지문이 닳아지도록 기도하면서 혼신으로 일어서면.

약력
51년 전주 출생
원광대 국문학과 동대학원 졸업
83년 시문학 추천으로 등단
현재 부안여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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