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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9 | 연재 [세대횡단 문화읽기]
판소리란 무엇인가
최동현(2004-01-27 12:18:53)


 판소리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 가치가 재발견되고, 재인식되어 이제는 우리 민족예술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타가 공인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점차 외국에까지 그 가치가 알려지게 되어 이제는 외국의 학자나 예술가들 중에서도 우리의 판소리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에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판소리가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명창들의, 때로는 목숨까지 내건 피나는 노력과, 판소리를 아끼고 사랑한 풀뿌리 민중들의, 그리고 판소리를 훌륭한 예술로 키워낼 수 있는 근본 토양이 되었던 우리 겨레의 끈질긴 삶이 그 밑바탕에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이 글은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현재의 판소리라는 훌륭한 예술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애환이 있는‘가에 바쳐진 것이다. 앞으로 이 글은 판소리의 역사 속에서 판소리의 발전과 변모에 관계했던 광대(소리꾼과 고수)와 청중의 역할, 그리고 이력에 관해서 다루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소리(音)를 매재(媒材)로 해서 1회적으로만 현존하는 음악예술이라는 판소리의 특성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고 있다. 당대에 실제로 있었던 소리의 실체는 찾아 볼 수가 없으며, 口傳이나 기록에 의한 간접적인 자료마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이다. 상태가 좋지 않지만 녹음자료에 접할 수 있는 것은 1920년대 후반 이후부터일 뿐이며, 당대에 관한 기록은 몇몇 지극히 단편적인 것을 제외하면, 비록 구전되던 것을 기록한 것이나마 1940년에 출판된 『朝蘇唱劇史」의 정도가 고작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논의는 많은 부분이 추정으로 메꾸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도 아울러 밝혀 두고자 한다. 판소리가 관련된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판소리란 무엇인가부터 논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정하지 않고서는, 곧 논의의 대상 그 자체에 관해 규정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얘기도 허공에서 맴돌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제한된 자료나마 면밀히 검토해 보면, 판소리에 관한 생각도 역사적으로 상당한 변모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변화는 물론 판소리 자체의 변화(예컨대 연행의 형태라든가 음 그 자체)에서도 지인하는 바가 많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판소리에 대한 생각의 변화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판소리에 대한 생각(개념)이 변하지 않고는 판소리 자체의 변화도 생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우선 현재 시점에서의 판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확인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여기서 확인된 개념은 앞으로 이 논의를 계속하는 과정속에서 일관되게 유지될 것이다. 본래 판소리는 처음부터 〈판소리〉라고 불리워지지는 않았다. 기록을 통해서 보면 이전에는 〈소리〉 ·〈창〉 ·〈극가〉 ·〈가곡〉 ·〈창극〉 ·〈창극조〉 ·〈~歌〉 ·〈~打令〉 둥으로 불리어졌으며, 〈판소리〉 라는 명칭은 최근에 와서야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존하는 판소리 애호가들의 말에 따르면, 〈판소리〉라는 명칭은 8 ·15 해방을 전후해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이렇게 최근에 와서야 쓰이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칭으로서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제치고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까닭은 그 용어 자체에 판소리에 대한 일반인의 견해를 잘 나타내주는 측면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단시일 내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원적으로보면 〈판소리〉는 〈판〉과〈소리〉의 복합어이다. 〈판〉에 대해서는 세 가지의 견해가 있다. 첫째, 〈판〉은 〈시릅판〉 ·〈노름판〉 ·〈놀이판〉 동에서의 〈판〉과 같이〈많은 사랍들이 모인 곳〉이라는 뜻과 함께 〈씨릅 ·노릅 ·놀이〉와 같은 〈특수한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특수한 행위가 벌어지는 현장〉을 가리킨다는 말이다. 둘째, 〈노름 한 판〉 ·〈씨릅 투 판〉이라고 했을 때의 〈판〉과 같이 〈어떤행 위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완전한 과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 판의 바둑이 끝나려면 승부가 결정이 나야 한다. 승부가 결정되지 않고 끝나면 그것은 중단이지 〈판〉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판소리〉의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줄거리를 갖춘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의 견해는 〈판소리〉의 〈판〉을 〈판놀음〉과 관련해서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 민중이 즐겨왔던 놀이에는 줄다리기나 강강수월래 둥과 같이 민중 스스로가 연출하며 즐기던 것과, 민중을 관중으로 하며 놀이를 벌이고 돈을 걷어 생계를 잇던 전문적인 놀이패들의 놀이가 있었는데, 이와 같은 전문적인 놀이패들이 벌인 놀이가 〈판놀음〉이고-판소리는〈편놀음〉에서 벌이던 레퍼터리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판소리는 아마츄어의 소리가 아니라, 직업적이고 전문적인 소리꾼의 소라인 생이다.〈소리〉에 대해서는 노래(〈놀다〉의〈놀〉과 명사화 접미사 〈애〉의 합성어)가 서정적이고 짧은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서, 〈소리)는 서사적인, 즉 이야기를 지닌 긴 노래를 가리킨다고 하고 견해가 있으나 이는 별로 타당성이 없는 듯하다. 그보다는 소리와 노래의 차이는 동일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리〉는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측면, 즉 대상의 질료에 관한 명칭이고, 〈노래〉는 그것이 어디에 쓰이느냐 하는 측면, 곧 용도의 측면에서의 명칭이라는 것이다.〈소리〉라 하면 인간과 자연의 모든 소리를 다 포함하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 어떤 이는 특히 〈소리〉라 한 것을 판소리가 온갖 자연의 소리를 다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도 또한 판소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 차라리 이는 〈목소리〉의 준말로 보는 것이 좋다. 〈목소리〉는 인간의 육체의 일부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이다. 곧 인간적인〈소리〉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큼 인간적인 표현에 뛰어나다. 음악에서 특히 성악을 제일로 치는 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다른 악기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보다 아름답다거나, 정확하다거나 해서가 아니고,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인간의 활동의 일부이고, 그것이 인간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인간적인 가치에 의해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이상의 가치는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에 판소리가 인간의 목소리로‘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명칭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 이상과 같은 견해를 판소리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모두 일면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의 어느 하나만을 취태할 경우, 그것은 판소리의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여, 결국은 판소리 자체를 크게 왜곡시키는 결과에 이르고 말 것이다. 따라서 앞에서 든 여러 가지의 견해를 종합해서 판소리를 규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된다. 판소리는 어느 한 측면만을 지닌 평면체가 아니라, 다양한 측면을 지닌 다면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특히 판소리가 〈판을 이루는 예술〉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판소리는 판을 통해서 참 모습을 드러내는 연행예술(performing art)인데도, 그 동안 판소리 연구가들이나, 일반인들 모두 사설이 판소리인 양 생각하고, 사설을 대상으로 삼아서 대부분의 논의를 진행시켜 온 잘못을 이제는 시정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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