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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1 | 연재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돋보인 형식미, 갇힌 작가의식
최만호(2004-01-27 14:10:34)


1989년 한국영화 최대의 화제작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다.
지난 5월 깐느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영화’로 선정되면서 언론매체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배용균 감독은 8월 중순 제42회 로카르노영화제(스위스)에서 〈달마가------〉가 대상과 함께 4개 부문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그 열기는 정부로부터 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임권택 감독 ·배우 강수연씨와 함께 받음) 문화훈장을 받으면서 절정에 달했다. 해외영화제 수상작은 흥행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공식대로 〈달마가------〉는 서울 개봉극장에서 13만4천 여명의 관객을 동원, 이름 값을 해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배용균 감독, 1951년 대구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프랑스 파리 제7대학 조형예술학박사 대구 효성여대 서양화과 교수. 그는 자신의 독립프러덕션 〈배용균 프러덕션〉을 차리고 〈달마가------〉를 완성하기 위해 8년 동안 정열을 쏟아 부었고, ‘카메라의 눈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자세로’ 완벽한 영상을 잡아내기 위해 6살 꼬마를 물 속에 처넣고 격류 속에서 촬영을 강행하는 비정한 연출-작품에 관한 한 마다하지 않았고, 때묻지 않은 신선한 연기자를 내세우기 위해 몇달을 매달려 설득하기도 했으며 기획 ·각본 ·촬영 ·미술 ·편집에 이르는 대부분의 제작과정을 거의 개인의 힘으로 해냈다. 그 이유는 ‘영화의 일반적인 관습과 타성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찾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마가------〉가 국내에서 상영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해외영화제를 먼저 찾은 이유도 ‘철저한 개인적 작업으로 상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술성을 높이사는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수준을 확인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배감독 자신은 〈달마가------〉의 주제를 ‘정화와 초월의 명상에 담긴 삶과 죽음의 형이상학’이라고 밝히고 ‘흔들리는 잎새가 아니라 잎새를 흔들리게 하는 바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실존하는 리얼리티를 나타내려 했다’고 설명한다.〈달마가------〉는 극적 구성에 있어 이원론적 대비를 보인다. 살리려 한 산새 한 마리를 죽이게 된 동송 해진이 부닥친 삶과 죽음의 문제, 속세의 고뇌를 이기지 못해 출가한 기봉스님의 세간의 번뇌와 성불 수행의 번민, 열반을 앞둔 혜곡스님의 생사초극의 위기 등 영화의 기등을 이루는 연결고리는 세 주인공의 갈등이다. 이 갈등의 상징은 동송을 따라다니는 짝잃은 산새와 외양간에서 빠져나와 산사로 찾아든 황소 한마리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이 갈등은 ‘생사가 함께 있다’는 가르침을 남긴 노숭의 죽음과, 물속에 빠져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큰스님의 유품을 태우고 법당으로 물을 떠가는-산새도 하늘로 날아 사라지고 해진과, 소의 고삐를 쥐고 저녁노을 비끼는 산을 내려가는 기봉의 모습에서 해소된 것처럼 제시된다.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마음의‘있음’과‘비옴’의 대비는 자연의 색과 빛을 무한히 빨아들이는 환상적인 영상의 아름다움-과 함께 관객들을 신비로운 관념의 세계로 쉽게 끌어들인다. 화면은 마치 정확히 계산된 화가의 구도처럼 빈틈없는 구성을 보이고 카메라는 산사의 처마 끝에 감도는 새벽 안개, 밤하늘에 타오르는 티끌 같은 불씨, 창 틈으로 배어 나오는 더운 김, 골짜기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까지 민감하게 잡아낸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땅의 아름다운 색감은 평면의 스크린을 눈 앞에 펼쳐진 자연처럼 물들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과 돌과 빗방울과 마른 나뭇가지조차 구체적인 생명을 얻게 한다. 빛과 소리의 탁월한 배합, 화면의 섬세한 구도, 공간과 시간을 정교하게 짜맞춰 나간 화면과 화면의 연결, 소리와 영상의 적절한 편집 등은 배감독의 주제를 이끌어 가는 독특한 문체에 큰 힘을 부여한다. 또한 부러 세간에서 찾아낸 연기자들의 성실하고 꾸멈없는 연기는 실제로 혜곡스님 역의 이판용씨는 교회장로다 영화의 매력을 더해 주었고 동송 역을 맡은 황해진 소년의 빼어난 연기는 화면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달마가------〉는 풍성한 화제만큼이나 많은 평판이 엇갈린 영화다. 자신이 의도한 작품세계를 자신의 힘으로 표현해 내고자 한 감독의 집념 어린 작가의식,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빼어난 영상미는 신선한 충격임에 분명하지만 관객의 기억에 남는 것은 영상의 ‘아름다움’일 뿐,〈만다라〉 ·〈아제아제 바라아제〉(임권택 감독)만큼의 실제적 감동이였다. 배 감독 자신이 여러 달 동안의 스터디 후에 쓴 각본의 허점도 금방 눈에 띤다. 등장인물 중 대구에서 올 때면 도반스님의 역할설정이 모호하고, 해진의 환상 속에서의 어머니와 길 잃은 소와의 상징적 연결, 기봉스님이 어머니를 만나러 집에 갔을 때의 과거회상의 불명확성과 함께 소에 대한 불교적 상징성에 비해 사회적 상징성이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 퉁이 그것이다. 촬영에 있어서의 시선 불일치와 회상 장면에서의 매끄럽지 못한 편집도 미숙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실제적 감동을 주는 데 실패하고 영상의 기억으로만 그치게 한 정작 큰 이유는 현실적 삶의 고뇌를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관조적 관점에서 관념적으로 파악하려 한 데 있다. 불교를 관념적 형이상학으로 받아들이는 해석 자체도 불교에 대한 천박한 이해일 뿐만 아니라 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도 관념과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기봉의 눈 먼 어머니와 쓰러져 가는 판자집을 보여주는 것은 기봉 개인의 의식의 혼란과 연결되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사실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고뇌에 찬 현실 삶의 모습과 의미를 보다 치열하게 부딪치지 않고 손쉽게 관념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성실한 작가의식이 행할‘수 있는 책임있는 발언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진정한 작가의식의 표현은 개인적이고 현학적인 관념세계에서의 고립된 작업으로서가 아니라 고삐를 풀고 산에서 내려와 현실의 모순과 고뇌에 직접 부딪쳐 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 경지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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