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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1 | 연재 [세대횡단 문화읽기]
판소리란 무엇인가2
최동현(2004-01-27 14:12:37)
판소리는 민속음악이다.
지난 번에는 판소리가 공연 예술(performing art)로서 공연을 통해서만 참모습을 드러내는 예술임을 말하였다. 여기서는 〈판소리란 무엇인가〉 그 두 번째로 판소리의 민속 음악적 특성에 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판소리가 민속음악이란 데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속음악이란 어떤 음악인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도대체 민속음악이란 어떤 음악을 가리키는가?‘민속음악’이란 용어는 사실 적합하지는 않은 것 같다. ‘속(洛)’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인상이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기서 중시되어야 활 것은 ‘민(民)’이다.‘민’은‘민중’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그렇다면, 민속음악이란 민중의 음악이란 뜻이 되겠는데, 민중이란 용어 또한 그 개념이 오래 동안사회학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명확한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런 문제에 대한 논쟁적인 상론은 피하기로 하고, 다만 민속음악의 일반적인 규정과 성립의 조건, 그리고 성격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민속음악은 〈구두전승(口頭傳承)의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온 음악전통의 소산〉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는 1954년 상파울로에서 개최된 〈국제민속음악협의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그 동안에 제안된 수많은 정의들 가운데서 가장 만족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속음악을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그것은 〈기록된 음악〉, 〈작곡된 음악〉, 곧 〈예술음악(an music)〉에 대립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판소리가 민속음악인 것은 바로 이 구두 전승성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말할 때 음악적 약점으로 늘 지적해온 기록수단의 부재라는 점은 샘은 판소리가 민속음악인 한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판소리 악보의 부재는 판소리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판소리가 판소리이기 위해서, 혹은 민속음악이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특성인 것이다. 여기에 덧불여 한가지 첨가해야 할 조건은 민속음악의 계층적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민속음악은, 균질적이고 조직화되어 그 위의 계층과 대립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생활하고 있는 사회적 〈하층〉 계급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주장된다. 그러므로 민속음악은 빽가 복잡해져서 어느 정도 계층적 분화가 진전되고 그에 따른 음악문화의 분화가를 이루어진 경우에만 대립적으로 쓰는 용어이다. 어느 사회가 이런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계층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민속음악이란 용어는 필요없게 된다. 그런 사회의 음악은 본질적으로 민속음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민속음뼈라고 지칭하는 것은 우리 음악문화에 계층적 대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소위사대부의 음악인 정악(正樂) 대 민속음악의 대립이 그것이다. 이러한 민속음악은 〈연속성(continuity)〉 ·〈변이성(rariation)〉〈선택성(selection)〉의 세 특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한다.〈연속성〉이란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으로부터 계속되어 온 특성을 일컫는다. 민속음악은 구두전승예술 이기 때문에,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서 기록된 역사는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 이어져온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판소리에서 이러한 계속성의 측면을 가리키는 판소리 용어에〈제(制)〉와 〈바디〉라는 것이 있다. 제와 바디는 다같이 전승계보를 가리키는 것인데, 제는 유개념(類職念), 바디는 종개념(種樓念)쯤 되는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므로 바디가 모여서 제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수목형(積休型)의 계통도로 표시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판소리가 옛부터 지금까지 계보에 따라 동일성을 유지하고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판소리는 구두전승예술로서 누구에겐가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지 창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말할 수 있고, 제니 바디니 하는 것은 그 이어져 내려온 측면을 강조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변이성〉이란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변화를 일컫는다. 민속음악의 창자는 저마다 대체로 배운 대로 노래를 되풀이할 것이다. 그러나 민속음악의 텍스트는 기록되어 확정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매우 불완전한 흠집투성이인 인간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더러는 망각되기도 하고, 잘못 기억하여 틀려지기도 한다. 이러는 가운데 민속음악은 조금씩 무의식적인 변형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 창조적인 음악가는 이어받은 전승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를 의식적으로 고쳐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이러는 가운데 민속음악에는 수많은 변이형이 나타나게 되며, 또 같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 태는 언제나 오랜 시일에 걸친 수많은 변이형의 축적의 결과로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이야말로 민속음악의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민속음악에는 정조(正調 ; cor-red version)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틀리는 게 아니고, 모두 옳고 정당하다. 서로 틀리는 것 자체가 민속음악의 다양성, 곧 창조의 다양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속음악은 변이의 촉적의 결과로서 존재하게 되기 때문에 그 소유자는 집단이 된다. 민속음악의 익명성은 바로 이 집단적 소유의 표현일 뿐이다. 판소리에서 변이를 가리키는 용어로 더늠이는 것이 있다. 더늠이란, 더 넣다’에서 온 말일 듯한데, 이는 판소리에서 특별히 아름다운 부분, 혹은 어느 창자가 특별히 잘 부르는 대목이나 작품을 가리킨다. 예컨대 ‘〈쑥대머리〉는 임방울의 더늠이다’ 혹은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의 더늠이다’라고 했을 때는 임방울이나 김창환이 톡별이 멋있게 만들어 불러 인기률 얻은 대목이 〈쑥대머리〉와 〈제비노정기〉라는 뭇이다. 또 ‘임방울의 더늠은 r적벽가』이다’라고 할 때는 임방울이 적벽가를 특별히 멋있게 찰 부른다는 돗이다. 따라서 판소리는 더늠의 예술이며, 더늠을 많이 갖고 있는 소리꾼이 명창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선태성〉이란, 그 음악이 존재하고 있으며, .형식을 결정하는 사회가 .선돼하는 기능을 일컫는다. 민속음악이란 개인이 변이를 통해 창조를 하면, 사회가 선택함으로써 살아남게 된다. 사회가 훌륭한 것으로 선택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생명력을 잃어 사라지고 만다. 판소리가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본래의 12마당에서7마당이 전송에서 탈락하고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홍보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만이 살아남은 것이 좋은 예이다. 민속음악은 사회에 의해 선돼되어야 살아남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정서와 기호를 반영하는 것만이 선태된다. 따라서 민속음악에는 개성이 녹아 없어지고, 집단의 기호와 정서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감성과 기호는 고정된 채로 있는 게 아니다. 역사적 조건이 변함에 따라 당연히 인간의 기호와 감성도 변하게된다. 변하는 기호와 감성은 민속음악의 변화를 유도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창조적인 소리꾼은 사회 구성원의 기호와 감성을 이끌어나가는 선도적인 역할도 하게 된다. 흔히 판소리 창자 중 정정렬은 ‘30년 앞을 내다보고 소리를 했다’고 하거니와, 이는 정정렬이 사회의 기호와 감성을 따라가는 소리꾼이 아니라, 사회의 기호와 감성을 이끌어나가는 미래 지향적 소리꾼이었음을 뜻한다. 현대 판소리는 과거에 비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 또한 사회구성원의 기호와 감성의 빠른 변화를 판소리가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민속음악은 가장 민주적인 예술임을 알 수 있다. 항상 다수에 의해 생존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든 여러 특성은 판소리가 민속음악으로서 전형적인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판소리를 대할 때도 민속음악의 특성들을 염두에 두고 대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판소리는 그 본질을 달리하는 〈예술 음악〉에 비추어 언급되고 평가되어 온 측면이 강하였는데, 이러한 태도는 이제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판소리의 판소리다움이 제대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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