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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3 | 연재 [문화저널]
우리문화연구판소리란 무엇인가 4
최동현 판소리 연구가(2003-09-08 11:36:46)

절충설은, 판소리의 기원을 어느 하나로 귀결시킬 경우에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 요소가 항상 남아 있기 마련이어서 실증적 증거들을 댈 수 있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반론의 여지 또한 갖고 있기 때문에, 판소리의 기원을 우리의 음악적 유산 중의 어느 하나에 귀결시키지 않고, 기왕에 있었던 우리의 모든 음악적 유산 혹은 자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판소리는 민속음악뿐만 아니라, 정악까지도 포함하는 우려의 모든 음악적 자산이 합쳐져서 이룩된 거대한 복합체라는 생각이다. 민속음악이라 하여도 민속음악 중의 어느 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 각 지역의 민요를 다 포함하여야하고, 민요에도 어부들의 노래나 길소리, 농부개 각종 노동요 등 온갖 노래들을 망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판소리에는 우리의 음악적 유산뿐만 아니라 〈일상 언어의 음악성(speech melody〉까지도 깊이 침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도섭〉이라 하여 장단 없이 자유리듬으로 부르는 대목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렇게 보면 이 절충적 견해는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견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인과론적인 방법으로 현재 남아 있거나, 예전에 존재했던 것들 속에서 판소리의 기원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은 손쉽고도 타당한 방법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 만큼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으며, 널리 유포되어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앞서 있었던 어떤 것들 예컨대 민요 ·무가 ·정악 등을 판소리로 만든 근원적인 원천, 즉 인간에 대한 고려 없이는 궁극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하고 끝없는 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의 기원이 가무다, 민요다, 혹은 그 모든 것이 다라고 했을 때도 그것은 최종적인 가원이 되지 못하고, 항상 그것의 기원을 또 다시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판소리의 기원이 무가라면, 현재 상태의무가가 우리 민족의 탄생과 함께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이전 단계의 원천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또 다른 원천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물음은 끝이 없어서 결국은 최종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무가니, 민요니 하는 것들이 모여 판소리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냥그것들만 존재하면 항상 판소리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판소리가 우리 민족의 음악적 유산 혹은 자산이모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연과학에서와 같은 단순한 총합만은 아니다. 자연과학의 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는 언제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참일 수 있으며, 또한 가역적(可逆的)이다. 이를테면,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는 적당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언제 어디서나 물이 되고 또 그 물은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원자 두 개로 나누어질 수가 있다. 그러나 인문과학의 세계에서는 원인과결과가 보편적으로 참일 수도 없으며, 가역적(可逆的)인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항상 인간적 의지와 행위가 보태져야만 하는 것이다.
판소리의 경우에는 판소리의 각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이 산술적으로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거기에는 인간에 의한 창조적인 변용이 항상 수반되어 있다. 또 이런 요소들이 그냥 존재하기만 하면 판소리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판소리라는 새로운 창조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주체 즉, 인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판소리에 흡수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음악적 유산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나 있었으나, 판소리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사람들 뿐이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만 한다.

1. 사회 ·문화적 기원
이상과 같은 이유로 해서 마지막으로 민족음악학자들이 주장하는 〈사회 ·문화적 기원설〉의 입지가 마련된다. 모든 종족의 음악은 〈사회와 문화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바를 추인하는 것〉이며, 〈음계의 선택과 그 사용은 음의 음향학적 특성에 반드시 관련지어져 있는 것은 아닌, 사회적 ·문화적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판소리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 예컨대 민요니, 무가니, 정악이니 하는 것들이나, 유교니, 불교나, 신선사상이니, 무속적 요소니 하는 것들 모두는 우리 민족의사회와 문화 속에서 취택된 것들이며, 판소리에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혼재해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회와 문화 속에 그런 것들이 혼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볼 수 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판소리를 만들어낸 것은 그런 것들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사람들의 의식적인 창조 행위의 결과라고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게 된다. 사회나 문화는 정체되어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항상 자체 내에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화합을 하지도 하면서, 그리고 다른 문화와의 접촉에 의해서 변용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역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판소리도 당연히 이러한 성격을 갖는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판소리의 모습은 옛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화 없이 시종일관 동일한 모습으로 계속되어 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는 자기쇄신의 과정을 거쳐 항상 새로이 태어난 결과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판소리의 모습을 통해서 옛 것을 추정하는 일은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있음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다. 이 점은 다른 음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남도 민요의 모습이 현재의 판소리와 거의 구분이 되지않는다고 해서, 남도 민요의 태초의 모습이 현재의 판소리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거나 하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남도 민요의 현재의 모습은 그 동안의 누적된 변화의 결과일 뿐이다. 현재 상태가 비슷하게 된 것은, 민요에서 판소리로의 일방적인영향에 의한 것만이 아니고, 판소리에서 민요로의 영향도 작용한 결과의 산물인 것이다. 음악의 사회 ·문화적 기원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문화의 인간형성적 기능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는 음악을 만들어내지만, 일단음악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은 그 자체가 문화인 까닭에 다시 일정한 인간적 특성을 형성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판소리도 마찬가지이다.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사회 ·문화적 조건 속에서 생겨나, 그 자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용을 겪으면서 우리 문화의 중요한 일부로 성장한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만들어주는 역할 또한 끊임없이 수행해 왔던 것이다.
문화는 일간의 삶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판소리는 한국인의 삶의 결정체, 다시 말하면 수천 년에 걸친 한국인의 삶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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