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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3 | 연재 [문화저널]
기획시리즈안중근 열사가
심인택 우석대 교수(2003-09-08 11:38:22)

창조적인 문화활동은 그 시대적 사명이라 하겠다.
특히 우리문화는 보수적 정체현상과 더불어 외래문화의 적극적 수용보다는 사대적 수용으로 인한 갈등이 참으로 심하다.
판소리 역시 전래되어온 판소리를 집요하게 고수하고자 하는 노력이 한편으로는 판소리의 전통을 위하여 바람직하지마는 그 시대에 맞는 판소리를 개발하지 못하여 우리 스스로 문화의 단절을 겪어야 했다. 기존의 판소리보다는 여러 가지 부족한 면이 많지만 혼란과 격변의 시기에 그나마 소리꾼에 의하여 몇 가지 창작판소리가 불려졌다면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며 우리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아직도 창조적 행위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 현실 속에 역사적 의미와 시대상황을 간결하게 표현한 판소리 중 창작판소리가 있는데 대개의 경우 일제치하에서 항일운동을 주제로 한 사설로 유 관순 열사가·이 준 열사가·안 중근 열사가·윤 봉길 열사가 있고 이 순신 장군가와 함께 해방을 전후하여 소리꾼에 의해 만들어 졌다.
문화저널에서 전년호에 유 관순·이준 ·윤 봉길 열사가의 사설을 소개한바 있고 우석대학에서 나온 우석문화제 7집에 유 영대 교수에 의해 몇 편 소개되었다. 이 사설은 이성근씨의 필사본을 참고하여 혹 미진한 부분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현대에 와서 다시 판소리 창작에 관심이 많으나 아직 그 성과가 부족하며 앞으로도 창작판소리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3월 하늘에 일본에 대한 생각을 이 판소리와 함께 하고 싶다.
안중근 항일독립투사는 1879년에 태어나 1910년에 짧은 인생을 보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했으며 카톨릭교회에 입교하여 신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1909년 10월 26일 할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고 많은 일본인에게 중상을 입혀 현장에서 체포되어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아니리〉
이렇듯이 슬퍼하며 고향으로 돌아오시고 왜적은 일로 인하여 고종을 양위시켜 융희년으로 고치고 약한 정치 실시되어 전 경찰권을 일본이 손에 쥐니 민심이 더욱 소란하고 친일파 이완용 이동박문 원망이 극도에 다다를 제 이등박문 대한을 장악에 넣고 만주를 손댈 양으로 노국대신과 할빈에서 만나자는 조약이 있었구나.
〈중모리〉
그때의 안중근씨 황해도 출신으로 당년 삼십일세 혈기왕성한 청년이라 국운이 불행하야 왜적이 정권하니 간신이 득세로다. 안중근씨 분한 마음 차마 볼 수가 전혀 없어 노령으로 망명하야 해상 위에 의거할 제 그때여 이등박문 할빈에 온다거늘 옳다 내 이놈을 죽여 나라에 원수 갚고 침략정책 반대함을 세계에 알리리라. 동지 이삼인과 할빈에 잠복하여 손을 꼽아 기다릴 제 그때는 어느 땐고 융회 삼년시월 이십육일 아침이라 이등박문 호기 있게 할빈역에 당도한다.
〈아니리〉
노국대신이 환영 나와 차중에 들어가 잠깐 밀회하고 노국대신을 먼저 보낸 후 이는 전설을 두려함이었다. 십오 분 후에 앞을 걸어 나올 제 수행원들이 딸았것다. 마침 열뱃걸음 걸어 나올 제
〈엇모리〉
뜻밖에 어떤 사람이 권총을 손에 들고 번개같이 달려들어 기세는 추상같고 심산맹호 성낸 듯이 왜진 중에 헤치고 이등 앞으로 우루루 이등을 겨누워 광 또다시 광 광 이등이 총을 맞고 섰던 자리에 쓰러질 제 흐르는 피는 물결같이 땅으로 흐르고 사지만 벌벌 떤다. 감추었던 태극기를 번뜻 내어휘두르며 나는 원수를 갚었다. 삼천만동포를 쇠사슬에 얼궈논 우리 원수 이등박문 내 손으로 죽였소 대한독립 만세 우렁찬 큰소리로 할빈역이 진동 삼천리 빛난 이름 세계로 흘러가고 흉적 이등은 혼비백산이로구나
〈아니리〉
자 이제 나 할 일 다 하였으니 이제 날 잡고자 하는 놈이 있거든 날 잡아라 이리하여 노철서에 검거되어 일본 여순 검사국 형법 아래 사형집행을 받게 되어졌다. 세계 각국을 물론하고 도덕은 일반이요 죽은 사람에게 소원을 묻는 것도 당연한 일이로구나. 검사 묻되 그대 소원이 무엇인고. 나는 아무 소원도 없노라 다만 너회가 침략정책을 양심으로 판단하여 보호조약을 해약하라 검사 웃으며 국제사항 문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가정에 대한 소원은 없는가 이라하여 그 이튿날 오전 열시에 어머님 면회가 되는데
〈늦은 중모리〉
쓸쓸한 면회장에 모자 서로 마주서서 몇몇 간수들이 좌우로 갈라서고 그때여 안 의사는 모친을 바라보며 두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불초자식 중근이는 어머님 슬하를 떠납니다. 그 어머니 타는 가슴 어떻다 말하리요마는 타는 가슴 진정하고 태연히 웃으시며 오 내 아들 장하도다. 국민의무를 지켰으니 늙은 어미는 생각 말고 부디부디 잘 가거라. 한두 말로 영별을 하니 어안이 멍먹 두 눈이 캄캄하고 서름이 복받쳐 오르건만 나라를 위하여 죽은 아들을 부여잡고 적인의 저속에서 울 수도 전혀 없고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고 눈만 번히 뜨고 말 못하고 서서 있다.
〈아니리〉
어느새 간수들은 시간이 다되어 안 의사를 옆에 끼고 감방으로 들어가는구나. 그때여 안 의사 모친은 넋 잃은 사람같이 우두커니 바라보는디
〈진양〉
태연히 돌아서서 옥문 밖을 나갈 적에 어간이 멍멍 흉중이 꽉 차 오르고 하늘이 벙벙 돌고 땅이 뚝 꺼지난듯섯든 자리에 주저 앉드니마는 아이고이 자식아 너의 의열은 장커니와 늙은 어미는 어쩌라고 네 맘대로 하였느냐 너를 나서 키울 적에 특재 총명이 하늘로 떠오르기로 쥐면 터질까 불면 날까 금옥같이 길렀더니 오늘날 만리타국에 와서 모자 영별이 웬일이냐 야 이 흉직한 왜놈들아 너희를 짝짝 찢어서 사지를 갈라놔도 이 원수를 언제 다갚되 주먹을 쥐여 가슴을 뚜다리며 복통 산장으로 울음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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