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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3 | 연재 [교사일기]
참교육의 현장우리민족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문상봉 전교조 전북지부 홍보부장(2003-09-08 11:39:15)

"인간은 살아 움직이는, 생각하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존재다 라는 명제를 지금까지의 한국 교육이 그냥 지나쳐왔던 명제가 아닌가 싶다. 인간을(학생을) 교육의 대상이나 훈련의 대상으로만 보았지 교육의 주체, 앞으로 자주적 삶을 영위할 주체로 보지 않는 것이 이제까지의 우리 교육현실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 이름은 호랑이 선생님
흔히 동창회나 계모임에서, 혹은 옛 친구들 간의 술좌석에서는 이야깃거리로 씹히고 기억되는 선생님이 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유난히 사나운 선생님이거나 호랑이 선생님이다.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면 될 수록 그 나머지 선생님은 이름도 얼굴도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알게 모르게 사나운 선생님, 무섭도록 공부를 시키는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인식이 배어있기도 하다. 또 그런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한 교사도 상당히 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어떤 교사가 되길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호랑이 교사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더하여 마냥 끊임없이 뜻하는 바를 향해 흘러가는 물같은 교사 공기처럼 꼭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고 항상 곁에 있는 교사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고 실천하는 교사가 되겠다고….

공부 잘하니?
어른들은 흔히 친구나 친지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 집 아이들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이 있다. 아마 백이면백 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내 뱉는 물음 "너 공부 잘하니?" "어때 영어 ·수학은 어렵지 않니?" 우리 사회에서 신분이 학생인 한 끊임없이 이 질문을 받아야 하고 답해야 한다. 여기에서 선뜻 대답을 잘하는 학생은 성적이 우수한 아이이거나 거짓말을 잘하는 학생일 것이다. 대부분 상위권에 들지 못하는 학생은 쭈뼛대거나, 피하거나, 말을 얼버무릴 것이다. 완전히 기를 죽이는 좌우 스트레이트 한방, 아이들은 심한 충격을 매일처럼 입는다.

비어있는 운동장
요즈음은 스포츠 용구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농구공이라 한다.
농구는 단체경기이기도 하지만 연습할 때는 언제든지 혼자 슛팅연습을 할 수 있다. 또 가장 많이 점수를 낼 수 있는 만큼 강한 성취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혼자서 놀 수 있다는 점이고 사실 거의 대부분 아이들이 한 둘씩 농구연습을 하곤 한다. 극도의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배태될 수 있는 터전이 되기 때문에 가볍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주태가 깊숙한 곳까지 번창하고 있는 전자오락실과도 무관치 않으리라. 성취욕구=파괴욕구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는 사회나 환경을 분명히 많은 문제가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방과 후면 운동자이 비좁을 정도로, 아이들이 가득 차 야구 몇 게임, 축구 몇 게임이 함께 벌어져 북적대고 부딪히던 모습이 지금은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여유는 커녕 잠자거나 응석부릴 시간도 없다. 도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미술학원, 웅변학원, 피아노학원, 주산속셈학원, 컴퓨터학원, 서예학원 정신없이 뺑뺑이 쳐야하고, 시골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TV에 넋을 잃고 중고생은 중고생대로 보충수업에다 자율학습에 시달리고 있다. 거기에다가 매일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비교고사, 군 학력고사, 배치고사, 도학력고사, 그리고 끝내는 대입학력고사로 아이들을 책상에 하루 종일 꽉 붙들어 놓고는 요즘 아이들은 체격에 비해 인내심과 체력이 약하다고 한숨을 쉰다. 우리나라는 그야 말고 고사천국이다.

실력 있는 선생? 그리고 두 선생님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 한 분을 기억하고 있다. 수학선생님이셨는데 분필한 자루만 들고 오시곤 했다. 물론 책을 가지고 오시는 일도 있었지만 책을 펴놓고 수업하시는 일은거의 없었다. 수학 정석이면 수학정석, 교과서면 교과서 문제 몇 개를 칠판에 적어 놓으시고 수업을 진행시키곤 하셨다. 물론 그 문제가 무슨 책 몇 페이지에 있는가도 알고 계셨고 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다. 나는 그분을 무척 우러러 보았고 야 정말실력하나는 끝내주는 선생님이구나 하고 다른 학교 학생이 가지지 못하는 행운을 몹시 기뻐했다. 그 후 10년교단에 섰던 나는 나의 우러름의 환상이 얼마나 우습고 부끄러웠던지 쓴웃음이 나왔다. 참고서와 함께 교재연구를 하고 두어 학급만 돌면 나 같은 돌 머리도 분필만 가지고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고교시절엔 그 지긋지긋했고 어려웠던 국어문법일수록---.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또 한분의 선생님은 내가 전교조에 가입하면서안 국어 선생님이다. 그분은 자신은물론 학생에게까지 교과서에 베껴 쓰는 것을 죽어라 싫어하고 허용치 않는 분이었다.
국어수업을 하다보면 알겠지만 참고서 원문 밑에(특히 문학작품경우에는) 밑줄 그어지고 파란색 붉은색 자잘한 글씨가 빽빽이 적혀있고, 마찬가지로 교사의 교과서도(참고서를 가지고 교실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학생의 교과서도 빽빽하게 적혀있어 말 그대로 삼위일체가 된다. 더욱이 입시 출제빈도가 높은 항목일수록 특별이 당구장 표시가 더해진다.
이 모음 역행동화, 자음동화,〈첨가, 인물, 사건, 배경, 다독, 다작, 다상량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글자들이 국어책 가득하고 학생들은 끊임없이 연필로 새까맣게 칠하면서 머릿속에 집어넣기에 급급하다. 더구나 해석에 있어 가장 가변성이 많고 다양성 있는 시(詩) 같은 문학작품경우 거의 일률적인 해석과 분석으로 메꾸어져 있고 진정한 문학수업인 감상은 뒷전에 밀려나 있다.
그러나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원문과 원문사이의 공백이야말로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며, 학생 개개인의 생각, 분석, 노력이 함께 숨쉬는 장소라 믿고 또 그것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한다. 즉 이미 참고서에 적혀진 대로의 인스턴트思考가 아니라 항상 새롭고 거듭나는 공간이어야 하며 아울러 교사 자신이 이야기 하는 것조차 해석이나 분석, 또는 감상 가능성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위의 두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속하고 있는 사회와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교사상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는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교사의 품성 및 인격을 제외하고서라도….그러나 어쨌든 훌륭한 교사는 훌륭한 지식 전달자만으로는 필요충분조건이 못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베스트셀러
최근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무엇일까? 각 대형서점 나름대로 소설부문 비소설부문으로 나누어 일주일마다 순위를 정하고 있다.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일까? 아니면 김우종의 세상은 넓고 훔칠 것은 많다 일까? 그러나 위의 책들은 정답이 아니다. 놀라시겠지만 정답은 다름 아닌 몇 십 년 동안 끊임없이, 그러나 소리 없이 최장기간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있는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정석 한샘국어 등 참고서류다. 이 책들은 비싼광고를 내지 않아도 잘 팔리는 책으로 끊임없이 황금알을 낳은 거위이다. 바로학부모나 학생들은 이 책 저자로 하여금 신종 책재벌이나, 큰 학교 이사장, 혹은 큰 부동산업자나 국회의원이 되게 한다.
참교육은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미래를 보장하는 수단일 것이다.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화 교육으로 요약되는 참교육은 아직도 이땅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일제식민지주의, 사대주의, 권위주의, 군사문화, 극단적 이기주의, 비인간화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런 목표를 수행하려는 한, 현 단계 제도교육 하에서는 전교조야말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이는 혼자서, 혹은 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 국민이 함께해야만 이룩될 것이다. 바로 나의 이웃, 내 자식,이웃집 자녀에 대한관심의 영역을 넓히는 데서부터 이 운동은 시작된다. 아이들에게는 참교육을 선생에게는 전교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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