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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4 | 연재 [연중기획]
백제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10
실상사
윤덕향 고고학, 전북대 교수(2003-09-08 12:11:11)

여름이면 복작거리는 지리산 계곡, 그중에서도 도심처럼 복작거리는 뱀사골(또는 비암사골)에서 가까운 곳에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의 앞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흘러 섬진강으로 흘러들며 지리산을 배경으로 비교적 넓은 들을 차치하고 있다. 또 뱀사골로 들어오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거치는 인월의 주변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친 대첩비가 있으며 황산전투의 얘기를 전하는 피바위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황산전투가 벌어졌을 때 왜구의 장군은 아지발도로 그의 전신은 화살이 뚫을 수가 없었다. 이에 이성계는 부장인 퉁두란(후에 이씨를 왕으로부터 얻어서 이두란이라고도 함)과 더불어 먼저 활로 아지발도의 투구 끈을 쏘아 맞추고 그가 놀라 입을 벌린 틈에 입안으로 화살을 쏘아 맞힘으로써 죽일 수가 있었다고 한다. 화살을 맞은 아지발도는 팔령치(함양과 남원군의 경계가 되는 고개)에서 피바위까지 내달려 피바위에서 피를 쏟고 죽었으며 그의 피로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또 승기를 잡은 이성계군이 달이 기울어 날이 밝으려하자 활을 쏘아서 달을 끌었기 때문에 동리이름을 인월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월에서 실상사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보면 백장휴게소가 있고 이곳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오르면 백장암이 있다. 백장암에 이르는 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등산로였으나 지금은 비록 험하기는 하나 차를 타고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백장암에는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석등이 있으며 석탑이 도굴꾼들에 의하여 붕괴되어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앞으로 3차례에 걸쳐 실상사와 그 부속암자인 백장암의 유물을 중심으로 몇 가지 추론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백장암에 있는 유물과 실상사에 있는 유물 중 몇몇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특히 이들 유물이 가지는 특성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기 위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이들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 이유는 이들 유물이 전북지방에서 금산사와 더불어 통일신라시대의 불교 미술을 대표할 만한 것임에도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실상사가 창건된 배경이 불교 선종과 관련이 있으며 동시에 실상사에는 불교와는 다른 속성, 즉 민중 신앙적인 성격을 지닌 석장승이 있기 때문이다.

1. 백장암의 석등과 석탑
백장암에 있는 석탑은 국보 10호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장식석탑으로 꼽히는 것이다. 석탑은 기단위로 탑신이 놓여 있으며 탑신이나 기단에는 장식을 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류의 석탑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시작하여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완성된 양식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국사에는 석가탑과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다보탑이 있으며 다보탑은 평면형이 사각인 기단위에 8각의 탑신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화려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 보통의 탑과는 달리 상층기단에는 4귀에 기둥이 있을 뿐이며 벽이 없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탑, 즉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른 양식의 석탑을 이형석탑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구조상의 특이형 외에 탑의 기단이나 탑신에 장식을 하는 것도 불국사의 축조를 전후한 시기에 등장하며 그중 대표적인 예로 구례 화엄사의 4사자 석탑과 실상사 백장암 석탑을 들 수가 있다.
백장암 석탑은 우선 기단이 없이 4각의 판석위에 탑이 놓여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석탑의 구조를 벗어난 이형석탑이다. 또 탑의 전면에는 각종의 무늬가 부조되어 있어 하나의 예술조각품처럼 보인다. 각 층의 탑신 아래에는 목조건물에서 볼 수 있는 난간을 조각하였으며 난간의 위 탑신에는 각종 불상과 비천상을 조각하였다. 초층탑신의 4면에는 보살상과 신장상2구씩을 배치하였으며 2층 탑신에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주악천인상 2구씩을, 그리고 3층 탑신에는 천인좌상 1구씩을 배치하였다. 또 탑신위의 추녀받침에는 일반적인 석탑과 달리 층급을 두지 않고 대신 연꽃을 부조하였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보개, 수연이 찰주에 겹쳐져 있어 흔치않은 예에 속한다. 탑의 전체 높이는 5m이며 탑이라기보다 전체가 하나의 조각품을 이루고 있다. 이탑은 전형적인 석탑의 구조를 벗어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설계와 장식의 가미를 통하여 새로운 예술의 장을 종교와 결합시킨 통일신라 하대-대체로 9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꼽힌다.
백장암 석탑의 앞에는 석탑과 중심을 맞추고 보물 40호로 지정된 석등이 놓여있다. 이 석등은 하대석과 간주석,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 등을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석등에 속하는 것이다. 하대석은 단엽의 연꽃 8잎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개개 연꽃의 안에는 다시 4이이 있는 꽃무늬가 있다. 간주는 8각이며 간주위에 있는 상대석은 단엽의 연꽃무늬가 8잎 있으며 꽃잎마다 안쪽에 4잎의 꽃무늬가 있다. 하대석과 같은데 다만 연꽃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상대석의 연꽃잎이 있는 끝부분의 위쪽은 8각을 이루며 측면에는 난간을 새겼는데 매우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상대석위에 등불을 넣어두는 화사석이 놓이는데 화사석은 8각이며 하나 건너씩 창을 뚫어서 불빛이 비치도록 되어 있다. 화사석위에 있는 옥개석은 간결하며 그 위로 단엽의 연꽃봉오리 같은 보주가 놓여있다. 그 석등은 석탑과는 달리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석등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석탑과 같이 9세기를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실상사의 부속암자였던 백장암에 있는 석탑과 석등에서 보이는 규칙성과 그에서의 일탈은 조성 당시 석등의 경우에는 변화가 있지 않은 탓이거나 그와는 다른 양상, 즉 사회문화적인 규칙, 질서의 해이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이문제와 관련하여 실상사의 몇몇 유물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실상사의 유물 개관
실상사는 사적 30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신라 선종 9산중의 하나이다. 이 절에는 증각대사의 부도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많은 불교문화재와 민속자료인 석장승이 있다.
석탑은 실상사의 대웅전인 대광명전의 앞쪽 좌우에 2기가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씩의 돌로 탑신과 옥개석을 만든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3층 석탑이다. 옥개석의 추녀 밑은 수평을 이루며 옥개받침은 층급을 이루고 있다. 기단에는 우주와 탱주가 있으며 기단의 덮개돌은 지붕형태를 보인다. 기단위의 탑신에는 우주가 표현되었으며 초층탑신에서 2층탑신으로 이어지면서 높이가 급히 줄었으며 전체적으로 기단이 탑신에 비하여 높고 큰 느낌을 준다. 석탑 중 동탑에는 상륜부가 잘 남아 있어 찰주를 중심으로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연, 용차 그리고 보주가 모두 조존 되어 있어 희귀한 예에 속한다.
석등은 정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소위 고복형(鼓腹형)으로 석탑의 사이, 대광명전과 중심축을 맞추고 자리한다. 8각의 지대석위에는 폭이 좁은 기대석이 있는데 측면에는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 하대석은 폭이 넓으며 8엽의 연꽃잎이 땅을 향하고 있는데 개개 연꽃잎의 안에는 짧은 자엽이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대석의 8각을 이루는 귀마다 귀꽃이 있는데 귀꽃은 위와 좌우에 와문이 있는 여의두(如意頭)형을 이룬다. 하대석 위의 간주석은 원통형의 중간 2군데가 좁혀져서 위와 아래, 그리고 중간부분에 불룩 나온 부분이 있는 형태로 좁혀진 2곳에는 각각 중앙에 1줄의 폭이 넓은 선을 양각하였다. 3부분으로 나누어진 곳 중 위와 아랫부분에는 각각 16잎의 연꽃이 장식되어 있으며 가운데 부분의 위와 아래에도 같은 모양의 연꽃이 각각 16잎 장식되어 있다. 가운데 부분은 다시 중앙부분에 3줄의 양각선을 두르고 이 양각선으로 이어지는 부분 8곳에 화문을 양각하였다. 이 화문은 4잎 크로버 형태인데 외곽을 선으로 두르고 있는데 이 크로버 모양의 무늬는 간주석의 위부분과 아랫부분에도 반만큼씩 표현되어 있다. 상대석은 윗면이 팔각이며 아랫부분은 원에 가까운 곳에 8잎의 연꽃이 있는 연꽃의 안쪽에는 꽃무늬가 있다.
상대석위의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8각인데 백장암의 석등과 달리 각면 중앙에 각각 화창이 뚫려 있다. 화사석위의 옥개석에는 하대석과 같은 형태의 여의두형 귀꽃이 있으며 옥개석 윗면에는 8엽의 연꽃무늬가 있는데 옥개석위에 다시 또 하나의 옥개석이 있어 이 옥개석위에도 같은 형태의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옥개석위에는 크로버형의 무늬가 있는 복발과 간주를 축양한 것 같은 형태의 고복형 간이 있고 그 위에 옥개석과 같은 모양의 귀꽃이 있는 보개가 있다. 보개의 위에는 탑의 수연과 비슷한 형태의 보주가 있어 상륜부를 마감한다. 또 이 석등의 앞에는 다른 석등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석계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상사 경내에 있는 석탑과 석등은 백장암의 경우와는 달리 탑의 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에 충실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석등은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서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실상사 석등에서 보이는 고복형의 간주석은 전남 장흥보림사나 담양 개선사지 석등, 임실 용암사지 석등에서 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한 양식으로 생각되고 있다.
우선 석탑과 석등만을 가지고 비교할 때 백장암과 실상사에서 서로 대비되어 나타나는 이 같은 차이는 두 곳의 축조연대에서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란 규칙에의 순응과 동시에 나타나는 규칙에서의 일탈과 장식성으로 정리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 이와 관련하여 실상사 석등의 양식이 전라도를 중심으로 유행한 고복형이라는 점은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실상을 창건한 증각대사 홍척과 선종, 그리고 선종이 유행하게 된 신라하대의 제반 상황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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