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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편견을 넘어 공존을 욕망하는 동물 공동체
<주토피아>
김경태(2016-04-15 10:58:45)




국내외를 막론하고 동물들을 의인화한 캐릭터와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의 단골 소재이다. <뽀로로>는 펭귄과 비버, 공룡, 북극곰, 벌새, 여우 등의 동물들에게 귀여운 외모와 제스처를 선사하며 유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쿵푸팬더>는 판다와 호랑이, 원숭이, 사마귀, 뱀, 두루미 등의 동물들이 힘을 합쳐 각자의 개성을 살린 무술 실력을 선보이며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운다. 우리는 그 다양한 동물들이 현실 속 생태계의 냉혹한 먹이사슬과는 무관하게 서로 친구가 되어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을 어색해하지는 않는다. 행여나 누군가 그런 점을 지적하며 어불성설에 불과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비난한다면, 그는 융통성이 부족한 꽉 막힌 사람이라고 도리어 지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주토피아>는 우리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암묵적으로 눈감아줬던 동물들의 그 외면할 수 없는 차이를 들춰낸다.

동물들이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처럼 규율에 따라 서로를 존중하는 미래의 사회. 어린 토끼 '주디'는 경찰이 되기를 꿈꾼다. 부모는 그녀가 자신들처럼 당근 농사나 지으면서 살기를 바라며 그 꿈을 만류한다. 애초에 경찰은 거대한 덩치의 맹수들만이 독차지하고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주디는 여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을 도와주고자 하지만, 당연하게도 토끼는 힘으로 여우를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낙망하지 않았고 그 사건은 오히려 자극제가 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녀는 모두가 동경하는 도시 '주토피아'에서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된다.

'동물원'과 '유토피아'의 합성어인 '주토피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포식자와 피포식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인 동물 공동체로 묘사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 기반한 도시는 아주 작은 생쥐에서부터 거대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동물도 배제하지 않는다. 신체 크기의 극단적인 차이는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각자의 개성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가치관은 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원칙이며 일상 속에서는 다른 종의 동물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곤 한다. 일례로, 포식자인 치타가 피포식자인 토끼를 보고 '귀엽다'라고 지칭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에 해당한다.

영화는 각각의 동물들이 상기시키는 스테레오타입을 전복한다. 가장 무서운 마피아는 생쥐이고 북극곰들이 그 생쥐를 보좌한다. 혹은 순한 동물의 대명사격인 양인 '벨웨더'가 가장 사악한 악당으로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양의 탈을 쓴' 양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곧 개별 동물들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주디가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는 중요한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여우인 '닉'은 여우이기 때문에 교활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그는 저들의 편견대로 살기로 결심을 했다. 사실 주디 역시 여우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여우를 경계하기 위한 스프레이를 지니고 다닌다. 주디는 온순한 동물인 자신과 내면 깊숙이 잠재해 있는 공격적인 본성을 지닌 맹수들을 구분 짓고, 닉은 그런 주디에게 실망하고 화를 낸다.

따라서 문명화된 주토피아에서 약자는 토끼와 같은 초식동물들이 아니라, 오히려 편견으로 인해 경계의 눈초리를 받는 맹수들이다. 맹수들에게 있어 일말의 야수성은 사회화에 있어 치명적인 결함에 불과하다. 벨웨더는 그 편견을 부추겨 90%에 해당하는 초식동물들과 나머지 10%인 육식동물 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 궁극적으로는 그 육식동물들을 격리시키고자 한다. 그녀는 '밤의 울음꾼'이라는 식물로 만든 약물을 맹수들에게 주입해 그들의 공격성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그 약물에 중독된 맹수들은 더 이상 두발로 걸어 다니는 의인화된 동물이 아니라 네 발로 뛰어다니는 예의 그 매우 '사실적인' 짐승의 모습이다. 영화는 자연스레 지금 이곳의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환기시킨다. 그것은 서로의 차이를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이해하는, 그리하여 가슴 한쪽 깊은 곳에는 편견을 깨끗이 지워내지 못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주토피아>는 교양 있는 동물을 사나운 짐승으로 만든 것은 바로 그 편견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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