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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 | 연재 [수요포럼]
시네필과 대중이 영화로 호흡하는 방법
159회 마당 수요포럼
(2016-05-17 14:28:03)





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인 '영화'.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단 한 번도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운 깊은 영화 한편을 보고난 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진짜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고 시작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주에서는 매년 봄의 영화축제를 알리는 전주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전주영화제는 시네필로부터 특히 각광받는 영화제로, 다른 영화제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영화들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가져와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일까. 이달 수요포럼에서는 그 궁금증을 해결해 줄 전주국제영화제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와 함께했다.


세계 영화제 흐름 속 전주국제영화제

"제 소개를 간단히 드리자면, 저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영화잡지 씨네21기자를 했었습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지금은 망하고 없어진 필름2.0이란 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아 평론을 썼고, 2006년부터 명지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2012년 말부터 수석 프로그래머 직을 겸하고 있습니다."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던 90년대에 기자생활을 시작해 2000년 이후 한국영화의 부흥기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누구보다도 영화 현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중심에 정확히 닻을 내리고서 영화평론을 써왔다. 

 
"첫 1회 때 충격이었어요. 책에서나 볼법한 영화들이 상영됐었거든요.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바꾼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세 시간 반짜리 작품을 전주 시네마타운 극장의 불편한 좌석에 앉아 몸을 비틀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전주영화제를 통해 영화제를 알게 됐고, 영화제가 열리지 않아도 전주에 곧잘 놀러오고 했다는 김 수석프로그래머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골수 영화 팬들에게 아주 환상적인 프로그램으로 짜여진 영화제로 기억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디지털, 독립, 대안을 기치로, 한국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 가장 시네필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들을 트는 영화제다. 입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중반 무렵에 들어서자 표를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깐느와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가 프리미어리그라고 보면, 로카르노, 로테르담 영화제는 분데스리가 격이죠. 프로그래머로써 그런 해외 영화제의 사이클을 돌면서, 영화제의 흐름을 익힙니다. 제가 기자로 참여했을 때와 프로그래머로서 참여했을 때의 관점을 달리해 예의주시하게 돼죠."

김영진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머가 된 이유는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프로그래머가 되기 이전에 3-4년 동안 한국독립영화만 보면서 한동안 그에 대한 평론을 썼다. 그러면서 GV(Guest Visit:관객과의 대화)를 많이 진행하고 참여했다. 1년 정도 되니까 동어반복이 되고, 3년 정도 했을 때는 공허해졌다고 한다.

"꾸준히 영화 평론을 쓰다가 교수가 되고, 전투력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영화제 일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영화 셀렉션을 직접 해서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전주 영화제에 오게 됐습니다."


영화제를 '왜' 하는지에 대한 물음

"매번 영화제를 치르면서 '영화제를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느 순간, 느꼈습니다. 영화 찍는 현장하고, 영화제하고 비슷하다는 것을. 영화 찍을 때, 시나리오 쓸 때 별 생각을 다 하지않습니까. 영화제 끝나고 6,7월부터 끝난 영화제 점검하고 계획세우다 보면 그 해가 다 갑니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영화제 준비가 들어가는 1,2월부터는 굉장히 많은 일과 커뮤니케이션 실수로 인한 혼선이 빚어지면서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느새 4월입니다. 딱 지금 이 시점, 사무실에 가면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영화제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심정이 되고 맙니다(웃음)"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사람들의 머릿속 공통된 생각은 '영화제를 잘 치러내야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김 프로그래머는 프랑수아 트뤼포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감독의 영화를 예로 들었다. 1973년에 만들어진 '아메리카의 밤'이라는 영화를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찍었다. 감독 주연의 그 영화에서 감독은 이런 말을 한다. "영화 촬영은 서부시대 역마차 여행과 같다. 떠날 때는 큰 포부에, 근사한 여행을 계획하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면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도착했으면 하는 심정뿐이다." 영화제도 딱 그렇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무사히 영화제를 치러낼 수 있다. 그리고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전주영화제 소개에 앞서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제를 왜 해야 하는가? 우리 영화제 내부에서도 이런 질문을 하고, 외부에서도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 전에 앞서 영화제라는 것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서구에서 최초로 영화제가 만들어진 것은 무솔리니 치하에서 만든 베니스 영화제입니다. 자기네 정권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리기 위해서 그 당시 올림픽도 그랬고 엄청나게 프로파간다가 많았습니다.그리고 거기에 대항해 프랑스의 깐느 영화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베를린 영화제는 냉전시대에 자유 서방진영과 예술성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 좌파적인 영화들에게 상을 주는 경향이 있고 메시지를 상당히 우선시 합니다. 베를린 영화제에 가면 그 당대의 정치적 아젠다가 무엇인지를 곧잘 알 수 있습니다."

깐느는 가장 권위적인 영화제다. 한국영화가 깐느에 입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깐의 영화제는 기자와 영화인들을 위한 영화제라고 김 프로그래머는 설명했다. 전세계에서 수천명의 기자들이 몰려오고, 메인 상영관에만 기자 3000여명이 들어간다고 한다. 프레스 카드에도 차등을 둔다고 한다. 10년 이상 영화제에 온 사람에게 앞좌석에 앉을 수 있는 우선권을 준다. 깐느 영화제의 우리나라 입성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2000년에 처음 깐느에 갔을 정도다. 당시 한국영화가 경쟁부문에서 상영되는 것이 처음이어서 깐느에서 영화 상영 후 영화사 대표가 카페를 빌려 2-3일 간 한국영화인들이 마치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이 월드컵에 진출한 것처럼, 술 마시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베를린은 세계3대 영화제 중에서도 심각한 비평가 취향의 영화들, 제3세계 영화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에 가장 관대한 행사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베니스는 전통적으로 유미주의적이고, 아시영화에 굉장히 강하다. 우리나라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에 출연한 강수연 씨가 여우주연상을 처음 수상했을 정도로 아시아 영화가 강세를 띤다.

"그밖에 영화제들, 특히 국제영화제들이 진짜 많이 열립니다. 전 세계 신인감독들에게 좋은 영화제가 로카르노 영화제입니다. 가장 젊은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죠.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영화제도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제입니다."

유럽 중심으로 영화제가 발달한 반면, 미국 같은 곳은 워낙 상업화 된 곳이고 하고 자국 내 시장이 크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견줄 영화제가 없지만, 감독들이 늘 가는 영화제는 미국 뉴욕영화제라고 김 프로그래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영화제는 토론토 영화제라고 하였다.

"최근 가장 뜨는 영화제는 '토론토 영화제'입니다. 마치 캐나다 토론토가 북미시장의 입구처럼 되어 있어가지고, 베니스 영화제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열립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베니스의 물가가 너무 비싸고, 섬들이 많아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1976년부터 시작된 토론토 영화제는 다른 영화제에 출품된 우수작들을 모아 새로운 영화제를 만든 것이 시작이며, 캐나다는 물론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출품된 300여 편 이상의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토론토 국제 영화제는 북미 영화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화인들에게 시장 개척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유럽의 영화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아시아 영화에 대한 설명도 함께 이어졌다. 우리들이 들어봄직한 익숙한 감독들의 이름이 나오자 강연을 듣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시아에서는 홍콩영화제가 유명합니다. 홍콩이 원래 아시아의 할리우드였습니다. 홍콩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상업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곳, 홍콩영화하면 액션영화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액션영화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 홍콩영화가 단순히 홍콩시장만을 노리는 것이 아닌, 동남아 시장 전체를 다 포괄합니다. 100~200편을 만들어 공장처럼 돌리는 거예요. 마치 할리우드 전성기 시스템처럼, 놀라운 제작횟수를 보였습니다."

그렇게 70년대부터 흥성하기 시작하여 공장식으로 영화를 찍어내듯 만든 홍콩영화는 80년대부터 예술적 성취도  얻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에는 홍콩 시장에서 외화가 4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데 비해 홍콩 영화가 1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왕가위 감독, 허안화 감독, 팡위핑 감독, 관진펑 감독 등 홍콩영화를 축으로 해서 아시아의 영화들의 예술적인 서포트를 받는 흐름이 있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가까운 일본의 영화제와 산업은 어떨까.

"일본이 좀 재밌습니다. 80년대 이후로 영화 산업이 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망하고 있습니다. 망해도 아까워하질 않습니다. '소노 시온'이라는 1년에 네댓 편씩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요즘 가장 뜨는 감독이 있습니다. 소노 시온이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이 사람 누군지 아냐고. 되게 유명한 감독이라고 설명을 해주면 대부분 모른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일본에서는 감독들이 유명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대중문화의 마이너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전주영화제, '선댄스 영화제'를 목표로

"95~96년도에 씨네21기자였을 때 제 팬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인해달라고 하면, 거만하게 사인해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웃음). 그때는 씨네21이 한겨레신문을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로 씨네21이 잘 나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97년 무렵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생겼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김지석 프로그래머와는 꼬마 때부터 알던 사이였는데, 문구점 쪽방에 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화제를 열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김동호 위원장을 모시고 해내더라고요. 첫 1회 때 부산국제영화제는 사건사고도 많고, 조직이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여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제가 그 때 영화제 데일리 소식지를 만들면서 영화제 사무국이랑 많이 싸웠습니다. 그럼에도 부산영화제는 대박이 났습니다."

실제로 부산영화제에 온 외국인 감독들이 한국 사람들이 영화에 미쳤다고, 질문수준이 높아서 한국 사람들은 영화 평론가가 아니냐며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됐던 부산영화제는 기록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김 프로그래머는 부산영화제의 성공을 세가지이유로 꼽았다. 첫 번째로 영화 프로그램이 좋아야 되고, 두 번째는 조직력, 세 번째는 파티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 몰몬교가 사는 지역이죠. 파크시티라는 곳이라는 아주 조그마한 곳에서 선댄스 영화제가 열립니다. 사람도 없고 조용한 도시입니다. 조그만 영화제를 하는 곳인데, 어쩌다 한 번씩 뜨는 감독들이 배출되면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취재를 갔었습니다. 근데 너무 놀랐던 것은 굉장히 작고 안정된 마을인데, 그들이 보는 영화는 전부 마약하고 십대가 일탈을 하고, 소위 말하는 엄청 쎈 영화들을 도시락 까먹으면서 보고 있습니다. 그걸 보고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뭔가 굉장히 초현실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김 프로그래머는 전주국제영화제의 롤모델은 선댄스 영화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과 디지털, 독립이 굉장히 섹시하고 매력적인 콘셉트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은 더 이상 쓸모 있는 화두가 아니게 되었다. 지금은 필름으로 영화를 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어버렸고, 대안, 독립을 기치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유심히 안 보기도 하는데, 티켓 가이드북을 열심히 보라고 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티켓 가이드북 굉장히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영화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이드북을 보시면 여러 가지 섹션으로 나눠진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섹션마다 각각의 성격들이 있는데, 경쟁섹션을 제외한 나머지는 초청섹션입니다. 불면증 치료에 직빵인 영화만 트는 익스펜디드 시네마, 월드 시네마 섹션은 비교적 유명한 영화제들에서 상영된 영화가 많습니다. 세계영화의 흐름도 알 수 있고요. 제가 고른 재밌는 영화들이 많은 시네마 페스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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