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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성과주의 사회를 거슬러 오르는 부단한 유영
<4등>
김경태(2016-05-17 14:37:40)




초등학생인 '준호(유재상)'는 수영에 재능은 있으나 승부욕이 없어 매번 시합에서 4등만 한다. 그런 그를 답답해하던 엄마는 국가대표 출신의 코치 '광수(박해준)'에게 준호를 맡긴다. 그런데 준호가 광수의 혹독한 훈련에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자 광수는 분노하며 그에게 매질을 한다. 광수는 자신의 훈련 방식을 감언이설로 합리화하고 준호는 마지못해 동의를 한다. 그 덕분이었을까. 마침내 준호는 대회에서 처음으로 2등을 한다. 물론, 준호의 몸에는 구타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수영 천재로 불렸던 광수는 바로 그 구타 행위를 견디지 못해 국가대표 선수촌을 박차고 나왔고, 심지어 그 사실을 언론에 고발하려고까지 했다. 그런 그가 왜 변했을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대회에서 매번 1등만 했기에 어른들에게 야단맞을 일이 없었다. 사실 그에게 그 1등이라는 등수는 그것을 목표로 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다. 천부적 재능과 더불어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기 위해 바다에서 수영을 했던 경험들이 쌓여 우연히 도달한 지점이다. 아마도 그는 더 이상 1등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는 사회의 냉정한 시선 속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힌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며 변해갔을 것이다.

준호의 엄마 역시 다르지 않다. 준호의 상처를 외면하며 그가 4등으로 남기보다는 매를 맞고서라도 1등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는 성과주의 사회에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다. 그녀에게 그저 수영을 즐기려고만 하는 준호는 잠재적인 실패자에 불과하다. 그저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좋을 뿐, 간절하게 1등을 하고 싶었던 적인 없는 준호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코치의 가르침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은 수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영장 바닥까지 환히 비춰주는 햇빛을 좋아하는 그는 정해진 레인을 따라 똑바로 헤엄치지 않고 그 빛을 좇아 레인을 가로지르며 유영을 한다. 어른들의 시선에 그것은 일탈에 다름 아니다.

준호는 1등을 한 선수에게 1등이 좋은 이유를 묻는다. 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고급스러운 헤드폰을 가리킨다. 당근과 채찍, 즉 승자에게 돌아오는 물질적 이득과 신체에 가해지는 매질을 통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승부욕을 학습시킨다. 1등과 4등의 차이는 그저 기분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준호에게 성과주의 사회는 그 차이가 기분 이상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이제 그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훼손하며 고통을 남겼던 채찍은 깊이 내면화 되어야 한다. 그는 이제 스스로를 채찍질 해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잠깐의 육체적 고통보다 더 오래 그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것이 성과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이다. 그래서 준호는 그토록 좋아하는 수영을 차라리 그만둬버리기로 결심 한다.

우여곡절 끝에 준호는 다시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광수를 찾아간다. 광수는 그에게 이제 혼자해도 1등을 할 것이라고 예언 아닌 예언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국가대표 시절에 썼던 수경을 선물한다. 대통령배 수영 대회에 출전을 앞둔 그는 그 '1등' 수경 앞에서 망설이지만 끝내 선택하지는 않는다. 뒤이은 수영장 시퀀스는 그의 시점으로 시작해서 그의 시점으로 끝이 난다. 그가 수영하는 장면을, 앞서 봤던 순위싸움의 긴장감을 드높이는 편집 논리에서 벗어나 기이하게 탐미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담아냈다. 또한 화면에는 그를 응원하는 가족이나 코치의 모습이 잡히지 않는다.  마치 이제야 비로소 그 순간이, 오롯이 그만의 황홀한 놀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시합을 마치고 나온 그는 등수를 확인하지 않고 물 밖으로 나온다. 한 아이가 그에게 묻는다. "형, 1등하면 기분이 어때요?" 그제야 준호는 전광판을 유심히 바라본다. 광수의 예언대로 그는 코치 없이 1등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준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는 샤워실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는 마대 자루들에 시선을 잠시 멈추고, 곧바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한다. 그 어디에서도 1등의 환희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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