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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김욱의 『아주 낯선 상식』
이휘현(2016-05-17 14:42:20)




지난 4월 13일 오후 6시, 대한민국 제 20대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흡―"하는 외마디 탄성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전혀 예기치 못한 선물을 하나 받은 듯, 나는 기분이 들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점점 드러나는 선거의 결과는 출구조사의 예상보다 더 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갈 즈음, 결국 나는 얼마 전 내 자신의 마음에 새겨두었던 금주(禁酒)의 맹약을 파하고 말았다. 알코올이라는 악마와 손을 잡을지언정, 이번 선거 결과가 안겨주는 여흥을 그냥 밋밋하게 넘기는 건 너무도 아쉬운 일 아닌가.
그러나 좋았던 기분도 만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이런저런 포털 사이트에 실린 누리꾼들의 총선 관련 댓글에 그만 기분이 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일베들의 글을 읽었느냐고? 천만의 말씀! 나는 진보입네 하며 포털 사이트에 여과 없이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어떤 사람들'에게 아주 기가 질려버리고 말았다!!
비교적 진보 개혁 성향의 누리꾼들이 많이 찾는다는 포털 사이트를 찾은 게 어쩌면 화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 포털 사이트의 총선 결과 보도기사에 달린 댓글의 상당수는 '호남의 선택'에 일종의 저주를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라도 땅 위로 진하게 번진 녹색을 두고 '호남 자민련'이라 비아냥거리는 누리꾼들이 있었고, 이참에 진보 개혁 진영에서 호남을 떼어버리자는 과격한 발언들도 난무했다.
그런데 차분히 한 번 따져보자. 이번에 드러난 호남의 표심이 그리도 추악한 것이었나?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마음 너머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영남패권주의'.
서남대학교에 재직 중인 김욱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정치평론집이 있다. 지난 해 말에 출간되었다. 그 즈음 강준만 교수, 고종석 씨가 일명 '추천 도서'로 이 책을 거론했는데, 그 분위기에 실려 나도 곧장 책을 구입해 읽어 보았다. 부분적으로는 다소 거칠고 감정적인 문장들이 섞여 있지만, 김욱 교수의 주장에는 분명 일리가 있었다. 대한민국 보수의 영역에서 노골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진보의 깊은 곳에서도 음험하게 웅크리고 있는 '영남패권주의'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할까?
정치는 세속 욕망의 용광로다. 정치행위라는 게 '민주'나 '자유' '평등'과 같은 아름다운 가치만을 구현하면서 지속될 수는 없다. 인간사회의 다양한 세속적 욕망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정치는 그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한국현대사에서 유독 호남은 수십 년 째 정치의 대의에 짓눌려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거세당해 왔다. '민주개혁 진영의 표밭'이라는 훈장과 더불어 '경제 낙후'가 발목을 잡는 불균질한 평행선을 달려왔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호남은 일종의 희생양을 '강요'받아온 셈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진보세력은 호남의 이러한 '전략적 (희생)투표'를 당연시 해 왔다. 이 '희생양 이론'을 토대로 작동하는 진보 진영의 '은밀한 영남패권주의'를 김욱 교수는 지난 십 수 년 간 부지런히 비판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할 이야기는 참 많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이 짧은 지면에 담기는 불가능하다. 호남 표심의 결과에 다소 당혹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 주저 말고 일단 김욱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을 펴 보시라. 그 안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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