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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 | 연재 [백제기행]
감성과 예술로 물들려진 <동부창고>
(2016-06-16 14:36:21)




한 여름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쏟아지는 햇빛이 한낮 도심의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청주기행은 내심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왔던 일정이었다.
청주기행은 청주의 마을신문인 <청주마실>의 이재표 대표님이 안내를 해주셨다. 
<동부창고>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들. 허름했으나 그 위용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은 1946년 건립된 옛 청주연초제조창이 있던 곳으로 솔, 라일락, 장미 등 내수용 담배를 연간 100억 개비 이상 생산했던 곳이다. 해외 50여개 국으로 수출까지 하는 청주를 대표하는 대규모 산업체였다. 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지만 담배공장의 현대화 계획에 따라 1999년 폐창됐고, 2004년 가동이 최종 중단됐다.
<동부창고>는 7개 동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가 둘러본 34동과 35동은 5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돼 지난해 10월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치고 개관했다. 덕분에 나무로 된 뼈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정교하게 짜인 나무들은 지나온 세월을 무색하게 할 만큼 무척이나 견고해 보였다.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비둘기는 이곳 구조가 익숙한지 제집 드나들 듯 노닐었다.
34동은 전시·공연·특강 등 협업프로젝트 및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커뮤티니 활동의 거점으로 꾸며진 곳이다. 콘서트와 공연, 각종 행사 등의 공간으로 이용 가능한 다목적홀은 고품격 공연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요리를 할 수 있는 푸드랩 공간도 눈에 띈다. 커피를 배울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도 갖췄다. 소규모 세미나와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랩실과 다양한 전시가 가능한 갤러리, 청주에서 유일한 목공예실도 마련됐다.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동아리 등 시민 누구에게나 개방된 35동은 현재 대관 업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수도권과 달리 공연연습이나 리허설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던 지역 예술인들에게 이곳은 더없이 고마운 공간이다.
모두들 공간 대여비를 듣고 깜짝 놀랐다. 부담 없는 가격에 최신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공간의 문턱을 낮춰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현재 38동 안에는 옛 연초제조창 운영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이 보관돼 있다. 당시의 근로현장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노동의 현장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공간들을 살펴보고, 그 공간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동부창고>. 문득 전주의 연초제조창이 생각났다. 1921년 문을 연 전주연초제조창. 이후 80여년간 전주의 도심 한 가운데를 지켰지만 10년 전 철거가 되어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금은 점차 사라지는 추억이 돼버렸다.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 일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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