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6.11 | 문화현장 [문화현장]
새 시대를 겨누는 화살, 이성계와 전라북도립국악원
전라북도립국악원 개원 30주년 기념 창극 "이성계, 해를 쏘다."
한성원(2016-11-17 14:12:25)




"예향", 사전은 이를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고을'이라고 말한다. 전라북도를 표현하는 단어 중 이만큼 잘 어울리는 수식어도 드물 것이다.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명인들이 쏟아졌고, 특히나 소리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만큼 조통달, 안숙선과 같은 명창이 예향 전북의 명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전북 국악의 맥이 이어진 데에는 전라북도립국악원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국악연수 및 수준 높은 공연으로 도내 국악인구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 전라북도립국악원 개원 3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도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이성계, 해를 쏘다."라는 창극 작품으로 보은의 막을 올렸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10월 15-16일에 걸쳐 진행된 창극 "이성계, 해를 쏘다."는 전라북도립국악원 안팎의 대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든 작품으로 고려 말, 쓰러져가는 나라를 앞에 두고 전주에 본관을 둔 이성계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하기까지의 과정 속 역경과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발걸음을 모아 객석을 가득 메워주었다. 관객 중에는 문화판에서 종종 기웃거리며 알게 된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그만큼 전북 문화예술계와 도민들이 본 작품과 국악원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 입장이 마무리 되고 관현악단의 힘찬 연주가 울려 퍼지며 작품의 주인공 이성계가 대업을 향한 활시위를 당길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작품은 노부가 된 이성계가 늘그막에 얻은 딸 며치에게 평범한 남자를 만나 시집가라는 독백 같은 편지로 시작한다. 한 나라의 창업주가 된 사내가 금지옥엽 같은 딸이 왜 평범한 사내에게 시집가길 바랐을까?
국운이 기울어버린 고려 말, 지방의 무신세력으로 자리 잡은 이성계는 금척(金尺)의 꿈을 꾼다. 꿈이란 것이 본래 그 사람의 상황과 고민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대업에 대한 주변의 기대와 고려의 신하된 도리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꿈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날로 기승을 부리는 왜구의 노략질로 국토와 백성들이 유린당하는 처참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 이성계의 고뇌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마침내 사병 부대인 가별치를 일으켜 아지발도의 왜구를 토벌하고 대업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굳히게 된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와 이성계의 건국을 지지하는 정도전, 아들 방원의 날 선 논쟁을 지켜보며 이성계는 또 다시 고민한다. 그리고 이성계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게 된 계기가 다가온다. 이성계를 견제한 최영이 그를 요동정벌을 구실로 국경지역으로 보낸 것이다. 쏟아지는 비로 인해 병사들은 불어난 압록강을 건너지도 못한 채 역병으로 죽어갔다. 그 와중에 우왕은 대동강에 배를 띠우고 뱃놀이에 여념이 없다. 그럼에도 진군하라는 조정의 명령에 이성계는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회군을 하게 된다.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 세력의 중심인물인 이방원과 정도전은 최영을 비롯한 조정의 권신들을 처단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조차 새 나라의 기틀로 삼고자 했던 이성계는 이방원, 정도전과 대립각을 세운다. 이를 참다못한 이방원은 자신의 뜻대로 정몽주, 변안렬, 최영 등을 차례로 처형한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함께 지탱해오던 고려의 마지막 신하들이 죽어가자 이성계는 오열한다.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고 이상향으로 나아가기위해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한 이성계의 안타까움과 인간적인 슬픔이 느껴졌다. 이성계는 마침내 조선이라는 새 나라의 임금으로 즉위한다. 문무백관의 축하 속에 새 시대를 향한 화살이 마침내 과녁에 명중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건국의 일등공신이지만 세자 책봉에서 배제된 이방원이 이에 앙심을 품고 자신을 반대한 정도전과 동생인 세자 방석을 죽인다. 이성계는 다시 한 번 절규한다. 건국이라는 역사에 남을 대업을 이루었지만 자식을 잃고 한때의 동료를 죽였다. 역성혁명 역시 오롯이 자신의 의지만은 아니었다. 지역의 커다란 무인세력으로 기반을 잡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이들과 왜구의 침탈로부터 국토를 수호하며 얻은 백성들의 기대로 인해 등 떠밀리듯 권좌에 오른 감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이성계의 어깨가 몹시도 외로워보였다.

 전라북도립국악원의 개원 30주년 기념 창극 "이성계, 활을 쏘다"는 딸 며치에게 쓴 편지를 재등장시키고 큰 짐을 짊어져야만 했던 이성계의 회한을 다시 짚으며 끝을 맺는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보았던 이성계라는 인물의 영웅호걸의 기질만이 아닌 건국이라는 시대적 부름의 앞에 선 대업의 주자로서 책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신하라는 역할 사이에서 겪는 갈등, 그리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인간적인 고뇌들까지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전라북도립국악원은 왜 개원 30주년 기념작의 주인공으로 이성계를 택했을까.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의 역사는 500년을 지나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신으로 남았다. 그리고 30년 전, 전라북도 국악의 기반을 다지고 도민들의 문화향유에 이바지하고자 국악원이 설립되면서 마주했을 도민들의 기대와 이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 속에 국악원은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제 또 다른 30년을 넘어 백년대계를 바라보는 전라북도립국악원은 이번 작품을 통해 도민들의 정신에 우리의 예술이 스며들길 희망하며 당긴 활시위는 아니었을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