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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 | 문화현장 [문화현장]
예술은 ‘동사’여야 한다
임옥상 화백 초청특강 | 11월 21일 | 전북대학교 인문대 교수회의실
임주아 기자(2013-12-09 17:13:56)

“지난 토요일 모 신문에 났던 그림입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특별 전시를 하는데, 청와대에서 여섯 점의 작품을 떼라고 해서 뗐다더군요. 그 전시를 기획한 서울대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중 두 점은 외압으로 인해서 그리 됐다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더라고요. 그중에 내 그림이 포함 돼 있었습니다. 이 그림이 사람들에게 매스꺼움을 불러일으키거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나요? 굉장히 경쾌하게 철조망을 뛰어넘는 그림인데, 이걸 왜…….“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특별 전시에서 <하나됨을 위하여>라는 작품이 사회 참여적 성향이라는 이유로 제외됐다는 의혹이제기돼 논란의 중심에 선 서양화가 임옥상 화백(63)이 21일 오후 4시 전북대 인문대 교수회의실에서 ‘지구를 식히는 상상력’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한스타일연구센터, 호남사회연구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북지회의 공동주최로 마련한 특강은 100여명이 자리 한가운데 이종민 전북대 교수의 사회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권력은 상처받지 않는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가장 피해 받는 사람은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이다. 전시를 기획했던 교수나, 현대미술관장이나 책임 추궁을 당해서 개인적인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언론엔 외압설을 이야기한 적 없다고 말하더라. 이해할 만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을 당하면서 1980년과 2013년 사이가 통째로 다 사라져버린 느낌이 들었다며 “권력은 상처받지 않는다. 다만 무너질 뿐”이라 말했다.
임 화백은 이 그림을 계기와 배경에 대해 자세히 들려줬다. 89년, 진달래 꽃 필 무렵 문익환 목사가 평양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랍고 감동적인 마음에 김용택 시인과 회문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봤다. 김 시인에게 문익환 목사에 대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더니 김시인이 진달래를 그려달라며 “진달래는 말이여. 음지, 응달에서만 핀다!” 했다고 한다. 불행하게 죽어간 영혼들의 울분과 슬픔이 이렇게 화사한 꽃을 필 수밖에 없다는, 시적 상상력이 깃든 그의 말을 듣고 꼭 그려야겠다 마음먹었다고 했다. 임 화백은 “당국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늘 관심을 가져줬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매향리 폭탄물로 작품 만들기도
그는 대표 작품들을 설명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국은 프랑스에게 자유여신상을 선물했는데, 한국에는 기지를 내놓으라 하고, 관리비도 내라고 한다”며 2000년도에 매향리에 떨어진 폭탄으로 만든 상징조형물을 스크린에 띄웠다. 매향리 잔해물은 그의 손에서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폭탄 파편과 철판, 유리로 만든 작품 ‘차 한잔 합시다’는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카페 테이블로 쓰여지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은 그를 행동하는 예술가로 만들었고, 행동은 곧 환경에 대한 긍정적 관심으로 흘렀다.
그는 81년부터 91년까지 전주대 교수를 지내며 이름을 많이 알리게 됐다며 “전주가 나를 키웠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김장파동이 있을 때 김제평야를 바라보고 무 그림을 그리면서 처음 공공미술에 눈뜨기 시작했다는 그는 대표작 ‘대지-어머니’ ‘일어서는 땅’ 등을 보여주며 열띤 강의를 이어갔다. 그는 “자본논리에 좌우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검열하고 관리해야 한다”면서 “왜 시대의 작가는 늘 엇박자인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미술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벼가 자란다면 믿겠는가. 벼 상자들 한가운데 ‘지구를 담는 그릇’이라는 설치작품이 눈에 띈다. 반원 모양으로 짜여진 철제 틀 사이사이에 토종 오이, 조롱박, 애호박, 수세미, 고구마 등을 심은 화분이 매달려 있다. 광장 바로 옆 세종문화회관의 중앙계단에는 벼 화분 외에도 전쟁을 상징하는 폐폭탄 조형물에 감자가 심어져 있다. 전쟁의 아픔을 만물의 근원인 농사로 치유한다는 의미다. 그의 작품을 보면 엔지오 활동가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 아크릴판과 철판을 이용해 한강에서 끌어올린 쓰레기를 담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가 하면, 페트병을 이어 ‘페트병 물방울’을 만든 태백시의 상징조형물이나 송파구청의 ‘희망트리’ 등도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시간에서는 밀양 송전탑, 설치 공공 미술, 주민 커뮤니티에 관한 이야기 등을 심도있게 주고받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안정된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일자리 창출이란 말에 현혹되지 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열정을 쏟으라. 봉사하고 나누는 일에 미래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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