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3.12 | 문화현장 [문화현장]
탈핵, 연대의 다른 이름
제11차 아시아-태평양NGO 환경회의 | 11월 1~4일 | 전주 전통문화관 한벽극장
임주아 기자(2013-12-09 17:14:26)

한국은 세계 5위 원전 보유국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원전 밀집도는 1위다. 원전산업은 그 자체로 부패와 비리집단이 되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2012년 9월, 이명박 정부는 삼척과 영덕 지역에 신규원전 건설을 공표했다. 이로써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후 세계 최초로 원전 건설을 선포한 나라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전 수출국’이 되겠노라며 신규 핵발전소 대폭 확대에 관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구성 중에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후쿠시마 다음 차례는 한국’이란 세계의 경고가 무색하다.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의제21에서 주관한 제 11차 아시아-태평양 NGO 환경회의가 ‘탈핵’을 주제로 전통문화관 한벽극장에서 나흘간 열렸다. 이번 회의는 국내에서 지난 92년 서울에서 2차 대회를 개최한 이후 두 번째로 개최된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NGO환경회의는 민간 국제회의로 1991년 태국 방콕에서 처음 개최해 일본, 싱가폴, 인도, 대만, 네팔,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호주 등 아시아 9개국의 환경활동가와 전문가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전주대회에서는 기조강연과 탈핵 특별세션, 일반세션과 특별좌담회 등 7개부문 50여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 대표 요시노 히노유키씨(일본)가 방사능 유출 상태 모니터링 결과를 담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피해주민 대책’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이어 문규현 신부가 ‘원자력발전과 생태 민주주의’란 주제로 기조강연을 열었다. 문 신부는 “인류는 후쿠시마 원정 대재앙을 통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원전 중독 국가인 우리나라의 위험수치는 점점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단호한 결단과 분명한 선택, 더 큰 용기가 절실하다”며 아시아 엔지오 활동가들이 실천하고 연대해줄 것을 주문했다.
특별세션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영향은 물론 호주의 우라늄광산, 대만 핵폐기물 처리 과정의 교훈, 후쿠시마 사고가 주변 국가에 미치는 영향, 밀양 송전탑과 전력수급까지 원자력발전소를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심층 진단했다. 이 자리에는 한국, 일본, 대만, 호주의 전문가들과 후쿠시마 주민들이 함께했다. 일반세션에서는 ‘석면 없는 아시아’, ‘생물다양성’, ‘군 기지 환경오염’, ‘습지와 강, 댐’, ‘유해화학물질’ 등 5개 부문과 ‘지방선거와 환경운동’이라는 주제의 특별 좌담회로 구성됐다.


인터뷰 - 후쿠시마현에 남아 원전 주민 돕는 요시노 히노유키

“남은 선택지는 적지만…”

재난구호센터이자 비영리단체 ‘샬롬’을 운영하고,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후쿠시마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NGO 활동가 요시노 히노유키씨. 후쿠시마현에서 거주하며 지속적으로 방사능 측정을 주도하고 있는 그는, 이번 환경회의 기조강연자로 초청돼 일주일동안 행사일정을 함께했다. 그에게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벌써 2년이 넘었네요. 2011년 3월 11일이었죠. 지진 직후 바로 정전이 일어났어요. TV를 볼 수 없어 핵발전소 사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가족과 피난소에 대피하러 갔는데, 피난소마저 지진 때문에 무너져있었어요. 다음 날이 되어서야 지인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사흘이 지난 15일, 딸이 밖에 나가고 싶다고 보채더군요. 하는 수 없이 5분 정도 공원에서 머물렀는데, 알고 보니 그날은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은 날이었습니다. 0.05 마이크로 시벨트였어요. 다행히 그 시간은 피했지만, 눈앞이 아찔해졌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더군요.”


아이와 주민들을 위해 결심하다
3월 20일, 아내와 네 살 난 딸을 피난 보내고 그는 홀로 후쿠시마에 남았다.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주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일을 강구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결국 몇 달 뒤 10년 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NGO활동가가 됐다. 사람들은 후쿠시마를 왜 떠나지 않느냐고 의아해하지만 주민들은 정작 이곳을 쉽사리 떠나기 어렵다. 일은 간단하게 그만 둘 수 없고, 가족 중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거나 부모의 간호를 해야 하거나 아이가 피난을 거부하는 등 각자 나름대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곧바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복해 발표하고, 현의 지사는 “불요불급한 외출은 자제하면 좋다”는 설득력없는 말만 홍보해 주민들을 더 고립시켰다. 높은 방사선량 속에 많은 어린이들과 시민이 외출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요시노를 포함한 주민들은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결심하고 그들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집회를 통해 연결돼 4월 준비회의를 거쳐 5월 1일에 설립대회를 열었다. 250여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이후 보양팀, 피난팀 등 4팀으로 나누어 본격적인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피난가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접수 프로그램,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보양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노력했다. 가장 급한 것은 직접 방사능을 측정해 유치원장과 교사들에게 공공연히 알리는 일. 일반 공개를 하면 후쿠시마 네트워크 자체가 존폐위기를 맞을 수 있어 그들 협의체 내에서만 공유하고 있다. 다른 주민들이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하는 까닭이다.


부실 방사능 측정, 그것은 곧 죽음
요시노씨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일본정부와 후쿠시마 지방정부가 방사능을 부실 측정해 주민들에게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시에서 발표하는 방사능 지도는 가로·세로 500m의 광범위한 지역을 정사각형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습니다. 시에서 발표한 지도는 주민들의 생활을 반영하는 지도가 아닙니다. 측정기에 납 등을 넣어서 방사능 수치가 낮게 잡히도록 하고 있죠.” 그가 있는 단체 등이 주도해서 새롭게 방사능 계측을 한 결과, 5m의 짧은 간격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흙길과 포장길, 포장의 재료와 높이에 따라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후쿠시마시에 위치한 ‘키타센트럴 파크’에서는 시간당 0.201 마이크로시벨트가 검출된 지역을 기준점으로, 5m가 떨어진 곳에서는 시간당 0.412 마이크로시벨트, 10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는 0.539 마이크로시벨트가 측정됐다.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골목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걷고, 주택의 담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 양 가장자리는 측정 결과 골목길 가운데보다 약 2배 가까이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어린이들을 도로 가운데로 걸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
이렇게 구체적으로 방사능을 측정하는 까닭은, 생존 문제이기도 하지만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조금이라도 바깥공기를 쐬게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언론에 따르면 후쿠시마 핵참사 이후, 운동부족으로 인한 유아비만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의 비만률은 핵참사 이후 4.7%가 증가했고, 초등학교 3학년은 5.1%, 고등학교 3학년은 1.4% 증가했다. 이는 후쿠시마현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와 가정이 외부활동을 제한한 결과다. 그렇다고 방사능에 아이들을 그대로 노출시킬 수 없는 상황. 요시노씨 말에 따르면 2011년과 비교해 2012년도 초중등학생들의 외부 방사능검출량은 45.3%까지 증가했다. 이는 방과 후 체조훈련 등 일부 외부활동을 재개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후쿠시마 어린이들이 놓인 것이다.
그는 아침 9시 샬롬 사무실에 출근해 한 달에 한번 진행하는 보양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방사능 수치가 낮은 곳을 찾아다니고, 전문가와 함께 방사능 수치를측정하는 일이다. 타 시설과 논의도 하고, 자료집도 만들고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 이재민 지원법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에 촉구하는 역할도 도맡아 한다. 지자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시노씨는 “실내에선 어린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결국 후쿠시마 핵참사는 어린이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어린이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게 되겠죠.” 그는 후쿠시마는 많은 것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린이들의 창조력까지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며 우리들의 고통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후쿠시마 네트워크 활동가, 이제 두명 뿐…
아이와 함께 마음껏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자마자 쿄토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갈 계획이라 했다. 그래도 네트워크 대표로 마을과 마을 중심으로 보양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방사능 측정보고회도 참가하며 꾸준히 활동을 해 나갈 생각이다. 그에게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뭔지 물었다. “내가 그만 두면 네트워크의 활동은 더 이상 사라질 겁니다. 안타깝게도 후쿠시마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2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주도 하고, 또 많이 손을 놓았습니다. 단 한명 남은 사람이라도 힘을 성과를 내고 정부에 계속 촉구해야 합니다.”
그는 이번 환경회의에 대해 발표자들이 정작 후쿠시마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 생활 속 느낌에 대한 일은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사태를 재진단할 것이 아니라 대안과 실천방안을 깊게 논의하길 바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국의 NGO 활동가들과 핵문제에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후쿠시마 핵사고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한국 지자체에도 이런 심각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전국을 돌면서 탈핵에 대해 강의하고 후쿠시마 피해상황을 알리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외롭고 고독한 일, 그것이 작은 불씨가 되어 후쿠시마현을 잠잠 밝히고 있다.
“정말로 힘든 상황이지만 낯선 사람들의 선의와 따뜻함에 매일 격려 받고 있습니다. 피난 일로 홋카이도나 교토에 갈 때면 그곳 단체 사람들을 잡고 울었던 적이 몇 번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남은 선택지는 적지만 선택할 자유는 남아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