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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문화현장 [문화가]
놀이와 삶, 그 어울림의 한마당
전북도립국악원의 장터공연
손희정기자(2015-06-11 17:49:04)


 순창군 동계면, 장이 서던 3월 12일. 동계초등학교에는 동네 이장의 방송을 듣고 찾아온 6백여명의 면민들이 모여들었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뒤늦게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쫓아온 사람들, 오다가다 들른 사람 등 각각 사연(?)은 달랐지만 운동장은 넘쳐났다. 동계초등학교 교정에 둥그런 마당을 만들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둘러앉자 전북도립국악단의 전라도 풍물굿이 판을 연다. 판소리, 민요, 소고춤, 사물놀이, 미얄할미과장, 모듬북의 소리와 춤사위가 선보이자 흥에 들뜬 관객들은 끝내 무대로 뛰어 든다. 공연자의 해학과 풍자가 깊어갈수록 깊이 패였던 농민들의 근심이 가시고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얼씨구, 조~오타"라며 터져나온 추임새 또한 정겹다.

 전북도립국악원(원장 문치상)이 올해 처음으로 기획한 <장터(정자나무)공연>의 첫날 풍경이다.

 오랜만에 너무 즐거워서 배가 당긴다던 한 할머니 "20여년만에 처음으로 굿판을 구경하는 것 같다"며 마냥 상기된 기분을 감추지 못했고 장보러 나섰다가 시나는 소리가 들리길래 찾아왔더니 끝났더라는 아낙은 "쪼매만 더할 것이지"라며 아쉬워했다. 도릭국악원이 경제불황으로 힘들어진 농촌지역을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삶의 위안을 주고 도민에게 한발 더 다가서겠다는 전략은 이렇게 효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도립국악원은 도민이 모이는 것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국악공연, 함께 느끼고 즐기는 국악 한마당을 펼친다는 계획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모두 33명의 국악단이 참여해 1백여분동안 다채로운 국악행사를 벌인 이 공연은 우리 놀이문화의 원형인 마당을 무대로 삼아 공연자와 관람자가 일체가 되는 한판 흥겨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점차 고급화되어가는 국악공연의 틀을 벗고 국악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한다는 의지를 엿볼수 있어 국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규모만 큰 무대에서 엄숙하게 열려왔던 국악무대는 지역주민들에게 외면당해 온 것이 사실. 국악인들은 공연때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애가 탔고,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 질수록 전북국악의 소외는 심화돼 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전북국악의 전망을 밝게 해주는 청사진으로서 기대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는, 그래서 민간단체들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새로운 방식의 무대공연을 관이 먼저 나서준 것도 바람직하다.

 도립국악원이 <장터(정자나무)공연>은 매달 4회, 장이 서는 지역을 순회하며 열리게 된다. 오는 4월 9일에 흥덕과 부안에서, 10일에는 무주와 임실에서 또 한차례의 푸진 국악 한마당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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