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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 기획 [전주, 사대문 안 풍경 ④]
도시와 함께 흐르는 영화의 어제와 오늘
고사동 영화의거리
박진희(2016-10-17 09:25:49)




전주 영화의 거리를 여행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거리를 온전히 느끼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글은 2016년 현재 전주 영화의 거리를 스케치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빨리 지나가면 10분 만에도 통과하게 되는 영화의 거리의 면면에 좀 더 시선을 잡아둘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영화의 거리가 된 고사동 극장가
전주국제영화제가 개최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로 고사동 극장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의 거리'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전주시는 2000년 초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고사동 오거리에 있는 옛 4대문 중 북문터 부근부터 시작해 시내 극장가를 끼고 돌아 당시 새하나백화점에 이르는 700m 가량의 거리를 영화의 거리로 조성하기로 하고 붉은 아스콘 포장을 이용해 필름 모양으로 도로를 포장한다든가 도로 중앙에 전주국제영화제 로고를 새겨 넣는다든가 하는 계획을 실행시켰다. 독특한 모양의 가로등을 만든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영화의 거리는 '걷고싶은 거리'나 '청소년거리' 등 주변 특화거리에 비해 별다른 특색이 없었고 더욱이 영화제가 끝나기만 하면 다시 평소의 건조하고 표정 없는 거리환경 - 대표적인 것이 영화제 기간에만 잠깐 운영되고 비 영화제 기간에는 흉물스러운 건축물에 다름없었던 고가의 루미나리에였다 - 으로 돌아가 버리기 일쑤였던, 여전히 평범한 거리였다.
영화의 거리가 본격적으로 지금의 형태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이후다. 전주시 뿐만 아니라 고사동 극장가 근처 상가인연합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의 힘이 작용-반작용한 결과로서 영화의 거리는 조금씩 변해갔다. 전주국제영화제 기간뿐 아니라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할 수 있는 가변적 성격의 무대공간이 거리에 만들어졌고, 루미나리에를 대체할 수 있는 구조물 또한 들어섰다. 또한 양방통행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도로 교통 체계가 일방통행 체계로 변경됨으로써 시민들의 보행권이 확보되었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와 소규모 카페 등의 상점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영화의 거리에 보다 더 많은 유동인구가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거리는 요동치고 있다. 여전히 영화의 거리의 존재감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의존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까닭에 영화의 거리의 분위기나 유동인구수가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확실한 것은 영화의 거리가 안정적인 존재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아직도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영화의 거리'를 잔뜩 머금은 이 거리
현재 영화의 거리는 오거리 문화광장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K모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 앞에는 이곳이 예전에 전주부성의 4대문 중 하나였던 북문이 자리하고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빗돌이 하나 서있고, 문화광장에는 '프레임의 자유'라고 하는 조형물이 있다. '프레임의 자유'는 영화의 거리를 향해 있는 카메라와 촬영감독, 녹음 담당 스태프로 이뤄져 있다. 뒤에 서 있는 녹음 담당 스태프가 힘껏 팔을 뻗어 마이크를 잡고 동시녹음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현재 막 카메라가 돌고 있는 것 같다. '프레임의 자유'라는 제목과 어우러져 막 촬영이 시작되는 순간의 짜릿함과 기대감이 전해져온다.
이 외에도 영화의 거리에는 유명 영화인 및 행정가의 핸드 프린팅과 페이스 프린팅을 비롯해 영화 장면을 응용한 캐릭터 의자 등 총 85점의 조형물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로터리를 돌면 철물점과 양복점 등의 오래된 느낌의 가게와 최신식 아웃도어 용품점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고, 그 가운데 영화의 거리의 시작을 알리는 "JIFF 영화의 거리"라는 현판을 매단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독특한 문양의 구조물은 오거리 문화광장부터 전주시네마타운 극장에 이르는 영화의 거리 700m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이 건축물은 단순히 이전의 루미나리에를 대체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그 이전과는 '다른' 영화의 거리를 나타내는, 영화의 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건축물은 한국공공디자인지원재단과 국제공공디자인대상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하고 국제공공디자인대상 아시아 조직위원회 등에서 공동 개최한 2010~2011 국제공공디자인대상(International Public Design Award) 공모전 공공건축물분야에서 최우수상(junior Grand Prix)을 수상했다. 평상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장소임과 동시에 축제 때 다양한 이벤트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성격을 갖춘 다면적 공간이라는 평가와 행정기관 주도의 사업추진 형태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도시를 가꾸고 만드는데 참여하는 창구를 만들었다는 평가였다. 영화의 거리 조성을 포함한 전주시의 이른바 아트폴리스(Art Polis) 정책은 2011년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제13회 대한민국디자인대상에서 지방자치단체부문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이은 수상이 영화의 거리의 활성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수상 실적이 확실히 대내외적으로 전주 영화의 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알리는 하나의 촉매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구조물 안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길 양쪽으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메가박스 전주점과 CGV 전주고사점을 만나볼 수 있다. 두 영화관은 전주국제영화제의 대표적인 두 얼굴이다. 무엇보다 이 두 극장의 인접한 위치와 도심으로부터의 접근 용이성은 전주국제영화제가 시작될 수 있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 두 극장 모두 수많은 영화들이 동시에 상영될 수 있는 단독 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 극장이면서 극장 앞은 관객에게 쉼터를 제공하거나 소규모 공연을 열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을 갖추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초기, 영화제에 놀러온 관객들이 상영과 상영 사이 쉬는 시간에 메가박스 앞이나 CGV 앞의 공터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던 모습들은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느낌을 주곤 했다. 그러한 젊고 자유로운 '휴식'의 장면이야말로 전주국제영화제의 새로운 존재감을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식시킨 대표적인 시청각 이미지였을 것이다.
CGV 전주고사점의 끄트머리로 가면 전주시네마타운 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 전주시네마타운 본관(1관, 2관, 3관)과 신관(5관, 6관, 7관, 8관)으로 나눠서 운영되던 전주시네마타운은 지금은 본관이 용도를 달리하여 신관만이 영화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주시네마타운 앞 작은 공간에는 영화감독 다레잔 오마르바예프, 에릭 쿠, 펜엑 라타나루앙, 영화배우 정경호, 김아중 등의 핸드프린팅 조형물이 있고, 이 공간 역시 메가박스나 CGV 출입문 앞에 있는 공터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다 쉬러 나온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휴게소로 사용되곤 했다. 초기의 전주국제영화제를 떠올려보면 CGV나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다가 나와서 동진주차장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구경하거나 기념품을 사고, 그 길 끝에서 잠시 꽈배기를 사먹으며 원기를 충전하다가 전주시네마타운에 들어가서 35mm 필름으로 틀어주는 영화를 감상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또, 전주시네마타운에서 내려다보면 영화제 관련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 동진주차장을 한 눈에 조망하는 것도 가능했었다. 지금도 이 동선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영장이 전주시내 곳곳으로 확대되는 앞으로도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이렇게 영화의 거리에서만 온전히 시간을 보내면서 만족할 만한 영화제를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대한극장을 전신으로 두고 있는 메가박스 전주점, 명보극장과 코리아극장, 뉴코리아극장을 전신으로 두고 있는 전주시네마타운까지, 아쉽게도 고사동 극장가의 흔적을 품고 있는 극장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마저도 전주국제영화제의 변화에 맞춰 그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추세인 것이다.





새로운 맵핑을 준비하다
하지만 이곳이 영화의 거리로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영화의 거리 구간이었던 오거리에서 전주시네마타운까지의 구간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영화의 거리 맵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개관한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과 2015년 개관한 전주영화도서관이 바로 그 새로운 지도를 완성하는 주요 포인트가 되고 있다.
2008년 전주시는 25억원을 투입해 구 전주보건소 자리에 98석 규모의 디지털독립영화관을 건립하였다.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추진된 독립영화 전용관일 뿐 아니라 영화촬영 지원시설 및 후반제작 편집시설까지 갖춘 멀티공간으로 기획되었다. 전주보건소가 있기 이전 1970년대 이곳에는 지금은 사라진 전주극장이라는 개봉관이 있었고, 한국전쟁의 영향을 피해 전주에 내려와 있던 허장강, 김진규, 박노식, 김희갑, 도금봉 등 당대 영화계 스타들이 자주 모였던 고향다방, 우인다방, 왕궁다방이 자리해 있던 곳이라는 기록도 있다. 여러모로 영화와 관련해 유서 깊은 장소인 셈이다.

현재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기존의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에 포함되어 있던 아카이브 시스템 '지프테크(JIFF THEQUE)'의 기능과 독립영화상영관으로서의 기능, 영화 제작 기능까지 두루 갖춘 멀티플한 공간이다. 1층에 지프테크가 확장한 자료열람실과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2층에는 영화 후반작업 관련 업체들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3층은 전주영화제작소가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색보정실, 영상 편집실, 영상교육실, 장비 보관실 등 영화 제작 관련 장비가 지원되고 있으며 4층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지역에서 제작된 영화를 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이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 제작 혹은 수입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셀렉션한 상영 프로그램도 알차지만 1층 자료열람실이야말로 영화의 거리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감동이 365일 지속되는 곳"이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의 자료열람실은 기본적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들을 DVD의 형태로 열람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가 중심이다. 2000년 개최된 1회부터 2015년 개최된 16회까지 상영된 작품 중 영화의 판권자가 아카이브 활용에 동의한 작품에 한해서만 열람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551분의 러닝타임에 달하는 중국 감독 왕빙의 다큐멘터리 <철서구>(2003) 같은 작품 - 각종 전세계 조사에서 "그 해의 영화"로 선정된 바 있다 - 이 아카이빙 되어 있으며 소마이 신지 회고전 작품들, 리트윅 가탁 회고전 작품들, 쿠바영화 특별전에서 상영된 작품들을 포함하여 전세계 동시대 독립영화들, 당대 최신 예술영화들이 즐비하다. 웬만해선 구해서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모두 퀄리티 높은 한글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알려져 있다시피 대안, 독립, 디지털 영화를 표방하는 중급규모의 영화제로 프로그래밍에 있어서는 국내외 영화인들로부터 가장 인정받는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해 영화제 써킷(circuit)을 도는 화제작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이고 급진적이며 아름다운 영화들을 셀렉션했던 전주국제영화제의 지난 16년이 자료열람실에 (전부 다는 아니지만)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자료열람실에는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는 독립․예술영화, 한국고전영화의 DVD 역시 감상할 수 있게 서비스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전주국제영화제 관련 책자, 영화 관련 정기간행물, 영화 잡지, 영화관련 서적 등이 비치되어 있어 원하는 대로 영화를 볼 수 있고, 영화에 대한 지식을 즐길 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아카이빙 작품들은 무료로 열람 가능하며, 이 외의 자료는 하루 1,000원으로 하루 종일 이용 가능하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2009년 개관 이후 이용객이 꾸준히 늘어 2014년 연말에는 유료 관객이 무려 49% 증가했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전주영화도서관은 2015년 1월 개관한 전주영화호텔 2층에 마련된 부대시설로, 널찍하고 쾌적한 공간에 꽤 많은 양의 영화 관련 국내외 서적과 국내외 잡지, 논문, DVD 자료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영화학교에서나 다룰 법한 프랑스와 미국, 일본의 주요 영화 서적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지금은 사라진 한국의 영화 잡지 《씨네버스》, 《키노》, 《스크린》, 《프리미어》와 일본의 《뤼미에르》나 《비디오살롱》, 《키네마준보》 등의 과월호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호텔 측에서 구입하여 분류해놓은 국내 영화 서적들 외에 대부분의 자료는 전북지역 영화인들의 자료 기부로 이뤄진 곳이라 전문도서관만큼의 자료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오히려 파편처럼 흩어진 자료들을 보고 성좌를 연결하듯 느슨하게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 관련 자료 외에도 아리플렉스(Arriflex)나 35mm 필름 영사기 토키와(Tokiwa) 영사기가 비치되어 있어 그 실물을 구경할 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아니어도 좋다
가끔 영화의 거리의 존폐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메인상영장이 CGV 전주효자점으로 이동했을 때 그 위기의식은 절정에 달하였다. 이것이 때 이른 과장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지금까지 '영화의 거리'라는 공간이 보여준 불안정한 속성 때문이다. 당장 어떤 것이 사라지거나 바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영화의 거리의 정체성이 그 어떤 형태로도 안정적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혹자들은 역사적으로 <끊어진 항로>(감독 이만흥, 1948), <성벽을 뚫고>(감독 한형모, 1949), <애정산맥>(감독 이만흥, 1953), <아리랑>(한미합작영화, 1953), <피아골>(감독 이강천, 1955), <선화공주>(감독 최성관, 1957) 등의 영화가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촬영된 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전주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치러지기 이전부터 영화의 도시였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실질적으로 영화의 도시 전주를 내세우기 위한 많은 요소들 즉, 영화 촬영 로케이션으로서의 전주라든가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영화제들의 개최라든가 하는 것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그 존재감이 큰 (앞으로도 커야할) 부분은 역시 영화의 거리가 아닐까 한다. 앞의 두 요소에 비해 비 영화인, 혹은 일반인의 유입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영화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영화의 거리는 전주국제영화제의 변화의 의해 많은 부분 좌우되는, 마치 전주국제영화제의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가장 그 존재성이 커지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이 아니어도 충분히 누군가가 찾아올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전주국제영화제에의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으로 존재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전략들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기존의 영화의 거리가 상영관 즉 개봉관 중심이라면 새로이 확장된 영화의 거리는 마치 재개봉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카이브 작품과 데이터베이스 제공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 공간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러한 공간성을 잘 활용하여 전주가 진정한 영화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영화의 거리가 확실한 랜드마크가 되어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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