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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 기획 [광장에 서다]
민심의 축제, 광장이 만드는 역사
이재규(2016-12-16 16:03:49)




격변의 시간이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정황을 따라가자니 숨이 찰 지경이다. 국민 모두가 시사해설가, 정치비평가가 되어간다. 말이 말을 낳고, 오늘의 광경이 내일의 광장을 더 넓게 확장해간다. 권부 여러 곳에서 이뤄진 어처구니 없는 국정농단의 막후 드라마를 쫓다보니 우리 헌법 절차,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과 정당 정치권의 권력관계와 요직을 차고앉은 인물들의 속살, 감춰져 있던 곳곳의 이권사업, 심지어 입시제도와 대학운영의 헛점, 문화 체육계의 비사와 권력 현상, 담합까지 국민 모두가 모든 것을 알게 되어버렸다. 악취를 풍기는 이것들이 모두 한덩어리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걸 한눈에 보아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한두 방울 누수처럼 흘러나온 줄 알았더니 어느새 물살을 이루고 물살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마침내 민심의 이반이 격랑이 되었다. 참으로 여러 일이 얽히고 설키며 하나로 모아졌다. 누구는 이것을 권력집단 내의 이반과 또다른 음모로 보지만, '태블릿 피씨'의 돌연한 등장처럼 설령 그것이 시나리오에 의한 도발이었다 해도 이후에 이루어진 점층과 반전, 재반전의 드라마는 거리에 쏟아져 나온 국민의 힘이 만들어낸 것임이 틀림없다.

이제 광장은 한국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11월 12일 백만 명에 이어 11월 26일에는 이백 만 명을 훌쩍 넘겼다. 조직된 사회단체와 깃발을 넘어서 수많은 일반시민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곳곳에서 집회와 거리공연이 벌어진다. 중학생들이 거리에서 연설을 한다. 집회와 시위라기 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인증샷을 찍고 중계방송을 하는 참여의 현장이다. 시민들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우리 역사를 다시 쓰는 현장에 함께 하는 일은 참으로 가슴을 벅차게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열패감에 젖어있던 많은 사람들이 가장 큰 해방감을 느꼈 을 것이다. 풍자와 해학이 살아났다. 박근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은 박근혜의 자질과 내면을 익히 알고있던 사람에게는 일종의 기대 같은 것이기도 했는데 마침내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광장의 힘에 고무받아 평화투쟁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주장이 일부 선두에서 나왔으나 압도적 대중의 열기와 정서에 의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광장의 군중 그 소용돌이가 갖는 자체 정화의 힘, 변화의 힘이다. 80년 봄, 87년 6월항쟁, 90년대 초와 2002, 2009년 광장을 거치며 누적된 집단적 지혜이다. 사회과학에 밝은 전위적인 운동세력에 의해 지도된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땀과 눈물, 몸의 논리로 배운 것들이다. 투쟁의 수위라는 것이 꼭 선명한 대치선이 눈에 보여야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화염병이 터져야 치열한 싸움이고 평화에 얽매이는 것은 도덕적 굴레라고 하는 주장도 어쩌면 주관적인 급진성에 일면적 관찰일 뿐이다.
'미스 박'이란 노래가 여혐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불거진 것은 의미가 있다. 이번 촛불을 통해서 평등집회란 개념이 자연스럽게 공유된 것은 민주주의가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매우 큰 전진이다. 2016년의 촛불이 박근혜 권력의 교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권력현상에 대한 이의 제기와 거부투쟁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집회의 양상도 뚜렷하게 달라졌다. 야권정당과 시민세력을 아우르는 구심체가 전면에 드러나는 대신 촛불과 카메라를 든 개인들이 유쾌하게 시위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 수십만 개인방송국이 떴다. .하나의 중심으로만 모든 것을 대체하지 말고 작은 숲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시민들은 스스로의 지혜로 실천해가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민낯이 드러나다

우리의 평범한 상상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사실들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권력의 신화가 붕괴되어 간다. 특권과 부를 가진 자들이 평범한 우리들보다 사실은 훨씬 저열하고 천박하다는 것이 밝혀지며 쾌감이 찾아온다. 그들에게 굴신할 때 굽었던 등이 펴지는 순간이다. 개돼지 발언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했던가. 맨처음에는 일방적인 대학 개편에 맞서 싸우는 학내 이슈로 시작되었으나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온갖 특혜가 드러나면서 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권력 붕괴의 한 진앙지가 되어버린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 청와대 수석들의 오만방자한 행각,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최순실 일가와 부역자들의 민낯이 겹치며 폭로되었다. 문화 스포츠 영역에서의 갑질은 기존의 기획사나 재벌과 얽힌 성 스캔들을 넘어 우리사회 최고 정점의 기획사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일러주었다. 이 기괴한 일들의 연속, 심지어 약 중독, 영혼의 조종까지 거론되는 끝판왕 막장드라마에서 우리는 영혼을 붙들려버린 박근혜야말로 해방 이후 우리 사회 적폐의 상징임을 알게 된다.

정유라를 통해서 학벌사회, 그 상위 사다리에 진입하기 위한 온갖 술수들이 밝혀졌다. 특히 상류층들이 동원하는 특례와 우회 상장 전략의 실체들이 드러났다. 중고생혁명을 외치며 거리에 나선 10대들의 항변은 이번 사태 이후에도 연쇄 폭발하며 한국사회 교육시스템의 근본적 수술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재벌과 권력의 결탁, 추악한 뒷거래의 실상이 폭로되면서 70년대 관치경제를 재현하려고 박근혜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하는 게 드러났다. 백남기 농민의 사인 규명을 놓고 벌어진 서울대병원의 진단서 논란, 여러 교수가 동원된 이대의 권력 굴종, 삼성의 자진 상납 등은 모두 관련자와 대학기업, 자본이 특혜를 대가로 노린 합작극이다. 최순실이 여러 곳에서 노린 개발, 납품, 투기이익들은 이 사회가 통째로 투기사회이며 평창동계올림픽 같은 국가적 이벤트가 실상은 누구의 잔치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세월호에서 확인한 것처럼 안전을 책임지고 구조를 지휘할 상층의 도덕적 해이와 무능력은 너무 충격적인 모습이어서 말문을 이어가기조차 어렵다. 남북관계, 사드배치를 비롯한 대외정책의 극단적 선택들은 최순실 이후에서야 비로소 퍼즐이 맞춰진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대목이다.

역설적으로 다행인 것은 박근혜가 빠른 정치적 수습의 길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염치를 알고 일말의 이성을 회복하여 조기에 사퇴했더라면 이 많은 비밀이 자칫 정치적 타협의 길에 묻힐 뻔 했다. 사필귀정이 딱 들어맞는 말이 되었다. 박근혜를 통해서 오래 한국사회를 떠돈 박정희의 유령, 개발독재체제가 종식되는 자업자득, 인과응보의 결과가 빚어진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역사의 귀결처럼 보인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이 어떤 기반에 서 있으며 그를 부정하고자 할 때 어떤 절차적 정당성을 거쳐야 하는가를 하나하나 따져보고 점검할 기회를 가졌다. 그야말로 국민적 교양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것은 정치권만의 개헌 논쟁보다 훨씬 중대한 진전이다. 헌법을 따져 읽는 핵심은 권력이 어디에서 원천하며 그 구성 내에서 있을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하는 절차가 진정한 민주 공화정을 구현하고 있느냐이다. 불의한 대통령이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오기를 거부할 때, 명예를 지키고자 하지 아니할 때 그때에는 '국민주권'을 사실상 어떻게 관철하느냐의 문제를 우리는 지금 눈앞의 숙제로 받아들고 있다. 우리 헌법 전문은 비상시 국민행동을 정당화하는 명시적 문구를 통하여 저항권을 적극 인정하고 있다. 정부 수립 이후 70년을 넘기며 악화되어온 적폐를 어떤 과정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소할 것인가.


박근혜 이후 : 근본적 개혁을 지향하되 현실 역량에 기초해야

정치의 언어는 꿈을 부추킨다. 일거에 민주주의가 성취되고 모든 격차가 해소되며 모두가 행복한 복지사회로 갈 것처럼 속삭인다. 마치 종교의 언어처럼 우리를 위무하고 순간 고양시키지만 그것이 현실로 실현되기까지 수많은 우회와 배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 2016 촛불광장의 결말을 놓고도 염려하는 시선이 많다. 정권 교체의 대안인 야당은 분열되어 있고, 충분히 신뢰할만한 단일지도력은 쉽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이 막장드라마의 끝에 막바로 해피엔딩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어쩌면 복잡한 우회의 길, 고통스러운 혼돈의 입구에 들어설지도 모른다. 헌법 개정의 한 방향으로 직접 민주제에 대한 단상들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누구나 의원으로 지명될 수 있는 추첨제 민주제처럼 대의제를 보완하고 광범한 분권/자율의 길을 가야 한다. 헌법개정은 새집을 짓는 일인데, 면적과 구획, 동선에 대한 설계가 아래 기로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박근혜 이후에는 임시정부-새 대통령-개헌과 새로운 공화국 체제의 긴 여정이 놓여있다. 광장의 촛불은 그 여정 내내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며 계속 진행중이어야 할 것이다. 새벽이 채 오지 않은 아직은 개 돼지의 시간이다. 한국의 정치현실을 잘못 만나 부당한 낙인을 찍힌 개돼지들도 어서 이 혼돈의 시간대에서 놓여나고 싶을 것이다. 닭은 정말 어떻겠는가. 최고 권력을 조롱하는 풍자와 비유의 제물에서 온갖 누명을 뒤집어 썼으니 참으로 억울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광장의 노래 소리와 함께 만물도 제 영역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아, 아직 쥐가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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