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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 기획 [광장에 서다]
‘정(正)’한 분노, 촛불 화살촉, 광장과 촛불
김형미(2016-12-16 16:06:36)




광화문 사거리, 촛불이 일렁인다.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 때문이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던가. 하늘이 수를 잘못 두니 전국 방방골골의 말들이 난리다. 요즘 말들은 좁은 말판에서 '광장'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는 걸 저들은 모르는 걸까. 말을 확산시키는 힘을 가진 최고의 대마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기다리는 이유 // 기다리는 이유를 묻지 말라 / 너는 왜 사는가 //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도 / 나는 무척 설레였던 것을 // 산다는 것은 / 이렇게 슬픔을 녹여가는 것이구나


이정하 시인의 시다. 두해 전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며 쓴. 크고 작은 공터만 있으면 이렇게 말들이 뛰어놀기 좋게 장이 열리곤 하는 것이다. 이름 하여 '광장'이다. '진정한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광장.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충족을 제공해주는 심리적 공간인 것이다. 해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집회를 가지거나, 나라에 일이 생겨 서로 합심할 일이 있으면 너도나도 없이 이 광장으로 모여들지 않았던가. 공공성의 의미를 두고 있는 게 이른 바 광장의 역할이므로. 
이 광장에는 시대에 따라 모이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 나오는 것들이 달랐다. 동학의 갑오개혁을 위한 황토현에는 죽창과 낫이, 4.19 학생 의거나 5.18 광주 대학살 때에는 총과 칼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살상의 무기가 아닌 촛불이 들려 있는 것이다. 촛불, 날이 뾰족하게 서서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할 거라 여기지만, 사실 이 촛불만큼 강력하고 뜨거운 무기는 없다.

촛불은 매우 민감하고 정적이다. 자칫하면 꺼질 수도 있지만 영적인 능력이나 직감력, 예지력을 불러올 수도 있다. 불꽃이 화살촉 모양을 하고 있어 염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가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촛불은 열로서 작용하여 마음에 정(精)을 모아 열정을 깃들게 하기 때문이다. 작은 불꽃이지만 속으로는 강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촛불. 태양도 못 녹이는 강철도 촛불 하나로 녹일 수 있는 성질이 있으므로.

그러한 촛불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만이 광장과 만난 것이다. 개미들이 낱으로 흩어져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집단으로 몰려 있으면 독이 생긴다고 한다. 어쩌면 대륙을 나누고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이 광장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세계를 따뜻이 품어 안을 수 있는 여성의 자궁과 같은 힘 말이다.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 껍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는 / 아사달 아사녀가 /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의 그 유명한 '껍데기는 가라'이다. 나라에 알맹이와 머리를 잃은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읽히던 시이다. 광장은 단순히 인간적인 교감만 하는 곳은 아니다. 거기에는 절제되고 응축된, 언제 터뜨려질지 모르는 '정(正)한 분노'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장의 대부분의 이미지는 이런 정한 분노를 위해 모이는 집회 장소로 많이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원형경기장인 콜롯세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진 광장이었다. 현재는 로마를 대표로 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지만, 포로 4만 명을 동원하여 건축된 콜롯세움에서는 검투사들의 피 냄새를 즐기지 않았던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즉 광장의 주체가 달랐던 것이다.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압도하기 위해 피 냄새를 무기로 앞세워 즐기고, 흥분시키고, 두려움을 주고자 했다. 말 그대로 정치 도박장인 셈이었던 것이다


나눔의 신비 //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게 불을 옮겨 준다고 / 그 불빛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 // 벌들이 꽃에 앉아 꿀을 따간다고 / 그 꽃들이 시들어가는 건 아니다 // 내 미소를 너의 입술에 옮겨준다고 / 내 기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 빛은 나누어 줄수록 더 밝아지고 / 꽃을 꿀을 내줄수록 결실을 맺어가고 / 미소는 번질수록 더 아름답다 //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나누어줄 수 없고, / 자신을 나누지 않는 사람은 시간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과거의 역사가 그렇다고 해서 광장이 다 어둡고, 아프고, 슬픈 것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박노해 시인의 시처럼 '나눔의 신비'도 있는 것이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공간과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여성들의 자궁 속처럼 안전하고 따스한 곳이어야만이 생명이 자랄 수 있다. 마음과 마음으로 너와 나에게 건네지는 촛불처럼 환하게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그런 신비로움이. 분노하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사납게 내지르는 말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는 그런 말들이 말을 타고 번져나가는 생명의 광장 말이다. 설령 귀곡사(鬼曲四)에 들었다 해도 싹을 틔우고 가지를 늘일 수 있는 힘을 지닐, 그런 광장이 더 많이 기억되는 세상이 되길 나는 바란다.

거대한 촛불행렬이 전국 방방골골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이 추운 겨울날이 춥지만은 않겠으나,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농단으로 국민을 기만한 최순실 씨 등은 마음이 한낱 가랑잎처럼 바스락대고 있겠구나, 싶다. 사람의 콧속에 드나드는 흰 것이 혼(魂)이어서 그것이 하나라야 본심인데, 둘이면 도둑놈이 된다고 한다. 그 흰 쥐가 둘이어서 양쪽 콧구멍을 들락거리는 사람은 마음보가 커서 담장을 넘어 도둑질을 하니 그 중 하나를 때려 죽여야지, 그냥 놔두면 커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국정을 콜롯세움과 같은 정치 도박장으로 삼았으니, 온 국민이 만들어낸 거대한 촛불 화살촉에 맞으면 다시 몸 가누기 쉽진 않을 터다. 허허, 그러기에 상대에게 쫓기거나 둘러싸여 온전한 집을 만들지 못하고 살기가 고생스럽게 된, 곤마(困馬)는 되지 말아야지. 판을 세워줬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만 있으면 돼지가 산을 거꾸로 메고 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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