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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 | 기획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탄핵심판 이후의 한국사회의 진로
김평수(2017-04-28 10:03:57)



박근혜 정부의 무능, 최순실의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촛불집회는 20회에 걸친 시민공론장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비폭력 평화적 시위로 제왕적 대통령을 탄핵시켰으니 시민촛불혁명이라 칭해도 손색없을 것이다. 촛불혁명은 한국현대사에서 시민이 직접 권력에 대항했던 다른 혁명들과 함께 중요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4.19혁명, 80년 광주항쟁, 87년 6월 항쟁, 2008년 촛불집회를 떠올려보자. 그 혁명적 사건들이 역사적 의의를 빼고 냉정하게 살펴보자면 모두 미완의 혁명이었다. 이번 촛불혁명이 대통령을 무력이 아닌 헌번을 통해 합법적으로 탄핵한 사상최초의 사건이지만 이 혁명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헌재가 박근혜의 파면을 결정한 것은 헌재가 진보적 가치를 가져서가 아니다. 박근혜가 보수 기득권 세력의 질서를 위협하고 통제권 바깥으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즉, 헌재는 보수 기득권세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박근혜를 파면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혁명은 일단 국민들의 승리임을 틀림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쳐있다. 가장들은 날이 갈수록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힘들고, 청년들은 취업하기 어렵다. 해방 70년을 억척같이 살아왔던 노인들 대부분은 외롭고 힘들고 여전히 가난하다. 한국사회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필자는 "난민사회"라고 말하고 싶다. 70년 전 해방정국의 혼란은 오직 정치적 혼란이었다. 정치적 혼란, 암살, 전쟁을 겪고나니 경제적 혼란이 밀려왔다. 미군정하 특혜불하, 구호물자 비리 등의 불의한 경제적 사건들은 국민의 사기와 의욕을 꺾었다. 그래도 경제란 불황과 호황을 오가기에 희망이라도 있었다. 전후 부흥기엔 경제성장을 통해 이런 희망을 키워왔지만 오늘날의 한국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난민국가인것 같다. 난민들에게 있어 최고의 미덕은 생존이다.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위해선 '내가 살고 봐야한다', '남을 배려하면 손해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라는 생각에 지배당한다. 지난 70년을 거쳐온 21세기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난민들의 생존욕망이다. 이 욕망들은 경제인과 정치인들의 타락, 주택문제, 교육문제, 난개발, 흉악범죄 등을 낳았고 한국사회를 전쟁상태와 같은 혼란으로 밀어넣어 왔다.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헬조선' '반도 불지옥'이라는 유행어가 이젠 어색하지도 않다. 한국의 보수 기득권 세력은 이렇게 전쟁과 같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불안정치, 안보통치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국민을 잘 살게 하였는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세계 최고수준에 이른다. 1980년대에 대기업의 평균임금을 100원으로 환산하면 중소기업은 90원 정도였다. 오늘날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60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연이은 경제정책 실패와 국고낭비로 인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졌다. 예를 들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가가 2016년 10월 세계경제전망보고서의 3.0%에서 2017년 기준 2.6%로 낮춰졌다. 국제통화기금은 'G20 감시보고서'를 통해 2017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했다.  참고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3.4%로 2017년 한국 경제성장률의 2.6%보다 높았다. 
경제성장률이 일반 국민들에게 실감나지지 않겠지만 내수시장의 체감온도는 분명하다. 중국의 한한령으로 중국인 관광까지 중단되자 한국의 내수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보수정권이 그토록 지탱하려 했던 주택가격은 하락을 시작했다.
엘리트들이 만든 한국은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국민들의 삶은 힘들어졌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지지 않았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지닌 위상의 민낯은 바로 며칠 전에 볼 수 있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한, 중,일을 방문했다. 일본에서는 최고의 동맹이라 칭하고 한국은 파트너라고 했다. "미·중·북 3자 회담"을 제안하는 중국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대한민국을 빼고 미·중·북 사이에 대화가 진행된다. 사드(THAAD)배치를 이유로한 한국에 대한 경제 압박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이것이 중국의 험한 압박을 받아가며 실익이 거의 없는 사드를 도입한 이 정권의 외교적 성과이지 대한민국의 외교적 위상이다. 보수적 엘리트들이 수십년동안 펼친 친미적 외교정책의 말로다. 이제 대한민국은 전세계 외교에 설 땅이 없다. 국격 따위는 이미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끝장났다고 보아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의 실패는 보수의 분열을 낳았다. 그리고 이렇다 할 대선후보의 부재로 보수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 사회혁명의 주역들마저도 보수화되고 혁신보다 기득권에 안주한다. 그런 역사를 우리는 한국 근대사 속에서 되풀이해서 보아왔다. 이번 촛불 혁명이 완성된 혁명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박근혜의 탄핵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정치엘리트들을 근본적으로 물갈이하고 개혁해야 한다. 근본적 국가혁신 프로그램과 개혁의지가 없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국가경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이미 무너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보라. 세월호 사건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믿음이 붕괴되는 대 사건이었다. 6·25시절 시민들을 보호하지 않고 한강다리를 끊어버리고 혼자만 도망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악령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 남아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온 국민들은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거나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각인했다. 국민들의 마음속엔 씻을 수 없는 불신의 트라우마가 자리 잡았다. '국가가 없으면 국민도 없다', '국민은 의무를 다하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국가관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고 보아야 한다. 
세월호의 업보는 결국 박근혜 정부를 끝장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7시간은 박근혜를 통치기간 내내 괴롭혔고 결국 비선문제가 드러났고 박근혜는 탄핵 당했다. 그러나 박근혜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득권 세력은 놀라운 생존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비운의 유신공주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국민에 의해 권좌에서 끌려 내려온 비운의 주인공 박근혜는 다시 자신들의 드라마 시즌2의 주인공으로 최적격이다. 결국 박근혜는 이번 5월 9일 대통령 선거의 최대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드라마를 극적으로 연출해서 보수 재결집을 노리는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국민들을 분열시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나리오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종북이니 간첩으로 몰아세워온 세력은 물론 엘리트의식으로 국민의 분열을 방치하고 자신의 기득권만을 유지해온 정치인들의 드라마도 이제는 끝나야 한다.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 우선 객관적인 국내외 경제 현실이 실제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정치를 지독히 불신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바꾸어도 국민의 삶이 훨씬 나아질것이라는 믿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새로운 대통령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국민 마음속에 남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믿음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70여년에 걸쳐 국민을 난민으로 만든 이데올로기 전쟁을 끝내야 한다. 갈등을 끝내야 21세기의 비전도 만들 수 있고 경제도 외교도 할 수 있다. 마음속에 칼을 품고 실력을 갈고 닦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했던 80년대의 중국을 우리는 깊게 되새겨야 한다.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경제는 망가졌고 외교는 치욕적이다. 극우보수는 아직 살아있고 정치인들은 변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아직 살아있고 마지막 신파를 준비하고 있다. 박근혜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촛불혁명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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