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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 | 기획 [한복의 일상화를 꿈꾸다]
한복체험, 놀이문화로의 전락을 차단하라
강미선(2017-05-19 14:27:14)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한복은 명절 때 의례적으로 잠깐 입거나 외국인들이 문화체험 차원에서 입는 전통 옷이었다. 물론 오늘에 이르러서도 한복을 일상에서 즐겨 입는 모습은 드물다. 그런데 근래 들어 관광지 혹은 길거리에서 한복을 입는 이들이 많아졌다. 소위 '한복체험'이란 문화상품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덕분이다. 특히 1~2년 사이 SNS를 타고 일어난 한복입기 열풍은 대단하다.


한복입기 열풍의 시작
한복입기 열풍은 전주한옥마을에서 시작됐다. 2012년, 전주 출신의 한 청년이 '한복데이'를 기획하면서 전주의 10ㆍ20대 청년들을 주축으로 한복입기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그는 한복데이를 기획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전주에서 사회적기업 '불가능공장'과 '한복길'이라는 사업을 열었다. 최근에는 서울 소격동에 '한복 입혀주는 남자'라는 뜻의 한복남이라는 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그 바람은 전국의 관광지까지 타고 들어가 각 지역의 유명 여행지와 서울의 경복궁, 창덕궁 등 고궁에서도 한복을 입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이런 바람은 초창기에는 10대, 20대, 외국인 등이 주를 이루었으나, 시간이 지나 30대부터 50대 60대 장년층들까지 동참하면서 한복입기 열풍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체험문화가 됐다.


점점 늘어나는 한복대여점들
한복 입기가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복 관련 업종이 생겨나는 등의 효과를 냈지만, 긍정적 효과 못지 않게 부작용도 함께 몰고 왔다. 부작용 중의 하나가 바로 한복대여점의 증가다. 고궁, 한옥. 여행지 등에서 한복입기 열풍이 불면서 자연스럽게 한복대여점도 늘어는데, 그 수가 점점 늘어나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더니 전주 한옥마을의 경우는 몇 개 뿐 이었던 한복대여점이 어느새 100여 곳을 넘어섰다. 한복대여점들의 한복 대여 가격은 1~2시간당 보통 5000원부터 3~5만원인데 가게마다 추가비용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다. 속치마, 장신구, 사물함 이용비 등 갖가지 이름들을 붙여 추가비용을 받는가 하면, 대여점들끼리 서로 경쟁을 하다 보니 바깥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표기해놓고 막상 들어가 보면 고급한복, 테마한복 등의 이름을 붙여 몇 만원씩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즐겁게 놀러왔던 관광객들은 한복 한 번 입으려다 바가지를 썼다고 말한다.


'개량' 한복과 '생활' 한복
문제는 이뿐 만이 아니다. 한복대여점에서 대여하는 일부 한복들은 한복이라고 말하기에 애매한 옷들이 많다. 일부는 이 옷을 '개량' 한복이라 부르는데, 사실 그 한복들은 개량한복이라 보기에도 어렵다. 사람들은 종종 '개량한복'과 '생활한복'을 혼용해 사용한다. '개량'이라는 단어는 '나쁜 점을 보완하여 더 좋게 고친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개량한복과 생활한복을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대여점에서 대여해 주는 한복들은 지나친 개량으로 한복의 기본적인 요소인 동정, 배래, 고름도 지키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야 말로 한복 아닌 한복, 말뿐인 한복인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흔히 전통한복이라고 부르는 옷은 보통 조선 시대에 착용했던 한복과 비슷하다. 한복도 의복이므로 기성복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색과 소재 등을 달리하며 변화해 왔다. 그리고 그런 한복들을 '개량 한복'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통 안에서의 변화였다. 현재까지도 여러 한복 디자이너에 의해 디자인은 변형되고 있지만 전통적인 요소들은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한복의 기본 요소들도 지켜지지 않는 몇몇의 옷들로 인해 전통미는 조금씩 파괴되고 있다. 보통 이런 옷들은 어의, 어우동 등 화려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 하루 놀이거리정도로 여겨지는 것 또한 문제이다. 한복열풍이 불기 전 한복체험은 전통복식과 전통문화를 체험한다는 취지가 강했지만, 한옥마을이 관광지화 되면서 전주에 가면 꼭 입어봐야 할 옷처럼 상품화 돼버렸다. 아직도 한옥마을을 찾는 이들은 끊임없이 한복을 입다가도,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복을 벗는다.


아직도 한복은 '명절'에만 입는 옷?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상품화 될 만큼의 열풍은 왜 일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우리는 한복이 생활 속에 흡수되는 '과도기'에 서있다. 수 십 년 된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자리 잡으면 바뀌기 어려운 것이 편견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한복이 '명절에 입는 옷', '특별한 날에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한복 열풍이 일시적인 유행처럼 휙 하고 지나가버릴 가능성도 있다. 사람들의 한복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복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리슬', '데일리한' 등 생활한복 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생활 한복 브랜드들이 성장하면 사람들의 생각은 더욱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복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졸업식에서도, 길거리에서도 tv에서도, 축제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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