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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 | 기획 [미니멀라이프 ③]
다시는 물건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
『버리면 버릴수록 행복해졌다』 펴낸 작가 황윤정
황윤정(2017-07-24 13:36:31)



최고 성능으로 업그레이드 된 각종 기기들, 마음을 빼앗기는 디자인의 새로운 제품들, 발 빠르게 서둘러야만 구입이 가능한 한정판 물건들을 누구보다 먼저 구입하고 사용 후기를 공유하고, 물건이 주인공이지만 그런 티를 안 내야 세련되게 보인다는 사진을 SNS에 게시하는 것이 유행이다. 사진을 클릭하는 순간 마음 속 에서는 그 물건을 갈망하는 욕망이 회오리친다. 그 물건만 손에 넣으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물건 구입 후 잠시 동안은 행복하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착각이 아니라면 더 이상은 아무런 물건을 갖고픈 욕망이 생기지 않아야 하는데, 약기운 같은 행복감이 효력을 잃으면 또 다른 물건을 갈망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해진다는 일반적인 신념과는 반대로 "미니멀리즘" 혹은 "미니멀라이프"라는 것도 조용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비주류지만, 한 번 미니멀리즘에 빠져 본 사람들은 무슨 수도승이라도 된 것처럼, 버리면 버릴수록 풍요롭고 행복해진다는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닌다니 이건 또 무슨 새로운 유행인가 싶다.
미니멀리즘이란 정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고 살자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없어도 괜찮은 것들을 사들이고 쌓아놓느라 돈과 시간과 에너지와 공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있으니, 끊임없이 새로운 잡동사니, 예쁜 쓰레기들을 사 모으고 돌보는 대신에 '내 인생에 가치를 더해주는' 물건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우자는 움직임이다.
생각해보면 옛날에는 현대사회의 필수품이라고 여겨지는 것 없이도 잘 살았다.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스마트폰, 컴퓨터. 그런데 그것이 지나쳐 요즘은 몸으로 해야 하는 노동을 기계가 대신 해 주는 딱 적정한 '편리분기점'을 넘어 선지가 오래다. 아기 옷 전용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비위생적인 엄마가 되는 듯 하는 분위기, 지나치게 크고 깊어 손이 끝까지 닿지도 않아 거대한 음식물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냉장고, 정보의 바다에 빠져 익사할 지경의 인터넷 사용. 그런 것들로 어느새 내 인생을 편안하게 해 주던 물건들과 주객이 전도되어, 그 물건들을 돌보느라 어떤 의미에서는 물건의 관리인 내지는 노예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잔업과 야근까지 감수해가며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냉정하게 짚어보면, 우리는 없어도 괜찮은 물건을 사들이느라 나와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보낼 행복한 시간과 경험, 추억을 포기한 채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한정된 인생의 시간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번 돈은 통장이 아닌 주변의 잡동사니에 쌓여 있다. 행복해진 사람들은 대기업과 재벌이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닌, 그들을 위해 스트레스를 참아가며 일을 한 꼴이다. 악순환처럼 물건을 사들이고 또 사들여, 그 물건을 보관할 장소가 비좁아지면 더 큰 수납장, 더 큰 집을 갈망하게 된다. 대출을 받아 집을 늘린다. 그리고 대출을 갚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일을 해야 한다. 집이 비좁은 것이 아니다. 가구가 작은 것이 아니다. 그 공간만큼만 채우고 살면 되는데,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지고, 해야 할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처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자 한 계기도 그것이었다. 맞벌이 주부로서 청소를 편하게 해준다는 기계, 음식을 알아서 조리해준다는 도구, 엄마를 대신 해 놀아주는 장난감, 직장일과 집안일 육아를 모두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각종 인테리어 용품들을 사들이면서 살던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내 집은 정체불명의 거대한 창고가 되어 있었고, 나는 창고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정리하고 수납하면서 피곤해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었다.
물건이 줄어들면 또 다른 제2의 일터로 출근하는 듯했던 퇴근길이 조금은 가벼워 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순간부터 미친 듯이 물건을 사들이는 것 대신에 비우기 시작했다. 클릭만 하면 집 안까지 배달이 되는 것과는 달리 물건을 처분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고달프고 어려웠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집안 일이 줄어들었다. 정리정돈하고 쓸고 닦아야 하는 물건들이 줄어드니 당연한 결과다. 힘들었던 비움의 과정을 생각하면 물건 하나를 들일 때 신중하게 되므로 되도록 지갑을 열지 않으니 잡동사니에 쌓일 물건이 통장에 쌓이게 되었다. 대출을 줄이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내 예상과 비슷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변화도 많았다.
기껏해야 백년도 채 못 살다 가는 존재로서 지구에 남기는 쓰레기의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일회용품을 줄였다. 손수건 하나를 다용도로 이용했다. 쉽게 톡 뽑아 사용할 수 있는 화장지 대신 차가운 물을 담은 컵의 컵받침으로, 손을 닦는 용도로, 비닐백 대신 간식거리를 싸 가지고 다녔다. 그러면서 적극적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지구와 후손을 생각하고, 자연과 환경을 아끼게 되었다.
모든 것을 꼭 내 집, 내 공간에 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던 화분과 어항을 최소한으로 남겨 관리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산책을 하면서 들꽃과 작은 풀의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두 번 다시 읽지도 않을 책 무덤을 비우고, 세상에서 제일 큰 나만의 서재인 공공도서관을 이용하게 되었다.
계절별로 다섯 벌 정도의 옷을 코디하여 출퇴근을 하니, 내 맘에 꼭 드는 옷들만 남아 옷을 고르던 시간이 줄어들고 어떤 옷을 골라도 내게 잘 어울렸다. 옷장의 공간도 늘어나서 수납장도 비워 큰 집이 필요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참 자유를 얻었다.
질 나쁜 싸구려 물건들을 사서 쓰고 쉽게 버리는 패턴을 살펴보니, 그 이면에는 제3세계 누군가의 노동력과 자원을 착취하는 구조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꿈꾼다. 꼭 필요한 물건만을 정당한 가격을 주고 구입하고, 판매하는 사람도 박리다매 대신 질 좋은 최고의 상품을 제대로 된 가격을 받고 판매하여, 모두가 조금 덜 일하고 남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동물복지에도 관심이 생겨서 조금 질 나쁜 가죽을 사용하고, 질긴 고기를 먹더라도, 동물들에게 주어진 생을 행복하게 누리다가 고통 없이 보내는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핫딜 찬스를 놓쳐도, 세일을 지나쳐도, 주말마다 대형마트에서 트렁크 가득 식료품을 싣고 오지 않아도, 원 플러스 원 제품을 구입하지 않아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체험하니, 노후에 대한 걱정도 줄어들어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의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지금도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죽는 순간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일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일까, 정말 잘했다고 생각되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니,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는 단순하게 물건의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불편을 감수하고도 누가 최소한의 물건을 갖고 사는지 물건의 숫자로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아주 많은 물건을 갖고 살아가는 삶 역시 미니멀리즘과 똑같이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다만 나는 많은 물건에 압도되어 살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기 때문에 미니멀리즘을 내 삶의 철학으로 받아들인 것뿐이다. 아마도 가볍게 살아가는 삶은 죽는 날까지 계속 될 것 같다. 이 좋은 삶의 방법을 찾아냈으니 다시는 물건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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