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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 | 기획 [전북에 가야사가 온다 ④]
잠자던 전북 가야사를 깨우다
윤희숙(2017-08-28 14:36:21)



최근 가야사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지난 7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가야사의 연구와 복원을 포함해 달라'고 주문하면서 '가야사 복원이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다"며 국정과제로 추진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가야는 600년간 독립적인 정치세력을 유지했지만 결국 신라, 백제에 흡수되면서 삼국의 역사에 가려 변방의 소국으로 치부되며 존재감이 약했다. 그래서 가야사 연구와 복원 사업은 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는 영남권 위주로 진행됐다. 문헌 기록이 미미하다보니 대가야국의 중심지인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해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등 왕릉급 고분군들이 가야의 역사를 조명하는 기반이 되었던 이유다.
가야는 이들 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들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철을 활용해 제작한 유물이 다량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철 생산이 풍부했던 가야가 철을 기반으로 해운교역의 길을 열었고 경제적 문화적 풍요로움을 얻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평가받게 됐다. 하지만 가야의 중심지라고 하는 김해와 고령에서는 제철 유적이 발굴된 적이 없다.

이와 맞물려 주목을 받는 것이 전북의 동부지역에 산재해 있는 가야유적의 실체다. 장수의 가야유적과 남원 운봉고원 등에 밀집되어 있는 가야시대 유적에서는 철을 생산하고 직접 제작까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유물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동부지역 가야유적 발굴 결과 직경 20m가 넘는 고총이 장수 250기, 남원 운봉 100기가 있다, 전북지역에 분포한 가야문화권은 장수와 남원을 중심으로 임실, 무주, 진안까지 포함한다. 또 충남 금산과 남원, 무주에서 시작된 봉수의 최종 종착지가 장수로 밝혀졌다. 봉수는 그 자체가 국가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어 장수에 가야의 중심세력이 존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가야왕국의 많은 소국들이 한반도 동부에 집중분포하는데 그렇다면 왜 멀리 떨어져있는 장수와 운봉에 가야왕국이 세워졌을까? 그것은 바로 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북지역 가야사 전문가인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최근 일련의 가야사복원 이슈가  전북지역의 가야사를 제대로 밝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전북의 가야는 철의 테크노벨리다."며 "발굴 복원작업이 진행되면 가야사의 중심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전북의 가야사를 제대로 밝힐 기회 삼아야

경남과 달리 전북은 그동안 가야사에 대한 고고학적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삼국시대 제철 유적의 밀집도가 높고 철기문화의 역동성을 보인 곳이 전북 동부 지역임에도 지역에 산재한 430여기의 가야계 고총은 잡목과 잡초에 갇혀 있을 정도로 가야 역사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가야사 복원 정책을 계기로 관련 자치단체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전라북도는 본격적으로 정책의 틀을 세우고 영호남 자치단체 간 협력체계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7월 17일엔 가야유적 관련 연구 및 복원을 위한 TF팀을 구성하고 가야 연구 관련 교수 및 전문가 가야 유적 관련 지자체인 남원, 장수, 완주, 진안, 무주, 임실 등 6개 지역의 담당부서가 참여하는 전문가협의회를 개최하고 가야사 연구·복원 기본계획 용역과 발굴조사비 등 3억원여원을 추경에 반영하는 등 후속조치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장수군도 전라북도와 6월 26일 군청에서 심층토론회를 열어 가야문화권 복원방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전북도 김일재 행정부지사와 한영희 장수부군수, 군산대 곽장근 교수, 전주대 송화섭 교수, 전주문화연구원 유철 원장, 전북연구원 장세길 문화관광연구위원, 도내 가야권인 남원시·진안군·임실군 문화재 관련 부서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가야사연구복원과 세계유산등재를 위한 추진과 대응계획, 장수군을 비롯한 참여 시·군별 추진계획, 전북 가야권의 중심유적인 제철과 봉수유적의 보편적 가치 확립, 유적을 통한 관광자원화 전략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남원시도 운봉 가야고분군에 대한 국가사적 지정 추진과 함께 양질의 유물이 출토된 남원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을 중심유적으로 산성, 봉수, 제철유적을 기반으로 오는 2020년까지 '가야역사유적지구(가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점정목록 등재를 장수군과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각 지자체들이 가야사 복원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이유는 뭘까?
고구려·백제·신라와 달리 가야 지배구조는 여러 독립국이 연합을 맺고 있는 소국가 형태였다. 각각이 다 저마다의 정치세력을 지닌 국가였다. 지금의 지방자치제와 유사하다. 이후 백제나 신라에 흡수통합 되긴 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가야의 독립국들은 각각이 모두 변방이 아닌 중심이었다. 이를 토대로 각 지자체들은 자기 지역이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곳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고 정체성도 찾을 수 있다. 나아가 대부분 자치단체들은 유적과 유물을 정비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지역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지자체 입장에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발굴과 연구를 통해 학술적 성과를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제대로 된 가야사를 정립해야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출제로 뽑힌 단체장이 임기내 성과를 내기 위해 1600여년 동안 잠자고 있던 역사를 단번에 흔들어서 깨우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학술의 영역은 학술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정부나 지자체가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관광자원화 사업이나 문화시설 건립 등에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것은 좋으나 진행 과정에서 본래의 취지나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순수 학문적 토대 위에 쌓아올린 탑이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활용방안은 차후 문제다.
이런 우려를 반영한 듯 7월 19일 기자회견에서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은 가야사 복원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가 어떠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안되고, 임기 내에 성과를 내겠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2000년 전, 한반도 곳곳에 당당히 국가로 존재하며 600여년 동안 이어왔으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그늘에 묻혀있던 가야국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이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최근 장수와 남원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역에서 가야사를 다시 쓰게 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유적, 유물 등 흔적들이 드러나며 전북의 가야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제대로 된 전북가야사의 복원과 정립을 위해 정부와 각 지자체, 연구전문가들의 뜻과 지혜를 모아 올바른 방향을 찾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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