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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 | 기획 [내가 본 영화]
JIFF는 나의 성장학교, 영혼의 치유센터, 미지의 여행지 였다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
김혜영(2018-07-13 11:49:32)



정박되어 호출을 기다리는 시간

"후세들이 볼 작품"

멈추지 않는 시간의 고유 법칙을 거스르는 기억이 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체험이 아니라 기억이다. 새로운 기억을 구성하고 변형한다. 원본이 사라지고 카피 본은 더 선연하게 추억으로 남는다. 정의신 감독의 카메라는 기록하는 펜이다. 자신의 선별적 기억을 미래 세대의 역사로 새겨둔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미리 준비한 선물, <야키니쿠 드래곤>은 감독의 간절함으로 후세를 위한 영화가 되었다. 재미교포로서 외부자적 삶과 시선을 가진 그는 일본인(또는 한국인이라는 이분법)으로 걸러지지 않는 좌표 밖의 점일지도 모른다. 86년 만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감독 스티브 맥퀸이 운명적으로 <노예 12년>을 만들었다고 언급한 것처럼, 정의신 감독 또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술가로서, 재일교포 가정을 다룬 이 영화를 제작해야만 했을 것이다.


70년대 초반, 오사카 박람회가 열리는 공항 근처, 힘겨운 가운데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재일교포, 한국인 재혼부부가 있다. 그들은  무허가 상가에서 곱창구이 가게를 운영한다. 각자 낳은 딸 셋, 재혼 후에 낳은 십대 아들이 가족 공동체를 일구고 살아간다. 카메라는 처음부터 세속적 행복이 부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족 서사를 담아낸다. 외팔이 아버지, 지뢰를 밟아 다리를 저는 큰딸, 언니만 바라보는 남자와 결혼한 둘째 딸, 유부남을 사랑하는 셋째 딸, 학교에서 '조센징'으로 배척당하는 막내아들은 주변인들과 더불어 소란하게 살아간다. 그들 각자 또는 함께 살아가는 삶의 면면을 따라가다 보면, 행복한 시절에는 배울게 별로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장 힘든 시절에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슬픔이 켜켜이 베인 웃음은 묵직한 울림을 만든다.


영화야? vs 연극이야?   

관습적 결말, 그래도 과정은 흥미롭다. 

다양한 세대의 관객은 각자 기억하고 살아가는 난장 같았던 추억을 호출했을 것이 분명하다. 선별된 기억은 애초의 경험이 된다. 영화제 개막식이 진행된 돔 상영관, 70년대 장장하야(長長夏夜), 후텁지근하게 긴 여름밤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마을 공연이 떠오른다. 관람 시설이 완벽한 영화관에 비하여 턱없이 불편한 의자들, 그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며 영화제를 훨씬 풍요롭게 만든다. 가족과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보냈던 시간을 재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연극적 형식을 차용한 영화를 천막 돔 안에서 보는 것, 마치 정의신 감독의 삶을 물리적으로 변형해 놓은 느낌이 든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2008년 도쿄와 서울에서 상연된 한일 합작 연극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여러 차례 공연하였고,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1957년생 일본 출생 감독은 연극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를 거쳐 폭넓게 활동하는 연출가 겸 작가이다. 1993년 '키시다 드라마 어워드'에서 연극 「테라야마」로 수상하면서, 같은 해 영화계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 영화의 연극적 요소가 지나치다는 평가는 충분히 타당하다. 실제 연극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세트도 작은 공간에 설치해서 1개월 정도 촬영했고, 학교, 강변, 카바레 씬 정도만 세트 밖에서 끌어왔다. 영화 자체를 연극처럼 만들었다는 점을 비판하더라도, 영화가 종합예술인 것에 이견을 보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진, 음악, 미술, 연극, 문학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이 초기 영화의 숙명이었다면, 이제 100년 이후 영화사를 새롭게 써나가는 시점에서,  '무엇'이든, '어떤 형식'이든 영화 안으로 포함하는 것을 더 이상 모험이라고 하지 않는다. 초기 영화의 자부심이 영화의 전형성을 지키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특정 예술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 영화 가치 평가의 기준도 아닐 것이다. 미술적이거나, 음악적인 것이 그 영화 장르의 특징일 수 있다면, 연극적이거나, 문학적인 것이 영화의 흠결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영관을 나선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잔영이 잔잔한 파문으로 일렁이기 때문이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비로소 관객 마음에서 다시 시작되는 작품이다.

 

가족 공동체가 함께 새긴 암벽화

"관객들이 재일교포 이야기를 좋아해 줄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잊혀가는 이야기,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야기,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연극을 기획할 때만 해도 한국과 일본에서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으리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관객이 사랑해주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줘서, 이 작품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던 차에 영화 제작이 들어왔습니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에서 감독이 한 말이다. 그의 겸손함은 성공적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개별자는 고유한 경험을 하는데, 각자 난장으로 경험한 시공간은 어느 순간 하나로 수렴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다. <야키니쿠 드래곤>이 관객의 기억 창고를 똑, 똑, 똑 노크한다. "이것이 나의 기억이야. 자, 이제 너의 난장처럼 정박해둔 시간을 끄집어 내보렴." 중심을 벗어난 주변인의 삶은 특수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 가족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종국에 가족은 각자 선택한 길로 흩어지지만, 함께한 시간은 누군가 훗날 발견하는 기억의 유적, 암벽화로 남는다. '모든 가족'의 보편성은 가족마다 지니고 살아가는 특수성과 대척점에 있지 않다.


JIFF, 전주국제영화제는 19년 동안 나의 성장학교, 영혼의 치유 센터, 미지의 여행지였다. 커리큘럼은 최선이었고, 때마침 적절했다. 그 속에서 일용할 양식을 얻었고, 숨겨진 보물쪽지를 발견해나갔다. "귀에도 벽이 있는" 세계 속에서도 공명하고자 목소리를 만드는 수많은 영화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에게 느꼈던 동류의식, 물리적으로 청춘인 이들은 나의 과거를 반영했고, 더러는 내 미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막바지 작품을 '첫 영화'로 관람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 관객들을 보면서, 마지막 상영까지도 처음처럼 알차야 하는 당위를 확신했다. 이는 내년에 찾아올 전주국제영화제 20회를 기대하는 것이 요란하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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