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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 | 기획 [다시 그리는 선미촌]
그늘 속에 가려져 있던 그곳에 가느다란 볕이 들기까지
선미촌, 새로운 공간을 꿈꾸다
이동혁(2018-10-31 12:18:39)



2011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지원한 구도심 도시재생 연구사업에 선미촌을 포함한 서노송동 지역이 선정되면서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설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미촌은 연구사업 지역에서 제외돼 반쪽짜리 사업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당시 연구원들은 생소한 성매매집결지 문제에 난색을 표했고, 성매매업소 업주들의 조직적, 개별적 대응이 연구사업에 부담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2012년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진행한 지역 주민 역량 강화 교육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드러난 것이다. 당시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가 '선미촌과 여성인권'을 주제로 연 강좌에 주민자치위원회 대표가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주민들과의 소통 통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는 집담회를 개최하고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성 문제뿐 아니라 지역의 낙인 문제로까지 담론을 확대한 것이다.
2014년에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성매매업소 폐쇄와 도시재생을 촉진하자는 공감대를 토대로 선미촌 정비 민관협의회가 발족했다. 전주시 관련 부서, 경찰, 시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국, 지역 주민, 전주의제21(현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여성단체, 도시기획 전문가 등 3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선미촌 정비를 위한 움직임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지방선거 시기에는 전주시장 후보에게 선미촌에 대한 정책질의서를 보내는 한편, 모든 후보의 선거 캠프를 방문하여 선미촌 정비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촉구했다. 그 과정에서 세 명의 후보가 선미촌 폐쇄와 개발에 대한 공약을 발표했고, 선미촌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선미촌을 관할하는 완산경찰서를 방문하여 경찰서장, 담당부서 책임자들과 선미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선미촌 정비 민관협의회 활동을 소개하고 경찰과의 공조가 중요함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단속을 요청했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민관협의회 발족 이전보다 경찰 단속이 강화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송 센터장은 밝혔다.
2014년 5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선미촌 정비를 위한 연구용역사업도 진행됐다. 연구 내용에는 '여성인권과 자활', '지역 주민의 욕구', '재생적 도시 기획' 등이 담겼으며, 잦은 면담을 통해 민관협의회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특히, 민관협의회 자체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며 나온 다양한 의견들, '한옥마을과 연계한 젊은이의 거리', '여성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의 거리' 등을 연구용역팀에 제안하며 선미촌의 다양한 재구성 방안을 논의하였다.
공간에 대한 인식 전환과 선미촌 기획에 구체성을 더하기 위해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주최로 '선미촌 걷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했다. 송 센터장은 ”현장 방문 상담을 위해 수없이 걸었던 곳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낮에 걷는 활동은 전혀 다른 공간 감각을 갖게 했다”며, ”선미촌 걷기는 은폐되었던 공간을 드러내 알리고 성매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선미촌 걷기 프로그램은 2018년 4월까지 총 79회 진행됐으며 1,352명의 사람들이 동참했다.
2015년 선미촌 정비 민관협의회는 그간의 활동들을 인정받아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환경부로부터 '지속가능발전대상'을 수여받기도 하는 등 전국 성매매집결지 문제 해결의 모델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한 활동의 영향으로 전주시는 도시재생과 내에 '서노송예술촌'팀을 구성하고 행정 인력을 배치했으며, 선미촌 정비 민관협의회 역시 지속적인 워크숍을 통해 공간을 어떻게 재구성해 나갈지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송 센터장은 ”그냥 폐쇄해서 없애 버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착취의 공간에서 오히려 여성인권을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의 조성”이라며, ”공공의 공간으로써 여성인권 역사관을 계획 중이고, 전주시에 요청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미촌 정비를 위해 전주시는 현재 단계적으로 성매매업소 건물을 매입하고 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입된 다섯 채의 건물은 시티가든과 기억공간으로 조성되어 여성 착취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7년에는 현장의 목소리를 보다 가까이서 듣기 위해 선미촌 안에 현장시청을 설치했고, 성매매업소로 사용됐던 한 건물이 올해 냉면집으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에도 탄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선미촌 업종 전환 1호인 이 냉면집에는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에서 인용한 '예술촌칡냉면'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건물주이자 영업주는 시가 추진하고 있는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에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자신의 삶터에서 성매매가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 한편에서는 경찰의 단속을 피해 불법적인 성매매가 자행되고 있다. 볕이 비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구름 사이로 가늘게 새어 드는 작은 빛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태양 아래 온전히 드러난 그 모습을 곧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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