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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 | 기획 [예술, 소외된 이들을 끌어안다]
장애인 연극교실, 예술 향유 그 이상의 가치를 담다
새롭고 놀라운 변화, 장애는 장애가 아니었다
(2019-06-18 10:39:44)

문화소외계층에 대한 예술 활동 지원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문화소외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장애를 가진 이들의 문화소외는 비장애인들의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관심도가 적고, 지원에 있어서도 예술 강사의 헌신과 전문성이 담보되기에 일반적인 예술 활동 지원보다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2018년 장애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애 인구는 258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약 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장애인들의 90% 이상은 여전히 문화 향유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답답한 집안에서 격리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연극이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이들은 전체 장애인 인구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 같은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전북에는 13만여 명의 등록 장애인들이 존재하고, 170여 개의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미술, 음악 등 장애인들을 위한 예술 향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13만여 명의 장애인들을 모두 끌어안기엔 예산도 인력도 한참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손 닿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장애인들에게 예술의 다양한 맛을 접하게 하고 있으니 그들 단체의 활동이 더욱 빛난다.
그 중에서도 익산 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 연극교실은 일반인도 하기 힘든 연극 실연의 기회를 제공해 장애인 예술 향유와 자신감 향상에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연극의 기획부터 실제 무대에 올리기까지 장애인들의 주도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고 있는 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의 활동을 들여다봤다.



익산 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에서 장애인 연극교실을 연지 올해로 3년차가 됐다. 처음 연극교실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여섯 달 동안 진행되는 연습에 꾸준히 참여해 줄지도 걱정이었고, 무엇보다 일반인들도 어려워하는 연극 무대를 그들이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연극을 고집한 이유는 미술이나 음악 이외에도 다양한 예술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 황서연 센터장은 "잘하고 못하고는 차후의 문제였다. 일단 접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며, "우리로서도 첫 도전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무대 위에서 너무나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익산에서 장애인 연극교실을 연 것은 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가 처음이다. 10여 명의 참가자들을 모아 2017년 5월 그 아름다운 첫발을 내딛었다. 그 걸음이 비록 옆에서 보기에는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아주 새롭고 놀라운 변화의 시작점이었다.


"첫 무대로 낭독극을 진행했어요. 글을 읽을 줄 아는 친구들이 낭독을 하고, 못 읽는 친구들은 낭독에 맞춰 그림자를 올리는 공연을 준비했는데, 낭독을 하는 친구들이 무대 앞에 서서 조명을 받으니까 그게 부러웠던 모양이에요. 도청으로 공연을 하러 가던 도중에 한 친구가 이렇게 묻더라고요. 글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때 깜짝 놀랐어요. 단지 연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다른 곳으로 관심을 뻗는 모습을 보고 이게 이렇게도 연결될 수 있구나, 느꼈어요."


황 센터장의 말처럼 연극은 그냥 연극이 아니었다.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그들은 협동하는 법과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고, 나아가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갖게 됐다. 그런 그들의 변화는 가족들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해 공연 당일 객석을 눈물바다로 물들이기도 했다.


"일반인도 아니고 장애를 가진 자신의 아들, 딸이 언제 그런 무대에 서 보겠어요. 또, 그런 무대를 언제 부모가 볼 수 있겠어요. 우리조차도 그렇게 고맙고 대견한데, 부모들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또 행복했겠어요."


그래서 지난해에는 2017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도움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을 그들이 결정하도록 했다. 작품의 주제 선정부터 시나리오 쓰기, 구체적인 기획부터 실행까지 그들을 주체로 세웠다. 그렇게 탄생한 연극 '반갑다, 친구야!'는 그들의 자발적인 의견과 아이디어가 반영된 연극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뜻깊다. 어렸을 때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졌던 친구들이 나중에 다시 재회하여 우정을 회복한다는 내용으로, 그들의 순박함과 여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두 번의 공연을 피로하기까지 곁에서 받은 도움의 손길도 적지 않았다. 특히, 장애인 연극교실을 여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로 황 센터장은 극단 작은 소리와 동작의 이도현 대표를 꼽았다. 그는 "이 대표가 없었다면, 연극교실을 해 보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장애인 대상 교육이 처음이어서 이 대표도 당황스런 부분이 많았겠지만, 어렵다는 느낌보다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노력해 주어 참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올해에도 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 연극교실과 함께할 계획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완성품이 아니에요. 예술 향유가 그 첫 번째 목적이지만, 연극을 무대로 올리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더 많은 체험과 자존감을 갖길 바래요. 무턱대고 잡아끄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도와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같은 세상에서 같이 호흡하며, 똑같은 목마름과 기쁨을 느낀다. 그들에게 더 많은 향유의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누구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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